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지겹다.
쪽방의 더운 바람을 돌리지만, 그것마저 꺼버리면 질식한다.
정선에서 허리를 다쳐 일주일째 더러 누워있다.
약을 먹어도 신통찮아 쉴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유일한 소식통이다.
라면과 미숫가루가 넉넉하니, 먹을 것은 걱정 없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정선덕씨가 심어 놓는 고추와 오이가 잘 자랐더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징그럽게도 컸다.
옥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풍경이다.
늘어놓은 빨래와 꾀죄죄한 옥탑 방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어제 아침엔 꼼짝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죽을 끓여 내밀었다.
고맙지만, 죽을 좋아하지 않아 부담만 되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눈 감은 김에 스르르 갔으면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산목숨이다.





구부정한 폼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몸을 추스렸다.
친절한 은자씨가 방정맞게 앉아 아이스케키를 먹고 있었다.
천천히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어, 한 입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날씨가 더워 유난히 얼음과자가 그리운 날이다.






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낮선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용산고등학교 전기과 학생들이 동자동에 봉사활동 하러 나왔단다.
건물 주인들이 해 주지 않는 공사를 학생들이 하는 모양인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내 방도 전기가 나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대부분 돌출된 외부선이 아니라 건물내부의 오래된 전선이 문제다.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였는데, 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일 것이다.






원용희씨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워 지난 번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전해주려니,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나를 좀 보잖다.
지난 달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글을 보았다며, 그 지적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날 준 일회용 곰탕은 답례가 아니라 있는 물건을 주었단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줄 세우는 짓을 그만둘 수 없냐고 다그쳤더니,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 골라가도록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푸드마켙’은 용산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쪽방상담소와 상관이 없단다.
그래서 옥상옥인 쪽방상담소를 없애고, 그 일을 동사무소에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여유 있게 해도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을 탓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도 줄을 서지 않냐?"는 말처럼 들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줄을 서야 그 일을 기록할 수 있지만, 줄서는 사람 고충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 바꾸라고 말할 것 아니가?






날씨가 더워 공원 곳곳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락을 돌리던 원용희씨가 찾아 와, 한 개 남았다며 날더러 먹으라고 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밥 생각이 없어 청소하는 황옥선 할머니에게 넘겼다.
다들 입맛이 없으니, 술만 마시고 자는 것 같았다.






더운 선풍기바람 돌듯 다들 그래그래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주는 돈벌이에 급급하고, 일하는 사람은 편한 방식만 고집하고,
가진 것 없는 빈민들만 모든 걸 감수하지만, 인정 하나는 변치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 부니, 죽지 못해 잔소리를 해댄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새로운 노숙자 한 사람이 입성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
잠자리 때문에 챙겨 왔으나,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밥 얻어먹으러 가거나 화장실 갈 때마다 보따리를 들고 다닐 수야 없지 않은가?
길가에 잠깐 두고 가지만, 언젠가는 환경미화원의 손에 들려간다.
그 때야 비로소 노숙자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버리면 마음이 한 결 편하다는 것을...






교회 벽 앞에는 쪽방사람이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꽃밭이 그리웠던지, 떠도는 화분으로 꿈을 모았더라.
비록 한 평짜리 쪽방 인생이나, 꿈을 펼쳤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한 쪽에는 수박장사가 수박을 잔뜩 풀어 놓았다.
그러나 장소를 잘 못 골란 것 같다. 쪽방 촌엔 수박이 팔리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다들 좁은 방에 혼자 있는데 그 큰 수박을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그리고 동자동을 길들이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토록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 불렀으나, 쇠귀에 경일기다.
몇 일전 롯데에서 선물을 보냈는데, 숫자는 주민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량이란다.
량이 모자라 줄 세울 수밖에 없다지만, 푸드마켓에 넘기면 되지 않는가?
거기서 필요한 것 골라 가면 될 텐데, 그렇게 생색내고 싶은가?






물건을 타기위에 일찍부터 나와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필요 있는 상품도 있었으나, 필요 없는 상품도 많았다.
그 다양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전해주는 방법은
푸드마켓에 넘기는 방법 뿐 인데, 갑 질 거리를 넘기기 싫은 모양이다.






박원순 시장님! 제발 쪽방상담소 일을 동 사무소에 통합시키세요.
갑 질하는 일자리 창출해 무슨 똥바가지 덮어쓰려고 그러십니까?

