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 자정 무렵 서울역광장에 나가보았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며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밤에는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은 두 세사람만 웅크려 잘 뿐 평소와 달리 한적했다.

 

노숙인들이 머무는 지하도로 내려가니, 십여명의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때마침 지하도 맞은편에서 서울역희망지원센터직원들이 몰려나왔는데,

지하도에 머무는 노숙인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노숙인에게 빵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지나갔는데, 나 한데도 빵 봉지 하나를 안겨 주었다.

봉지 안에는 두유 하나 빵 두 개, 마스크 한 개가 들었는데, 그 속에 편지 형식의 안내문이 접혀 있었다.

 

보호시설과 쉼터를 안내하며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시켜 기초생활수급을 돕겠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못해 해당되지 않는 노숙인도 많겠으나 더러 구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두사람도 아니고 직원들이 밤늦게 떼거리로 몰려나온 걸 보면. 노숙인 구제에 관한 지시가 내린 것 같았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을 왜 여태 방치했을까?

아무튼, 모든 노숙인에게 도움주어 길에서 죽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빵 봉지를 챙겨들고, 다시 쪽방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더울 때는 쪽방 문을 열지만, 날씨가 쌀쌀해 다들 문을 닫아 놓았다.

유독 삼층 서씨 방문만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사람은 없고 온갖 잡동사니만 늘려 있었다.

잠잘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데, 내방처럼 조그만 목침대를 만들어 주면 좋겠더라.

침대 밑을 책장으로 사용하는 대신, 찬장으로 활용해도 되지 않겠나?

 

서울역쪽방상담소도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에만 신경 쓰지 말고,

쪽방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목공 사업을 추진하라.

그리고 정부는 중단된 동자동 재개발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여 빈민부터 구제하라.

 

사진, / 조문호

 

 

 

해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선물도 나누어 주고 꽃도 달아준다.

 

그러나 잊고 사는 가족만 더 그리워지게 만든다.

 

조화 한 송이로 마음 달래며, 나누어 준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올 해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꽃을 달아주며 떡과 음료를 나누어 주었다.

 

해마다 어버이날과 추석이 다가오면 주민들을 불러 모아 새꿈공원에서 잔치를 벌였으나,

전염병에 발목 잡혀 이 년 동안 한 번도 잔치를 열지 못했다.

 

올해는 그나마 규제가 풀려, 찾아 다니며 꽃이라도 달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버이날 며칠 전에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라면, 샴푸, 면도기 등의 생필품이었으나, 줄 세우는 관행은 여전했다.

 

당일에는 등불교회에서 도시락을 50개 준비해 왔으나, 공원에 나온 주민이 몇 사람 없었다.

 

도시락 하나 얻어 돌아오니, 아래층 박씨 방의 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몸이 아파 돌봄이 필요한 요양원에 갔다지만, 가져갈 짐은 없고 다 버려야 할 짐 뿐이었다

 

이제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그곳은 저승 대기소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또 한사람 사라지는 것이다.

 

늦은 시간 녹번동에 들렸더니, 정동지 조카 심지윤이가 꽃다발을 사 들고 왔더라.

좋아하는 정동지 모습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부추전에 술 한 잔 마시며 어버이날을 자축했다.

 

사진, / 조문호

 

 

쪽방 촌에는 명절만 다가오면 선물을 나누어 준다.

대개의 선물은 특정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달해주지만,

동자동에서는 일방적으로 줄 세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긴 하나 사람대접하지 않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이건 선물 이름을 단 배급에 불과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므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자괴감을 안겨준다.

그동안 ‘줄 세우지 마라’고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누군 ‘배가 덜 고파 하는 말’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배고픔 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고마움도 우러난다.

 

허구한 날 줄서서 얻어만 먹다 보니 선물의 고마움조차 잊어버리고,

선물이라기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상으로 여길 뿐이다.

