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 사는 손행복씨가 한 달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가는데 순서가 없다지만 처음 만났을 땐

나보다 훨씬 건강했고 세 살이나 적었다.

 

행복하게 살라고 이름까지 행복으로 지었으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오죽하면 연고자를 찾지 못해 임종한지 한 달 만에 장례를 치루었겠는가?

 

정선 집이 불탄 일로 실의에 빠져 방구석에만 처 박혀

만나자는 사람이나 전화조차 기피하고 있었지만

손행복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9일 아침 아홉시에 백제화장터로 간다기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모이기로 약속한 ‘동자동 사랑방’에 시간 맞추어 나왔으나,

사정이 생겼는지 먼저 가고 없었다.

 

마침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찾아와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하늘에서 눈물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백제화장터에는 ‘사랑방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과 선동수간사장

조인형씨 등 여섯 명이 와 있었다.

 

시신은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들 ‘그리다’라는 추모공간에 모여 있었다.

 

서울시에서 무연고 빈민을 위해 마련해 둔 추모공간은 처음 보았는데,

세상을 떠난 박원순시장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

 

공영장례장인 ‘그리다’는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마련한 빈소라고 한다.

 

장례의식을 진행하는 담당자 이야기로는 하루에 평균 두 명이 이용한단다.

 

그 곳에 영등포쪽방에서 온 장홍준씨 시신도 같이 안치되어 있었다.

 

다들 식순대로 예를 올리며 먼저 떠난 이를 추모했다.

 

조인형씨는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훔쳤으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 고난의 세상을 떠난 자는 편안할 것이다.

 

가진 자는 죽음이 두렵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손들은 홀 가분 할 것이다.

 

부디 차별 없는 평등의 세상에서 편히 잠드시길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봄바람은 코로나도 못 말렸다.

발길 끊긴 동자동 공원이 모처럼 북적였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확진자가 퍼져 한 동안 갇혀 지냈지만,

다들 음성이라 긴장이 풀릴 수도 있겠다.

 

상담소 빨래방에 이불 맡기러 나갔더니,

곳곳에 돈 냄새 풍기는 붉은 깃발이 꽂혔더라.

 

살풍경과 달리 봄볕 퍼진 새꿈공원은 정겨웠다.

 

군데군데 모여 앉아 따스한 봄볕에 몸 말리는데,

누군 술잔과 놀고 누군 화투와 놀았다.

 

시간이 갈수록 봄 바람에 감염된 사람은 늘어났다.

“우리가 살면 언제까지 사냐? 죽어도 고~다”

 

얼마만의 해방감이며 얼마만의 반가움이더냐?

쪽방상담소에서 심심풀이 새우깡도 풀었다.

 

새우깡 봉지위로 웃음이 남아돌아

봄바람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

 

“코로나야! 사람 그리워 못 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시가 ‘서울역쪽방상담소’ 규모를 2배 이상 확장하여 기존 시설에서 약 100m 떨어진 용산구 후암로 57길 9-12로 이전해 지난 12월 10일 개관했다.

 

2014년 6월 문 연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주민들의 복지나 인권 등 애로사항을 들어 지원 사업을 펼쳤으나, 고질적인 주민 줄 세우기 등 주민편의 보다 운영편의에 치중해 주민들의 많은 불만을 사기도 했다.

주민 공동이용시설이자 복합 커뮤니티 센터로 탈바꿈한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그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세탁실, 샤워실, 화장실, 쉼터, 자활작업장 등을 한 건물 안에 조성해 원스톱 통합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서울시내 쪽방상담소(서울역, 남대문, 돈의동, 영등포, 창신동) 5개소 중 하나로 서울역 인근에 있는 동자동 쪽방 주민 약 천 백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용수요가 가장 많은 상담소이자 이용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서울시에서는 쪽방상담소 이전을 위해 인근 건물을 지난 해 새로 매입했다고 한다. 여인숙이 밀집한 골목건물을 매입하여 1월부터 건물 구조 보강, 엘리베이터 설치 등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해 11개월 만에 공사를 마쳤다. 이전한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지하2층~지상4층으로 기존 상담소 보다 규모가 2배 이상 커졌다.

​지하1층의 ‘돌 다릿골 빨래터’, 지하2층 샤워실은 위생 관리가 어려운 쪽방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다. 인근 쪽방 주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층에는 쪽방 주민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자활작업장도 설치했다.

