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노숙인 천씨가 어렵사리 뱉어 낸 첫 말이

‘세상을 원망하랴! 마누라를 원망하랴’다.

가족은 어디 사냐? 는 물음에 내 뱉은 뜬금없는 말이다.

 

이 친구는 다른 노숙인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넋 나간 듯 역전에 앉아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어디서 발목까지 다쳐 깁스 한 사연을 물었더니,

그때서야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다.

힘이 없어 발을 헛디뎌 부러졌단다.

 

그는 잔재주 못 부리고 적극적이지도 못해

직장과 가정을 잃은 지가 십 여년이 훌쩍 넘었단다.

믿었던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져

사람 자체가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예전에는 부모 잘 못 만나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우지 못한,

 타고 난 노숙인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돈 벌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많다.

 

노숙인이 많이 생겨 난 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노숙인 세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대개 아이엠에프 사태에 밀려 난 세대다. 

 

지금은 또 다르다.

돈 못 벌어 가정불화로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돈 못 면 아내는 물론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세상이다.

 

영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정한 세상이라

팔자소관으로 돌리기에도 억울한 삶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의 삶은 차지하고라도

꿈마저 잃어버린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죽을 자신이 없어, 죽지 못해 산단다.

하기야! 죽을 용기로 나선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버림받은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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