 

그리고 명절이 되면 쪽방 주민들은 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없어 만날 사람도 없지만,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쪽방에 홀로앉아 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한 잔술로 적적함을 달랜다.

 

며칠 전에는 ‘이에수스 핸즈’선교회에서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만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에서 팥죽을 나눠 줬지만,

코로나 때문에 2년째 팥죽 맛을 보지 못한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홍보하지 않은 자선이라 밖으로 나온 몇몇만 팥죽 맛을 즐겼으나,. 다들 고맙게 먹었다.

 

다음 날은 ‘케이티’에서 보내 온 명절선물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줬다.

오전10시로 정한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물러서라고 외칠 뿐, 나눠 주는 시간을 앞 당 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민들에게 주는 명절선물은 식료품이 주종을 이룬다.

햇반과 라면, 김 등 지난 년 말 선물과 빼 닮았다.

이제 줄 세워 주는 선물은 그만 끝내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대 주고 빰 맞는다'는 말처럼, 올 해는 범한테 물린다.

 

사진, 글 / 조문호

 

 

해마다 년 말이 되면 빈민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온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줄 세우는 것은 빈민을 길들이는 나쁜 관습이다.

물건을 얻기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당사자의 자괴감을 한번 생각해 보았는가?

그 쪽팔림이 싫어 줄서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하루 전에 붙인 벽보를 보고 줄을 서야하니

몸이 아파 밖에 나오지 못하는 분은 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정작 구호품이 필요한 분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물품들은 중복되거나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 많아 좁은 방에 쌓아두는 불편도 따른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무조건 받고 보는 나쁜 관습에 길들어 점점 뻔뻔해진다.

항상 당당하지 못하고 주는 갑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쪽방 사는 몇 년 동안 주구장창 물고 늘어진 게 빈민들 줄 세워 길들이지 말라는 문제였다.

줄 세울 때 마다 SNS에 까발려 담당 실장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사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원에 쌓아놓고 줄 세워 주는 것이

빠른 시간에 처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 많은 물건을 사무실에 들여 보관하는 일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되며 가급적 줄세우는 것을 자제 하는 듯 했으나,

지난 년말 나눔에는 물품 부피가 커서 그런지 다시 재연되었다.

 

지난 24일 오전11시부터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전기장판과 생필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30분쯤이나 지나서야 공원에 나갔는데, 이미 주민들이 선 줄은 돌고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는 나누어 줄 물품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먼저 받은 분 물품 박스를 확인해 보니 컵라면 열 개에다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었다.

가벼운 컵라면 부피에 된장 무게를 보탠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전기장판은 해마다 나누어주는 품목이라 남아돈다.

 

줄서기를 포기하고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갔다.

두 시간쯤 지난 뒤 다시 공원에 가보니 그 길었던 줄과 많은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몇몇 사람만 남아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년과 달리 받아야 할 분들의 신분이 전산화되어

주민등록증을 등록기에 대면 확인되므로 나누어주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물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것은 온정을 보내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은 돈이지만 현금을 개인별 구좌에 입금시켜 주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지만,

상품을 현금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현금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난으로 고생한 사람들이라 습관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먹는 것까지 아끼는 그 꼬불치는 습관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죽고 나면 아무 쓸데없는 돈을 누굴 위해 이불밑에 묻어둔단 말인가?

 

제일 좋은 방법은 보내 온 구호물품 일체를 관할 푸드마켓으로 보내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골라가게 하거나, 아니면 상품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온정을 보내주는 분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번거롭게 선물 꾸러미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 상당의 현금을 동사무소에 기부하면 된다.

 

줄세우는 관습을 고민하다 어저께는 지인 모임에서 그 문제를 꺼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조준영 교수께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단다.

상품의 다량구매로 기업끼리 상부상조하기도 하지만,

전해주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받는 사람 기대도 부풀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줄 세우는 문제는 기어이 끝내야 한다.

길들이는 일제의 잔재를 세상이 바뀐 지금까지 답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서라도 기부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더 이상 없는 사람 쪽팔리게 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비러먹을 넘! 아직 배때지가 덜 고파서..”