그만 하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 처음 왔을 때,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려줄 가족도 없고 오래 살지도 못할 사람이 돈을 이불 밑에 파묻어 둔다던지,

줄 세워 나눠주는 선물에는 목을 매지만, 더 좋은 문화혜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 외에는 하루 종일 좁은 방에서 외출 한 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기거한지 3년이 가까워오니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길들어 가고 있었다.

서민 복지를 위한다는 사탕발림의 정책들이 재기할 수 없도록 주저앉히며,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사라는 빈민보호구역처럼...


 

나 역시 건강에 문제가 생겨 주민들과의 술자리를 자제하니,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많다.

이젠 일기 쓰듯 블로그에 올리는 일조차 귀찮아 졌다.



몇 일전 샘터편집장 이종원씨가 찾아와, 요즘 왜 동자동 소식을 올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하듯,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일에 매달리기 싫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기장처럼 올린 사진에, 딴지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초상권이 있다거나, 왜 관심 없는 이야기를 올리냐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지 않으면 되고, 그래도 눈에 거슬리면 페친을 끊으면 될 것 아닌가?

그가 못한 일을 대신 끊어주었지만, 씁쓸했다.


 

이종원씨가 떠나고 난 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다시 힘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는 일이 더 급해, 마무리 할 일을 서두르기로 다짐했다.

아파 누워버리면 끝장인데, 더 미룰 일이 아니었다.


 

요즘 갑자기 날씨가 더워 그런지,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다.

의욕을 잃어 술 취한 사람도 있지만, 더운 쪽방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서울역 주변에도 여기 저기 모여 술을 마셨고,

그 날 밤은 열심히 사는 원용희씨까지 길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얼마 전에는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사건도 있었다.


 

3년 전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까지 올린 김만귀씨가 심경섭, 김정호씨 등 많은 사람의 돈을 빌려 날라버린 것이다.

밝혀 진 액수만 2,400만원이라는데, 쪽방 사람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악착스레 모은 돈을 사기꾼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쪽방 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순박한 사람들 속에 깡패, 양아치, 사기꾼도 있지만,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엔 큰 사건만 터지면 서울역 부근에 사는 전과자부터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기야! 불쌍한 사람 등쳐먹는 그 놈인들 편하겠나?


 

이달 초순에는 옆방에 사는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방문을 두드리며, 라면받으러 공원에 나가자고 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주선으로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검진을 하는데, 엑스레이를 찍으면 라면 열개를 주었다.



다들 건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라면 때문에 검진을 받는 것이다.

목숨보다 라면이 더 급한 사람들이다.


 

지난 17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반상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지만 다들 관심이 없다.

쪽방상담소 체제가 바뀌기 전인, 도망친 김만귀씨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20-30명 정도 나왔으나, 그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참석한 분은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하여 김원호, 김정길, 전인중씨 등 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가 올 여름 날씨가 더운 날에는 지하에 있는 회의장에 나와 자라거나,

몇 일후에 있을 화담 숲나들이에 참여해 달라는 등 통상적인 공지사항이었다.

일회용 곰탕 몇 개 담긴 봉지로 걸음 값을 대신했지만...


 

제발 신바람 나는 좋은 일이 아니라면, 이런 형식적인 회의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뭔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처럼 구색이나 맞추는 이 따위 일에 왜 시간을 소모하는가?


 

지난 20일은 샘터이종원 편집장이 쪽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몇일 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난감했다.

내가 도와준 서울문화투데이와는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했으나,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종원씨는 작년에 만나적도 있지만, 사진가 김수길씨 친구라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처지라 문자를 씹었더니,

그 이튿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 못할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동자동이야기를 빼고 하겠다기에 마지못해 승낙한 것이다.


 

오후 세시 무렵, 공원 앞에서 이종원씨를 만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사는 이야기에 동자동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 걱정스러웠다.

좀 있으니, 남원에 사는 사진가 최선호씨가 주소만 들고 쪽방으로 찾아왔다.


 

프로필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골목에서도 사진을 찍었는데, 지나가던 이배식씨가 쳐다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오늘은 찍히는 신세가 되었네


 

일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소주 한 잔 나누었다.

많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 자리에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했다.

술만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는 버릇이 뒤늦게 걱정되었다.

편집장께서 잘 걸러 옮겨야 할 텐데...


 

21일은 동자동 공원에서 오랜만에 박성일씨를 만났다. 넓은 집으로 이사 했다며 집 구경 가자고 했다.