 

​지상1층에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여 쪽방 주민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꾸몄다. 2층 상담실에선 복지상담, 정서지원, 생필품 후원 연계 등 주민들의 욕구에 맞는 맞춤형 생활안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상3~4층에는 쉼터, 프로그램실, 정보화교육실 등을 설치했다. 쉼터는 에너지 취약계층인 쪽방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추위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프로그램실, 정보화교육실에서는 쪽방 주민들에게 건강, 인문교양, 컴퓨터 활용법 등 다양한 교육을 지원하게 된다.

 

이전한 장소는 여인숙들이 밀집한 골목이다,

 

​상담소 운영을 담당하게 될 서울시 복지정책실의 김선순 실장은 “쪽방주민들은 열악한 주거와 생활환경에 노출돼 있고 대부분 취약계층으로 공공의 복지서비스가 가장 절실한 분들이다. 새롭게 문을 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보다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층별 시설개요>

4층 정보화교육실, 프로그램실, 다목적실

3층 프로그램실, 쉼터, 문서고, 화장실

2층 사무실, 상담실, 화장실

1층 안내데스크, 커뮤니티 공간, 주차장

지하1층 안내데스크, 돌다릿골 빨래터, 장애인 화장실, 창고

지하2층 샤워실, 자활작업장, 화장실

 

본래 장소인 새꿈어린이공원 옆의 희망나눔센터가 멀리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는 이 위중한 시기에

줄 세우는 김치 나눔이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있었다.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김치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연례 행사인데,

쪽방 주민들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부식이라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린다.

이번엔 량이 많지 않았는지 알리지도 않고 나누어 주었다.

김치 나누어 주는 것을 몰랐는데, 옆방의 정씨가 공원에 줄섰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무리 전염병으로 외부 출입을 자제하지만, 안 나갈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이 줄서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먹을 것 찾는 사람들을 보니, 사는 게 전쟁이었다.

 

그렇게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 않더니,

한동안 코로나가 그들의 나쁜 버릇을 고친 줄 알았다.

편리한 시간에 찾아가는 방법이 서서히 정착돼 가고 있었는데,

왜 줄 세우는 병이 다시 도졌는지 모르겠다.

 

수량이 일정하지 않으면 구역이나 등급별로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많은 김치를 건물 안으로 들이는 어려움이야 있겠다.

그렇지만, 동사무소에서 주는 나눔은 절대 줄 세우지 않는다.

메시지를 보내오면 틈나는 시간에 찾아 가면 되지않던가?

 

왜 쪽방상담소란 조직을 만들어 거지 길들이는 악역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다들 점염병에 주눅 들었으나 모처럼 동네사람 만나니 반갑긴 반갑더라.

모처럼 동자동 새꿈 공원에 웃음꽃을 피웠다.

 

옛날 유행가 자락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방역을 따르자니 정이 울고, 정을 따르자니 방역이 운다.”

 

김정심씨를 비롯하여 몇몇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황춘화씨는 나를 보더니 죽은 서방 만난 듯 반색하며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잡은 손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옆에 있던 김정심씨 말이 걸작이다.

“이제 큰 일 났다. 저 사진 올라가면 조작가 색시 한데 머리 다 뽑힌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안 서러웠다.

술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빈자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모처럼 이웃 만나 기분 좋았으나, 나를 보니 아들 용성이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용성이 따라 가고 싶단다.

 

하기야! 힘든 세상 무슨 미련이 있어 감옥살이 해가며 살고 싶겠나?

모진 목숨 스스로 끊을 용기가 없을 뿐인데, 코로나 따라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겠다.

 

난, 동자동에서는 주식이 라면이라 김치가 없으면 안 된다.

어렵사리 김치는 탔으나, 김치 들고 사진 찍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염병으로 마음도 편치 않아 먼저 들어왔는데,

오는 길에 홈리스 자활센터 최성원 목사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낑낑거리며 4층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방이 좁아 들여 놓을 곳이 없었다.

매 년 김치 탈 때마다 후회하는 것이 냉장고다.

 

오래 전 동자동에 입주할 때 정영신씨와 중고 냉장고를 사러갔는데,

내가 우겨 제일 작은 사무실용 냉장고를 샀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큰 냉장고가 버티면 너무 답답할 것 같은 배 부른 생각을 한 것이다.

 

살다보니 냉장고가 작아 냉동은 물론 반찬도 제대로 넣을 수 없었다.