이 말은 동자동 김씨 영감이 아들 같은 옆방 노씨에게 한 말이다.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밑반찬을 나누어주었는데,

타러 가자는데 안 간다니 뱉은 욕이다.

 

‘비러먹다’는 말은 ‘빌어먹다’ 옛말로 남에게 구걸해 먹고 사는 것을 말하는데,

반찬 얻으러 가는 자체가 빌어먹는 일 아닌가?

얻으러 가는 놈이 빌어먹는 놈인데,

안 간다는 사람을 왜 빌어먹을 놈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쪽방 사는 빈민 모두가 빌어먹는 사람에 다름아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나 구호단체에서 보내 주는

물품들을 받는 자체가 얻어먹는 일이 아니던가?

 

하기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남의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빌어먹는 사람이다.

‘손바닥만한 땅때기 한 평만 있어도 빌어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사장과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종 관계다.

그러니 다들 갑의 자리에 서기 위해 돈 벌려고 눈을 벌겋게 설치지 않는가?

 

그리고 전문 경력이나 기술보다 앞서는 것이 돈이다.

몇십 년을 연구하여 개발해도 창업 자본이 없으면

그 분야에 아무 것도 모르는 자본가한데 빌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가진 자들은 자손 대대로 갑의 위치에 살고, 없는 자들은 대대로 빌어먹는다.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노씨는 줄 서서 얻는데는 잘 나서지 않는다.

그냥 준다는데도 가지 않으니, 영감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다.

두 달 전부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2주에 한 번씩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에서 보낸 ‘희망풍차’란 밑반찬 나눔인데, 다들 기다리는 품목이다.

 

노씨 대신 같이 가 보니, 의외로 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민들을 격주로 나누어 분산했으니, 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받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콩조림과 멸치조림, 짜장이 각각 담겨 있었고,

단감 두 알도 보너스로 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일주일쯤은 라면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 없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그보다 고마운 선물이 없다.

 

반찬은 있으나 밥이 없어, 옆방에서 일회용 밥 하나를 빌렸다.

"젠장, 빌어먹는 짓도 가지가지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지난 4일 동자동 쪽방촌에 국민의 힘 정치인들이 대거 몰려와 한바탕 소동을 벌였는데,

당 경선 흥행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분통을 터트리게 했다.

그러나 유력 대권주자들이 모두 불참해 퍼포먼스를 벌인 취지가 무색해 졌다.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마침 그들이 방문한 정오 무렵에는 박재동화백의 전시회에 가는 바람에 정치 쇼를 보지 못했으나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하태경, 윤희숙, 김태호, 안상수, 장기표, 황교안, 장성민 등

많은 정치인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이날 행사는 동자동 쪽방촌에 얼음물과 삼계탕을 전달하는 행사인데,

쪽방을 돌며 삼계탕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은 사진찍기 위한 쇼에 불과했고,

나머지 물품은 새꿈 공원에 쌓아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떠났다는 것이다.

어쨌던 몇몇 쪽방이라도 돌아보아 빈민들의 실상을 목격했으니 정치활동에 참고는 할 것으로 위안했다.

 

이날 현장에선 일부 주민들이 ‘주거권 보장 없는 자원봉사는 기만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맹물 말고 공공주택”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주민은 윤 전 총장의 ‘부정식품’ 발언을 겨냥해

“부정 물이 아닌지 한 번 보자, 없는 사람들은 다 썩어가는 것 먹으라고 했는데”라는 등 조롱했다고 한다.

 

오후 1시 30분 무렵에서야 동자동으로 돌아 왔는데,

새꿈공원에는 그들이 두고 간 삼계탕을 타기 위해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는 세탁소에 바지 맡기러 나온 김에 공원에 들렸지만,

여지 것 물건타기 위해 한 번도 줄선 적이 없다고 한다.

