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다.

먹기도 싫고, 컴퓨터도 싫고, 자다 깨다만 반복한다.

 

가끔은 정선 집이 불탄 것을 잊고 일 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정선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쫙 빠진다.

 

난, 정선 집에 많은 것들을 가져 쪽방에 살아도 항상 마음은 부자였다.

다 태우고 모든 걸 잃었으니, 쪽방사람과 똑 같은 동격이 되었다.

 

관리인 정씨가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방문을 열어보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때 사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뚜벅뚜벅 공원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은 그 풍경에 그 풍경이고 그 얼굴에 그 얼굴이었다.

 

강씨는 보자마자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한다.

혼자 술 마시던 정씨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색한다.

 

술 한 잔 하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역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의 천국이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얻어먹고, 비둘기는 노숙자에게 얻어먹는다.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공존의 장이다.

 

노숙자 지은이가 짐을 끌고 어디로 가고 있었다.

차도 건너 편 외딴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았더라.

 

짐이 많아 치우라는 역무원 등살에 피신한 것 같았다.

터줏대감 가오인지, 그는 항상 짐을 쌓아놓고 산다.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와 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똥색인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젠 나도 가진 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나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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