냉장고를 비워 억지로 밀어 넣긴 했는데,

냉동 칸에 닿은 부분이 얼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눔 덕분에 올 겨울 부식은 해결했으나, 걱정도 따랐다.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있었다면, 동자동에 줄 초상난다.

하기야! 노숙자들이 그렇게 무방비로 어울려도 걸린 사람이 없었으니,

코로나가 거지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제발 줄세우는 짓은 그만 끝내라.

 

사진, 글 / 조문호

 

 

오래 전 신파극에나 나왔던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시국이다.

 

정치건, 성이건 모든 걸 편 갈라 등 돌리고 사는 세상이라 그럴 것이다.

가끔 SNS에서 안면 바꾼 날 선 공방을 보며, 이제 갈 때가지 갔다는 생각이 던다.

 

비운의 삶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구역질 난다.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여 여성을 대변한다는 뻔뻔스런 상판대기들 보는 것도 지겹다.

속 보이는 짓거리가 부끄럽지도 않을까?

 

나 역시 한 때 미투에 지목될 만큼 여자를 좋아했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이젠 여자가 무섭고 싫어졌다.

오죽하면 처와 딸을 가진 사내로서 여성에 혐오감을 가지겠는가?

 

그 가슴 두근거리던 아름다움과 처연했던 감정을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 남자는 늑대로 여자는 여우로 치며 잘 어울려 살았다.

 

이제 그만 끝내라. 제발 죽은 사람 두 번 죽이지 마라.

 

-2막-

 

“돗자리를 따르자니 돈이 울고, 선풍기를 따르자니 몸이 운다“

쪽방 주민들에게 선풍기와 돗자리 나누어 주던 날, 줄 선 서씨가 뱉은 말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

돗자리가 필요하지만 값 비싼 선풍기가 탐이나 하는 말이다.

 

작년 여름에도 선풍기를 주었으니,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 있다.

비좁은 쪽방에 모셔 둘 자리도 없건만, 대개 선풍기를 가져간다.

기껏 팔아야 오천원 남짓 받지만, 단 돈 오천원에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지난 17일, 모처럼 새꿈공원에 줄서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마트’에서 선풍기 300대, 서울시 50플러스센터 직원들이 대자리 380개를 후원해

동자동 쪽방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공고였다.

 

줄 세워 나누어주지 말라고 몇 년 동안 나팔 불어도 시정되지 않더니,

‘코로나19’ 덕에 그나마 고쳐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분량의 물자를 지하로 내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시간 있을 때 찾아가는 방법이 별 탈 없이 정착되어가는 중이라 당혹스러웠으나,

한 편으론 반가운 면도 있었다.

 

다들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혀 살아, 사람이 그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더냐?

 

모처럼 만난 벗들의 반가운 눈 꼬리가 초생 달처럼 징거러운데.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 알아채고 끈적댔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싱글 벙글하는 분위기에 다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행렬은 4년 간 지켜 본 중에 가장 긴 줄이었다.

정해진 낮 2시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 선 사람의 행렬은 골목골목을 돌아 오백 미터가 넘었다.

 

선풍기도 선풍기지만,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 나왔을 것이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으나, 코로나에 의한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다닥 다닥 붙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버리거나 반쯤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자칫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쪽방 빈민들 줄 초상 날 지경이었다.

 

더운 날씨에 줄은 줄어들지 않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

노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는 쪽 쪽 번호표를 줬으면, 이렇게 무더운 땡볕에 줄 설 일은 없지 않느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할 것 아니가? 씨발 넘들아!”

 

얼마나 “서울역쪽방상담소“ 욕을 많이 해대는지, 내가 할 욕을 잃어버렸다.

제발! 너희들 편리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가 남이가?”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거리두기로 오나가나 독거의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다들 꼼짝을 안 해 만날 수도 없지만, 만나도 눈인사나 나눈다.

매일같이 모여 앉은 부랑자들은 주위의 시선도 따갑지만,

나 역시 감염에 일조하는 것 같아 어울리기를 꺼린다.

 

몇 달이 넘도록 주눅 들게 하는 ‘코로나’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다.

무더운 쪽방에서 도망쳐 와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지내다,

생각나면 돌아가는 반복된 나날을 보내는데,

컴퓨터와 노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어 버렸다.