따라가 보니 아내 박소영씨 혼자 있었는데, 집이 꽤 넓었다. 거실까지 있었지만, 옮겨놓은 짐은 별로 없었다.


 

좋은 집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구세군에 어려운 사정의 편지를 보내는 등 곳곳에 도와달라는 SOS를 보냈다고 한다.

덕택에 구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입주하게 되었는데, 그 이자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노숙 10년에 쪽방생활 16년차인 박성일씨는 3년 전 박소영씨와 짝을 맞춰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으나,

쪽방에서 뚱뚱한 아내와 함께 살기가 어려웠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닌 지가 여러 차례지만, 이제 한시름 놓은 것 같다.


 

그런데, 몰랐던 소식도 전해 주었다. 동자동 주민 100여명이 변두리 임대주택으로 이사 갔다는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동자동 개발에 따른 물밑작업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도 김만기에게 돈을 빌려주었으나, 돈이 급한 아내의 채근으로 간신히 받아냈다며 한숨을 썰어 내리기도 했다.


 


22일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화담 숲으로 단체 나들이를 했다.

마침 김용철, 김정심씨가 옆자리에 있기에 은근히 마음을 떠 보았다.

두 분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결혼해 같이 살면 어떠냐고 말했더니, 한사코 손사래 쳤다.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여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주거비 20만원이 줄어든다는 말인 것 같은데, 오나가나 그 놈의 돈이 원수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기초생활수급비를 탈 수 없는 사각지대의 노숙자도 많지만,

조금만 수입이 생겨도 잘리거나 삭감되어, 아예 일을 하지 않게 만드는 기초생활수급 규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

자립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최소한 희망은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사진, / 조문호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동자동 주민들을 줄 세워, 또 사람을 길들인다.





지난 5일은 삼성에서 주는 선물이라 묵직했다.
작년처럼 물량까지 충분해 천천히 나누어주어도 될 일이었다.
아홉시 반부터 나눠주기 시작해 열두시에 끝났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날씨까지 추워 두 시간을 벌벌 떨어야 했다.






나누어 주는 절차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삼 백미터나 되는 긴 행렬이 가관이었다.
그런 걸 노렸는지, 이엔지 카메라까지 동원되어 짐 날라 주는 봉사활동까지 샅샅히 찍었다.
제발, 선심을 써도 조용히 소리없이 모르게 하라.






2년 넘게 쪽방 촌에서 살다보니, 나도 슬슬 길들기 시작한다.
공짜 좋아하며, 은근히 주는 게 기다려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얻어먹는 게 부끄럽지 않고, 뻔뻔해 졌다는 것이다.






처음 동자동 들어오니, 보컬그룹 레이더스의 ‘인디안 보호구역’이 생각났다.
인디안은 아니지만, 빈민 보호구역으로 여겨졌는데,

우리들을 보호구역에 가둬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 돌도끼 그리고 칼과 할마저 빼앗아 갔다

노래 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시로 먹을 것 나눠주며,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육이나 다름없다.
주는 떡이나 받아먹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 아니가?

우범자들을 한 군데 모아 관리하는 것 같기도 한데, 종종 정치적 쇼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서울시에서 ‘쪽방상담소’란 것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오갈 때 없는 노숙자를 위한 ‘노숙자상담소’라면 모르겠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별도로 만든 것은 다른 저의가 있는 것 아닌가?
차마 줄 세워 길들이는 일을 공무원한테 맡겨, 똥바가지 덮어 쓸 필요 없다는 거지...






이 날도 '삼성화재'에서 50여명의 도우미가 나왔으나, 노약자들 짐 옮겨 주는 일만 했다.
내 앞의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일어 설 수 없어, 시멘트 바닥에 퍼져 않아 한사람 빠지면 자리 옮기기를 반복했다.
지나가는 삼성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며 신분증을 줘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이 그러겠다며 받아 가더니, 한 참 있다 와서는 본인 확인이 안 되면 불가능하단다.






에라이! 이 융통성 없는 죽일 놈들...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권위적이고, 갑질하는 못된 짓만 배웠다.
그런 원칙이 똑 같이 지켜지면 말도 안한다.






할머니께서 한 시간이나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시니,
쪽방사무소를 들락거리는 완장부대가 신분증을 받아가 해결해 주더라.
아는 사람은 새치기도 받아주면서...