 

모여든 동자동 주민 중에는 보이지 않는 주민이 많은 대신 낯선 사람이 많았다.

홀애비들이 주축인 쪽방촌에 여인네가 많은 것도 이변이었다.

주거권 문제로 주민들의 이동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물품을 전달 받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는 주민들이 오는 데로 곧 바로 나누어 주지

왜 오후2시까지 기다리게 하여 더위에 주민들을 지치게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늘이 있는 공원을 벋어나 골목으로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지것 줄을 섰지만 한 번도 새치기를 하거나 줄서는 문제로 시비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날은 여기저기서 실랑이가 붙었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을 향한 욕설과 비난도 빗발졌다.

하기야! 더위에 지쳐 날카로워 진 심기에 더 이상 참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삼계탕을 가져다 준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삼계탕 주고 욕을 먹으니, 이게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코로나가 심각한 즈음 이런 난장판을 만들어 확진자라도 생기면 어쩔지 모르겠다.

 

정치하는 놈들이나 쪽방상담소 직원이나 똑 같은 놈들이다.

제발 빈민들을 이용하는 쇼는 이제 그만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화요일 '케이티'에서 식료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케이티'는 오래전부터 동자동 쪽방촌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고마운 기업이다.

 

'케이티'에서 시설을 제공하고 서울시에서 운영비를 대는 ‘돌다리골 빨래터’를 만들어

세탁기 없는 쪽방빈민들의 세탁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겨울철에는 외투를 나누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왔다.

 

삼년 전에는 KT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나온 적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수박화채‘를 퍼 주고, 소방호스로 공원 주변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일손 도우려 나선 게 아니라 잠간동안 사진기자들 모델 노릇을 자처한 쇼다.

 

케이티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시장이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 2018년 8월 5일 

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정치적인 쇼하지 말라고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난 지금에 이르니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비서들이 짜놓은 일정에 따랐을 뿐일텐데...

고향 후배라 좀 잘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지적이지만, 착한 양반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자선을 알리고 싶은 것을 탓할 필요야 없으나, 비참해지는 당사자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자체를 피하는 데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날 줄 세워 생색내는 짓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먹을 것을 줄 세워 나누어 주는 형태는 가난한 사람들 길들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 줄 세워 주는 것을 꾸준히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마이동풍이었다.

하기야! 주는 측에서 줄 세우는 것을 원한다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자 줄 세우는 것을 자제하며,

시간 날 때 찾아가는 배급이 자리 잡아 가는 중에 또 다시 재연된 것이다.

 

주민이 천명이 넘는데, 준비한 식료품이 700개뿐이라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동자동 사정을 훤히 아는 '케이티'에서 300개가 아까워 적게 가져왔겠는가?

여름철이라 문 닫힌 쪽방도 많지만,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벽보를 못 보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700개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한 짓이다.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줄 세워 사진찍기 위한 하나의 핑계일 뿐이었다.

 

많은 독지가들이 빈민들을 돕고 있지만, 이처럼 광고하며 돕지 않는다.

대표적인 분으로 두산그룹의 박용만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 분은 내가 오기 전인 5년 전부터 매주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서 실시하는

도시락 장만에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일손을 도와왔다,

지금은 창신동 산 꼭대기에 직접 주방을 만들어 홀로 사시는 노인을 돕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식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계절마다 이불을 걷어 세탁해 드리는 등 남 모르게 자선을 베푼다.

 

처음 박회장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자 근성이 발동해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

그만한 온정의 뉴스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내용을 내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오히려 자선을 노출시킨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몇 개월 전부터 화요일마다 쪽방에 도시락을 전해주는 젊은이들이 있다.

어디서 보내 준다는 말도 없이 사람 있는 쪽방에만 전해 줘 고맙게 받아 먹었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가수 임영웅씨가 보내는 도시락이라는 것이다.

자선이란 이처럼 생색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얻어먹는 주제에 매번 잔소리 해대는 것도 이젠 지겹다.