 

지난 24일은 인삼드링크 받아가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공원은 한가했으나, 입구에 진을 친 병학이 아지트는 여전했다,

그 날 낯선 노숙자 한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많이 다쳤다.

먹는 게 없는데다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해서다.

 

신고 받은 119 대원이 달려왔으나 그들이 할 일은 없었다.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 옮겨야 했으나, 당사자가 손을 내저었기 때문이다.

한 푼도 없는 거지 치료비를 누가 낸단 말인가?

상처를 꿰매야 하지만, 머리에 붕대만 감아놓고 떠나 버렸다.

 

무덥고 갑갑한 붕대 따위는 이내 벗어 던져버렸다.

술로 소독하려는지 연신 술만 퍼마셨다. 삶에 애착이 없어 보였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무소유의 자유도 눈앞에 닥친 고통 앞에서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어떤 놈은 돈을 쌓아두고도 돈 욕심에 눈이 벌겋게 설치는데,

아무 것도 없이 살아도 기초생활 수급비도 못 받아 먹는 불쌍한 신세다.

불공평한 현실을 탓해봤자 무엇에 쓰겠는가?

 

그들과 달리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원희룡씨를 길에서 만났다.

원씨는 후원자로부터 도시락을 받아와 전해주기도 하고,

고물을 주워 모아 파는 등 무슨 일이던지 닥치는 대로 한다.

한 푼이라도 벌어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시골가족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서다.

 

할 일없이 혼자 사는 독거나, 방황하는 부랑자에 비한다면 선택받은 삶이다.

인삼액기스는 받았냐며 쪽방촌 정보부터 알려준다.

이제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줄 세우지 않아 언제든지 찾아 가면 된다.

진즉부터 그렇게 하면 될 일을 한 번에 끝내려는 속셈에 고집 부린 것이다.

 

상품을 주는 물품보관소에 들렸더니, 직원들 뿐이었다.

나누어 준지가 며칠 되었건만 많은 물건이 남아 있었는데,

다들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영양이 부족한 쪽방 노인들에게는 좋은 선물일 텐데...

 

상자에는 ‘제일제당’에서 보낸 ‘통째로 갈아 넣은 인삼 한 뿌리’라고 적혀있었다.

진짜 인삼을 갈아 넣었는지 뜨물 같은 흰 액체에서 인삼 맛까지 났다.

과분한 선물인 것 같았으나, 노숙자는 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몸 생각을 하지 않아, 줘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로운 쪽방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윙윙 되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맞으며 티브이 채널만 돌리고 있다.

가끔 인삼 액기스로 몸보신도 하겠으나, 그 넘치는 정력은 어디다 쓸까?

각자도생하는 세상, 혼자 재미있게 노는 방법이나 연구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징그러운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비정한 세상에 함께 어울리는 것을 거부하며 방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사는 방법과 질서를 하나하나 바꾼다.

 

쪽방 사람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들 꼼짝 하지 않으니, 사람만나기가 어렵다.

노숙인은 한결같지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게 낫다.

 

날씨까지 정신 나갔는지, 한 여름을 방불케 한다.

4층은 달구어진 옥상 열기에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다들 팬티만 입고 살아 벌써부터 십구금이다.

 

옆 방 사는 김씨는 교도소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하겠단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죽고 싶지만,

사람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게 억울해 죽을 수도 없단다.

 

사람들 발길이 줄어든 공원도 낯설기 그지없다.

거리는 담배 피우러 나온 회사원만 서성일 뿐, 한적하다.

골목 구석에서 외로움 달래는 자의 술잔만 허허롭다.

 

이제, 무료급식과 모든 지원이 줄어들어 살기도 힘들어졌다.

슈퍼마켓은 문 열었지만, 빈민들을 위한 푸드마켓은 문 닫은 지 몇 달째다.

아랫 공원은 거지들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코로나 핑계로 줄이고 생략해, 외롭고 배고파 못 살겠다.

 

코로나가 사람들 정신 차리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여지 것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으나, 코로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또 하나 신통한 것은 빈민들 줄 세우는 일도 사라졌다.

 

몇 년동안 길들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나팔 불었지만 쇠귀에 경 읽기더니,

코로나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버렸다.

지금처럼 하면 될 걸, 왜 그렇게 고집 부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쪽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

별 일 없는 동자동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개길 때가 더 많아졌다.

올 여름엔 정선에서 무너지기 직전인 집이나 수리할 작정이다.

