새해 첫 날부터 열 받았다.
부모님의 차례를 지낼 수 없어 ‘동자 희망 나눔 센터’에서 치루는 합동제례에 함께했다.

70여년 살아왔으나, 가족 없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것도 처음이지만, 정월 초하루 날 이렇게 열 받아 본 적이 없다.

돈이나 권력 가진 자들의 갑 질이야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빈민들을 위해 만든 “동자 희망 나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문 앞에서 만난 직원의 사진 찍지말라는 첫 말에 그만 울화가 치민 것이다.

인사부터 나누며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과 강압적으로 찍지말라는 것은 천지차이다.

등짐에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직원마다 사진 찍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전에 자치회의 진행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한 글을 꼽게 여겨, 보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사람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한다지만, 그 문제는 그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걱정할 일이다.

그동안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개의 주민들이 나의 사진기록을 묵인해 주었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몇몇 분은 내가 피하기도 하지만,

삭제해 달라면 그 자리에서 삭제해 별 문제가 되지않고, 오히려 찍어 달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을 위한 사진이기도 하지만, 그 작은 기록들은 먼 훗날, 그들 삶의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동 차례는 여기 저기 알려 권장할 일인데다, 뒷모습만 나오니 초상권 운운할 문제는 더구나 아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찍으면서 나만 찍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박근혜 하는 짓이나 하나도 다를 것 없었다.






문제는 주민들에 대한 갑 질이 아주 조직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말 잘 듣는 몇 명에게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할 지원품을 여유있게 주는 완장부대를 둔 것이다.

자원봉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본 것일까? 사진 찍지 말라면 그만 두고, 싫다면 나오지 않을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난 빈민들의 보다나은 삶을 위해 남은 목숨 바치러 온 사람이다.

아니, 돕는 다는 말보다 스스로의 권익을 찾으러 왔다.

그렇게 제지하는데도 계속 사진을 찍으니, 잘 아는 완장부대 영감이 “너 맞을레”라며 욱박질렀다.

“당신 깡패야?”라고 되물었더니, 손으로 맞는 것만 맞는 것이냐?“며 슬며시 꼬리 내린다.


명절제사를 제대로 치루지 못해 합동제례에 모시는 불효막심에 가슴 아팠으나,

어쩌면 허례허식일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위안도 가졌다.

합동제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권장할 일이었다.

차례를 일 년에 네 번씩 치러 왔지만, 제사상 한 번 차리는데, 20만원은 족히 들기 때문이다.


많이 차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성이 더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없다.

마음의 정성이라도 모우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모님에게 차례를 올렸다.

부족함을 용서 빌며, 앞으로 마을 분들과 잘 지내며 더불어 사시라는 부탁도 드렸다.






이젠 우리 조상들이 지키던 고유의 신은 외국의 하나님 신에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천 이백여명의 주민 중에 제사상에 절한 주민은 열 댓 명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명절이 되어 더러는 일가친척 댁에 간 분도 계시고,

좁은 방이지만 정성 것 차례 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미 판세가 바뀌었다.

우리집 제사 역시, 형제자매가 모두 하나님을 믿어 내가 맡은 게 아니던가.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제사 밥 먹던 일도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설날 주민들과 어울려 떡국이라도 한 그릇 나누며 정 나누길 기대를 했으나, 그마저 깨졌다.

‘동자동 사랑방’처럼 온 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치루는 제사가 아니라, 아낙네들 마저 보이지 않았다

대개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듯이 추석선물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주민 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냉냉한 분위기가 더 서글펐다.


그리고 어제도 '사랑의 빨간 밥집'이란 후원단체에서 나와 쌀을 나누어 주었다.

난, 쌀이 남아 줄 서지 않았지만, 그 행렬도 길었다. 사는데 제일 중요한 품목이니까...

그러나 거지처럼 줄세우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나눔의 집'에 일괄 넘겨 날자를 정해 수시로 받아가게 했으면 좋겠다.











차례를 지낸 주민들은 이층 사무실에 쌓아 둔 지원품을 힘들게 내렸는데, 그 시간도 제법 걸렸다.

그 사이 물품을 받으려는 동내주민들의 행렬은 장사진을 쳤다. 지원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쌀과 삼계탕, 식혜 등이 담긴 포장박스 외에도 사과 한 알, 계란 세 알, 양말 몇 컬레로 나누는 품목도 있었다.


그런데, 민간단체나 기업에서 후원한 물품을 나누어 주는데, 최소한 어디에서 누가 주는 물건인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베푸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물품이 얼마나 보내왔고, 몇 명의 주민에게 어떻게 배부되는지, 주민들도 소상하게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이 주민을 무시하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길들이는 일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잘 못된 모든 일은 하나 하나 시정되어져야 한다.






허기진 몸으로 주민들 틈에 끼어 지원품을 받아들고 서둘러 돌아왔다.

광화문에서 열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제례에도 참여해야하고,

설날에도 쉬지 않는 ‘미술행동’에도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선물로 준 일회용 삼계탕으로 끼니를 때웠다.

설날 밥상치고는 좀 특별했으나,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잘 먹었다.

그 동안 방이 좁아 밥상 하나 둘 자리도 없었는데, 선물이 담긴 포장박스를 뒤집어니 좋은 밥상이 되더라.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각오를 다진, 새해 첫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노숙인은 선물도 받을 수 없다.


공짜 물품에 매달리지 않은 강완우씨, 아직 자존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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