마침내 두 시간 만에 내 차례가 돌아 왔다.
한 사람이 컴퓨터에 입력하여 넘겨주면, 한 사람은 신분증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고 적더라.

그리고는 본인에게 서명까지 하라는데, 그 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두 군데나...





글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 많은데, 해보지도 않은 사인을 두 군데나 하려니
오죽 시간이 걸리겠는가? 추워 손가락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데...
시간이 지체될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늘리면 될 텐데, 끝까지 노인들을 추위에 떨게 했다.






선물을 받아 열어보니, 작년처럼 쌀, 라면, 통조림, 김 등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그걸 보니,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구호물품으로 준 시레이션 박스가 연상되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나라미’ 쌀 주지, 푸드마켓 에선 김치 주지, 토요일은 교회에서 빵 주지,
수시로 이런 저런 것들을 나눠주니, 줄만 서면 가만있어도 굶어 죽을 염려가 없다.






이러니 임대주택에 독립해 나간 사람조차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새집에 살면 뭐하냐? 먹을 것이 없고 친구가 없는데...






제발 줄세워 길들이는 짓은 그만해라.

"안자 마이 뭇다 아이가”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은 빈민들에게 베푸는 혜택이 다양해졌다.
일 년에 육만 원을 사용할 수 있는 문화누리카드를 동사무소에서 만들어주더니,
얼마 전에는 푸드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도 발급해 주었다.
‘용산 사랑 나눔 푸드마켓’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네 가지의 상품을 가져갈 수 있는 카드라 했다.






뭔지 궁금해 당장 푸드마켓을 찾아 나섰다.
조인형씨는 골목에서 냉장고를 분해하고 있었고, 마침 이기영씨가 지나갔다.

위치를 물었더니, 한강로 큰 길가에 있다며 자세히 알려 주었다.
어렵사리 푸드 마켓은 찾았으나, 뭘 골라야 할지 한 참을 망설였다.






처음엔 가격이 비싼 상품에 관심이 갔으나, 당장 먹을 수 없다면 짐일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쵸코파이 한 상자, 일회용 커피 한 상자, 라면 5개를 골랐다.
나머지 한 가지는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특별한 초콜릿을 골란 것이다.
포장지에 ‘마켓-오, 생 초콜릿 밀크’라 적혔는데, 냉동실에 보관하라는 주의말도 들었다.
그런데, 매장직원이 골란 상품을 살펴보더니, 고맙게도 냉동 닭 한 마리를 덤으로 줬다.





집에 돌아와 닭의 포장을 벗겼더니, 아주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웃음이 절로 났다.
그리고 처음 본 초코릿을 한 점 집어 먹었더니, 입에서 살살 녹았다.
초코릿 상자 안에 얼음봉지까지 담긴 것으로 보아 싼 가격은 아닐 것 같은데,
거지 주제에 입 호강한 것이다. 언제 이런 맛있는 초코릿를 먹어볼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게 빈민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선착순으로 줄 세워 나눠주는 것은 주민들을 타자화 시키고, 자괴감을 높이는 나쁜 방법이다.
들어오는대로 나누어주는 상품은 비좁은 쪽방에 짐이되는 것도 있다.
생색내기 좋은 줄 세우기를 그만하라고,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으나 마이동풍이다.






앞으로 빈민들을 위한 식료품 배급 라인은 푸드마켓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
온정으로 전달되는 상품은 모두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빈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량을 늘려주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동자동에 거주하는 빈민만이 아니라, 노숙하는 이들도 카드를 발급해 주어야 한다.




 


주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쪽방상담소는 없애고, 그들이 맡은 업무를 동사무소에 이관하라.
왜 옥상옥을 만들어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냐?



사진, 글 / 조문호























오늘은 동자동 거지들의 입이 코에 걸렸다.
날씨가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꾼들이 다 모였기 때문이다.
술을 쌀쌀할 때만 마시는 건 아니지만, 추워야 제 맛이 난다.
술이 고파 한 잔, 떨려 한 잔, 하다보면 춘 삼월이 다 오간다.





대부분 추운 겨울을 더 걱정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다.
요즘 없는 놈들은 여름이 더 힘들다.
아무리 쪽방이지만 전기장판만 있으면 추운 줄 모르지만,
여름철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고, 술 마시기도 지랄같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쪽방촌에 구호의 손길이 이어졌다.
몇일 전에는 '대한적십자사'와 '용산복지재단'에서 김치를 나누어주었고,
KT에서는 겨울 옷가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거지 상팔자라는 옛 말이 실감나는데,
이런 온정이 없는 자들에 골고루 나누어지는지 모르겠다.