 

녹번동에서 편한 밥 얻어먹자니, 사모님께 알랑방귀를 뀌어야 살아남는다.

청소나 설거지는 물론, 궂은 일은 모두 내 차지다.

식모 아니, 식부의 설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하다 그릇 깨는 일은 다 반사고,

너무 열심히 해, 할 때마다 팬티가 다 젖는다.

그보다 더 귀찮은 것은 담배 피우러 밖으로 들랑거리는 일이다.

 

누군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지만,

길 잃은 사나이의 비애를 여인네들이 어찌 알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임대주택 탐방할 주민을 모집하는 벽보가 오래 전부터 동자동에 나 붙었다.
동자동을 재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 중인데다 

‘대책 없는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민들의 입장이 상충하는 상황이라 임대주택 탐방을 신청했다.

동자동 주민으로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난, 동자동 빈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절대 이주할 뜻이 없음을 먼저 밝혀둔다.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하겠지만,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주하더라도 임대주택에 갈 것이 아니라 정선 만지산 집을 수리해 돌아가야 한다.



주택 탐방일로 정해진 15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집합장소로 정해진 '서울역쪽방상담소' 체력 단련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부터 김치 배급이 있었다.

한 쪽 벽에 ‘'제2차 임대주택및 지역탐방"이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주택공사'를 등에 업은 '용산주거복지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예상했던대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총 열 아홉명으로 대부분 남영동에서 온 사람이고 아는 사람은 이배식씨 뿐이었다.



'용산주거복지센터' 담당자가 나와 임대주택 탐탕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소개했고,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도 보충 설명했다.

옆에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장자 20개가 ‘임대주택 및 지역탐방자 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보란듯이 쌓여 있었다.

다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탐방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임대주택 탐방지역이 동자동으로 옮겨오기 전에 내가살던 곳이었다

수시로 장 보러 다니던 불광동 '대조시장' 옆에 버스를 세워 놓고 시장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임대주택 탐방 온 주민들이 살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전 동자동에서 살던 분이 옮겨 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에 연락된 듯한 세 가구를 방문했는데, 15평에서 18평 쯤 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어디를 가던 이 정도 집을 얻어 살 수 있다며, 이주 신청을 권장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볼 때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신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주민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료야 수급비에서 보장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생활용품도 없다.

썰렁한 집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집만 넓으면 무엇 하겠는가?

여지것 타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동자동처럼 자주 나누어주던 구호물품도 받을 수 없으니 더 싫은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이 같은 땜질식 이주정책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거주하는 동자동은 서울역과 가까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인데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이웃이 있다.

먼저 지하철역과 가까운 지역에 빈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계획된 아파트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주택공사'에서 7평에서 10평 정도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필요한 만큼 지어야 한다.

외곽 지역이거나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다면, 불편한 만큼의 보상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해야 한다.


 

다들 임대주택 탐방을 끝내고 서오능으로 옮겨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빈민들이 오랫만에 맛있는 추어탕으로 영양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식사 후 서오능 구경하는 것이 마지막 행사 일정인데, 비가 내려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이나 찍자며 데려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가을을 떠나 보내는 서오릉이지만 인적조차 없었다. 빗물에 젖은 단풍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왕능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오릉에 들어가니 초입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부터는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데,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과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 있었다.

맨 윗부분은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 등의 호위를 받는 봉분이 자리했다.

왕릉에 따라 구조물과 석물 등이 조금 식 다른데,

그 규모를 보면 왕과 함께 그 시대의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숱한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 장희빈 릉도 돌아보았다.



긴 세월 녹번동에 살며 서오릉 앞을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저물어가는 단풍에 취해 서오릉 길을 산책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로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가졌는데,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음악이 소음되어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 떠난 장소로 돌아와 준비된 선물을 받을 차례인데, 쪽방상담소 실장이 올 때가지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그냥 나누어주면 될 것을 왜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준비된 선물에다 다른 선물박스를 하나 더 보태주는 것이다.

상자에는 된장, 고추장, 김, 통조림, 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무거워도 가져갈 수는 있으나, 왜 많은 선물을 집중적으로 안기는지 모르겠더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야 할 선물을 몇몇 사람에게 모아주는 이러한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입 맛대로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쪽방촌 완장부대를 만들어내며, 주민을 길들이는 경우로 비약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남거나 적은 량의 물품이 들어오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비효율적인 주거복지 프로젝트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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