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순식간에 물러나고, 어깨를 짓눌렀던 아들 결혼식도 잘 마쳤다.
하늘을 날 듯 홀가분해야 하는데, 왠지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허롭다.






지난 3일 오후 여섯시 무렵에는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가야했다.
정영신씨가 결혼식에 오신 분들을 모셔서 술 한 잔 대접해야 한다는 채근에서다. 
비오는 날 술 마시러 나오라는 자체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데다, 
스스로 술자리 만드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정영신씨가 술값은 걱정 말랬으나, 연락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누군 하고 누군 하지 않으면 욕먹을 수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전화번호를 모르는 페친도 있는데 말이다.






불편한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날씨마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러나 ‘유목민’에 나온 인사동 사람들을 만나니, 불편했던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그 분들 얼굴만 쳐다봐도 술이 땡기더라.






김명성, 오세필, 임태종, 전활철, 장경호, 김태서, 임헌갑, 임경일씨가 먼저 자리 잡았고,
뒤이어 김 구, 이정환, 김효성, 김종신, 이인섭, 공윤희, 이상훈, 이태규씨가 나타났다.
인사해야 할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런 구분조차 무의미했다.
다 반가웠다.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하다 보니 슬슬 취하기 시작했는데, 
내일이 내 생일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공윤희씨가 케익 하나를 사 온 것이다.
하루 당겨 생일파티도 하자는 배려였지만, 내가 제일 거북하게 여기는 일이 아니던가.

생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관심도 없지만, 축하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예전에는 모르게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요즘은 폐북 때문에 인사받기 바빠,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탈퇴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모두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난 왜 이리 생각이 비뚤어졌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나무라며 홀짝홀짝 마셨더니, 손님보다 내가 먼저 취해 버렸다.






술 취한 핑계로 모든 뒷 일은 정영신씨에게 떠넘긴 채, 혼자 동자동으로 도망쳤다.
택시비까지 얻어 왔으나, 사람 차별하는지 택시조차 나를 피해 다녔다.
결국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탔는데, 제발 주제 파악 좀 하라는 것 같았다.





굳은 택시비로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 더하려고 서울역사 방향으로 갔는데,
아는 자들은 모두 취해 뻗어 있었다.
꾸물꾸물한 이 날씨에 어찌 취하지 않고 견딜소냐?





마침 술이 덜 취한 유한수씨가 나를 보더니 반색 했다.


소주 한 병으로 끝내고 방으로 기어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정영신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날 술 값을 김효성씨가 먼저 계산해 버렸다는 것이다.
혹 때려다 붙인 격인라, 제발 쓸데없는 일 좀 만들지 말라며 죄 없는 정영신씨께 신경질을 부렸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아, 서울을 잠시 떠나려고 작정했다.
내일 정선으로 떠나 심신을 추스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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