지난21일에는, 이틀 동안 정영신씨 장터여행길 가방 모찌로 따라나섰다.
경상북도 군위에서 영덕을 두루 거쳐, 밤늦게 돌아와 잤는데,
이것도 나이라고, 늦잠에 빠져버렸다.
후닥닥 나갔으나, 화요일의 먹거리배급은 종쳐 버렸다.





다 떠나버리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던 이준기가 날 반긴다.
“행님! 오데 갔다 이제 오요?” 죽은 기집 살아온 듯 반기면서,
목발로 쩔뚝거리며 매점에 가서 뚜꺼비 한 마리를 잡아왔다.






컵 두개에 나누어 부어  단판에 끝낼 기세다..
이준기는 원 샷을 했지만, 따라했다간 죽는다.
시름시름 마셨더니, 지루한지 준기가 캐물었다.






“행님 요새는 와 인터넷에 사진 안 올리는 기요?”
올리는 걸 싫어하는 놈도 있다고 했더니,
“그 자슥 사진은 빼 버리고 올리마 안 됩니꺼? 라며 투덜댔다.
오늘 올리겠다고 했더니, 공짜로 머리 깎아 주는 곳이 있단다.






술이 부족해, 막걸리 두 병 사들고, 노숙천사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유정희가 병원에 납치된 후로 조용술이 물러 받았는데,
쪽재비와 병학이를 비롯한 여섯 명이 술내기 화투짝을 돌리고 있었다.





화투와 거리가 먼 놈은 조용술이 뿐이라 둘이서 홀짝거렸다.
용술이는 참 착하다.






노가다로 하루 나가고 하루 쉬는데,
그 돈으로 어려운 친구들 술도 사주고, 고스톱 밑천도 대준다.
없는 놈들의 진득한 인정을 있는 놈들은 잘 모른다.
돈이란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유일한 희귀종이다.






“나이는 몇 살이고?”라고 물었더니, 제 나이도 잊었단다.
61년생 소띠라는데, 바뀌는 나이는 기억해 뭘 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력만 간 게 아니라, 정력까지 갔단다.
한참 꽃 띠에 거시기가 말을 안 듣다니, 귀가 막혔다.
하기야!~ 풀 곳도 없는데, 선들 어디에 쓸소냐?






여자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던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CCTV가 작동 중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사람만 나타나면 반복했는데, 머리 위에는 CCTV가 내려보고 있었다.
아! 기분 더럽더라. 24시간 감시당하는 곳에서 산다는 게..
술김에 욕을 퍼부었다. “야이 씨발 년아~ 사람이 쓰레기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6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의 화요카페에서 식품을 나누어 주는 날이다.
모처럼 시간이 맞아 배급장소인 ‘새꿈어린이공원’으로 나갔는데, 주민들이 30분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날 나누어 줄 식품은 고구마라는데, 220명에게 나누어 줄 분량이라 했다.
줄 선 인원을 짐작할 수 없어 차례를 기다렸으나,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줄도 서지 않고 돌아 다니던 김창헌씨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 걸었다.
이 친구는 한 동안 사라졌다가 올 추석 무렵에야 나타났다.
듣기로는 교도소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확인 차 물었다.
어제는 새벽 두시에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했다.






“일 년 2개월 동안 도대체 어디 갔다 왔어?”
“빵에 갔다 왔지”
“무슨 죄로 갔냐?”고 물었더니 “집시법 위반”이란다.
거짓말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하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만 했다.
페이스북을 자기가 개발했다는 둥, 내일 히말라야로 떠난다는 둥,
대통령 전용기로 간다는 둥, 횡설수설해댔다. 아무래도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작년에는 멀쩡했던 사람이 일 년 남짓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침 지나가는 김용만씨를 만나 프린트 해둔 사진을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또 한사람 전해주지 못한 유정희씨를 찾았는데, 병원에 입원한지가 한 달가량 되었다는 것이다.
동자동에서 보이지 않으면, 교도소에 갔거나 병원에 수용된 것이다.
교도소에 간 사람은 언젠가는 나타나지만, 병원에 간 사람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






시간이 되어 고구마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줄이 줄지 않았다.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 왔으나, 나누어 주던 고구마는 소진되고 없었다.
내 뒤에도 백 명 가까이 줄 서 기다렸는데, 다들 허탕 친 것이다.
줄 세우기는 매번 타는 사람만 타는 불공평한 나눔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처사라 한사코 반대해 왔지만, 잘 시정되지 않는다.






