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은 갖가지 병을 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숙자나 젊은 노숙인 중에 유달리 정신질환자가 많다.

 

내가 거주하는 쪽방 4층만 해도 8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오랜 노숙생활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끌고 쪽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에 들어온지 6년차인 최완석군의 증상은 그중 심한 편이다.

가끔 발작을 일으켜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착하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방세를 빼고는 대부분 술값에 탕진하지만,

 돈 없는 노숙인들에게 베풀며, 복 짓는 일을 한다.

 

두 번째는 나이가 제일 어린 박상민군인데, 이 녀석은 불장난하는 별난 습관을 가졌다.

불낼까 염려스러운 것 외에는 심부름도 잘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일 년 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쪽방에 들어 온 박종근군의 증상도 미미하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는 하나같이 바보처럼 착하다는 사실이다.

남 힘든 것을 두고 보지 못하며, 음식이라도 생기면 못 나누어 안달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은 쪽방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일체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우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고 몰인정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차라리 미친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다.

 

베푸는 것은 물론, 먹지도 않고 돈만 챙기는 걸 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죽고 나면 남겨줄 자식도 없는데,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바보처럼 베풀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텐데 말이다.

 

지난 26일, 준비해 둔 기념사진을 챙겨들고 나섰다.

식도락앞 골목에는 밥 얻으러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곳에서 이기영씨를 만나 부탁받은 영정사진을 전해주었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에는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노인들만 사는 쪽방촌 공원을

왜 어린이공원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이남기씨가 술 한 잔 마시라지만, 사양했다.

 

몸이 아프니 술도 독약처럼 보였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역에서 가장 고참인 김지은씨는 멋 부리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그 역시 정신질환을 가졌지만, 늘 즐겁게 산다.

 

그러니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 달라고 졸라대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다.

 

 

한꺼번에 프린트하느라 바로 뽑아 주지 못하는,

마침 이기영씨 영정사진 만드는 김에 김지은씨 사진도 함께 만든 것이다.

 

'서울역광장'에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공사장 틈 은밀한 곳에 텐트를 쳐 놓았더라.

찍은 사진 중 시계를 주렁주렁 낀 사진이 제일 멋지다며 낄낄거렸다.

 

한 곳에는 노숙인들 선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나,

관련된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신나는 유행가로 유인했으나, 컵라면 나누어 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다들 먹는 일 외에는 관심 없는 듯 했다.

 

힘없이 광장 구석에 웅크려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노숙인 모습에서 인간 사육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만 주면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드니까...

 

그들은 미치지 못해 천국 열차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바보처럼 미쳐야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미치고 또 미쳐야한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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