자선을 광고하기 위해 빈민들을 줄 세우는 이런 구태가 아직까지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지난 26일 밤은 너무 더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늦게서야 일어났는데, 얼마나 물을 많이 들이켰는지 밥 생각도 없었다.

건물 관리하는 정씨가 오늘 식료품 나누어 준다며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받아오라고 귀뜸해 주었다.

하기야! 이 더운 날 줄서서 기다리는 일이 예삿일은 아닐 것이다.

 

정해진 배급시간 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은 골목까지 뻗어 있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행여 코로나 감염자라도 생길까 걱정스러웠다.

주는 측도 마음에 걸렸는지, 다른 때는 당사자가 아니면 대리수령은 할 수 없으나, 

그 날은 주민등록증만 가져오면 대리수령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선착순이라는 줄 세우기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대신 받아 주는 사람도 손수레 없이는 가져갈 수 없었다.

작은 생수 20병까지 함께 주니 노인이 들기에 무리였다.

여름철에는 라면 같은 부식보다 생수가 더 반가운 품목이라 다들 낑낑거리며 받아갔다.

노인들이 높은 층까지 들어 올리려면 수십번은 쉬어야 할 것이다.

 

다들 속은 상하지만 아무 말 없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노인은 쪽방상담소 직원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댔다.

본인 소유의 집도 있는 사람이 빈민으로 위장해 배급을 타 갔다는데, 그게 들통 나 거절당한 모양이다.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가진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들 몸에 베인 익숙한 자세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케이티’ 유니폼을 입은 직원 한 사람은 받는 장면을 정면에서 사진 찍고 있었다.

더운 날 줄 세워 식료품 나누어 주는 것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구시대적인 줄 세우기로 기업 홍보를 하려는가? 

어느 부서의 바보같은 임원 잔머리인지 모르지만, 뭐 대주고 빰 맞는 짓이다.

'케이티' 얼굴에 똥칠하는 짓은 이제 집어치우라.

 

사진, 글 / 조문호

 

이주 동안의 자가 격리는 해제되었으나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 도무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을 포기하고 방에 갇혀 있을 수만 없지 않겠는가?

 

지난 화요일 격리에서 벗어나 모처럼 동자동에 갔다.

차창에서 올려다 본 하늘 풍경이 한 가닥 희망 같았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이 서광처럼 비쳤는데,

그 형상은 마치 인간의 간절한 기도처럼 보였다.

 

동자동에는 새꿈 공원 접시꽃이 정겹게 반겼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곰탕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마치 알고 찾아온 것 처럼 주는 시간까지 딱 맞았는데

배급 현장은 다른 때와 달리 줄이 길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다들 방에서 잘 나오질 않아 모를 수도 있겠더라.

황춘화씨는 곰탕 솥 채로 주는 줄 알았는지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오는 순서대로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내용물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제법 묵직했다.

 

공원엔 곰탕 준다는 공지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밥보다 술이 더 고팠던 모양이다.

다들 수시로 나눠 줘 그런지, 그 고마움을 잘 모른다.

당연히 주는 것으로 길들어 버린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얻어먹기 위해 줄서는 것이 창피했지만,

이젠 안 주면 기다려질 정도로 뻔뻔스러워 졌다.

최소한 어디서 누가 주는지는 알아야 고마워 할 것 아닌가?

이게 가난한 사람들 길들이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방에 올라와 봉지를 열어보니 일회용 곰탕과 입회용 백반,

일회용 김치가 각각 네 봉지씩 들어있었다.

밥해먹기 어려운 주민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나흘 동안 매 한 끼씩 보신할 수 있는 최고의 먹거리였다.

 

덕분에 아침을 겸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해결했다.

누가 베푼 온정인지 모르나 고맙게 먹었다.

그러나 빈민들에게 밥 한끼로 안주하게 하는 것보다

자립하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들 기초생활수급자라 그 정도의 음식은 사 먹을 수 있다.

우린 거지가 아니라 사람이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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