몇일 전 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주민자치회의에 참석하였더니, 김갑록소장이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화요카페의 식료품은 봉사단체에서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매번 200명 정도의 분량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분은 방문하여 나누어주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매 주 나누어 주는 것을 한 달에 한번으로 조정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주민들을 네 파트로 나누어 첫째 화요일이나 둘째 화요일 등 해당되는 화요일에 찾아가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좀 더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줄 세우기만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자꾸 하면 싫다는데, 언제까지 이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
제발 ‘줄 세우지 말라’는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 다오.

거지 배급주는 꼴로 그렇게도  생색내고 싶나?



사진, 글 / 조문호














 




올 추석은 유달리 추석선물로 고민을 많이 했다.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추석선물을 지켜보며,
이제는 쪽방촌 선물은 셀프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올해도 각종 기업이나 단체에서 보내 온 선물을 예년처럼 줄 세워 나누어주었는데,
하나같이 주민들을 거지 구호물품 나누어 주듯 생색냈다.
대개 양념이나 라면, 부식 등 먹거리와 관련된 선물로 중복된 것이 많은데다,
네 차례나 줄 세워, 줄때마다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구정이나 추석마다 온정이란 이름표를 달고 행해지는 관행은
불편과 낭비도 따르지만, 주민들을 쪽팔리게 만든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생색내기로 거지 동냥주는 기분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하청 준 ‘쪽방상담소’의 업무는 이제 동사무소로 통합시키고,
쪽방 촌을 빈민구호의 홍보장소로 활용하는 짓을 이제 그만하라.
한마디로 쪽방 촌을 정치인들 언론프레이 하는 무대처럼 여긴다.
동자동을 빈민구호지역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주민들을 타자화시켜 자립심을 잃게한다.

주는대로 얻어 먹고 시키는대로 살라며 서서히 길들여 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기업이나 단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은 전국 동사무소로 보내라. 
상품으로 보내지 말고 현금으로 전달하여 동 사무소에서 통합하여 빈민들에게 배분하라. 
빈민들에게 일정한 상품권을 나누어 주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라.




 


상품권도 동사무소 직원이 직접 전해 주던지,
아니면 본인이 동사무소에서 직접 찾아가게 하라.
상품권을 줄 때, 어디에서 보내 온 선물이라는 내용도 알려주고...






이번에도 줄서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 받은 선물들을 살펴보니,
중복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많은데다, 비좁은 쪽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선에 가져가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줄 작정으로, 그냥 묶어두고 나왔다.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라 지하철을 탔는데,
대개의 직장인들이 추석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래 전에는 명절마다 선물을 받거나, 선물 전해주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사실 명절마다 선물을 받는 것이나 주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습이라 나름으로 주고 받아 왔는데,
동자동에 들어 온 후로는 선물은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주는 쪽방상담소 선물만 받아 왔다.






그런데, 뜻밖에 울산에 있는 오세필씨가 황금배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그 배를 나누어 먹다보니, 나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 한사람을 누구로 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 갔더니,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정복수, 전강호, 이종순,
최종선, 이인섭, 유진오, 이도윤씨 등 반가운 분들을 여럿 만났다.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술 한 잔 나누기로 한 적이
일 년 가까이 되었으나, 특정한 장소를 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와도 만나지 못하는 분이 더 많은데다, 잘 나오지도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송추에서 나와 준 전강호씨가 그날따라 고마웠는데, 반가운 제안을 해 왔다.
가까운 분들끼리 자기가 사는 송추에서 가을소풍을 한 번 갖자는 것이다.
조촐한 술상을 차릴 테니, 시월 하순경의 주말을 택하자고 했다.
날짜를 잡아 연락한다고 일어나며,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을 내놓았다.






그 돈을 보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진즉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세진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감동스러워했던 일을 떠 올렸다.
오래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묘지를 걱정한 적이 있었는데,
이웃의 최연규씨가 묘지로 쓸 명당이 있다며, 자기 땅을 그냥 사용하라고 한 것이다.






그 오래전의 일이 떠올라 최연규씨 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어렵사리 선물 살 돈과 함께 보낼 곳도 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크고 작고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선물은 참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외에 도움 준 많은 분들께는 저의 마음만 보냅니다.
부디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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