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엔 연극배우 이명희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시가연’으로 오라는데, 일이 있어 차를 끌고 나와 버렸다.
지난 밤 과음해 술은 마시지 않을 작정으로 찾아간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나리는 인사동 밤 거리가 술을 불렀으나, 이를 어쩌랴!
‘시가연’에는 이명희씨를 비롯하여 정영신, 강경석, 박경룡씨가 나왔다.
‘시가연’의 김영희씨로 부터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여덟시부터 김선범씨 무대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선범씨는 울산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고 올라 온 분인데,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홍수진과 가까워 나도 잘 아는 분이라 했다.
그러나 만나보니,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엊그제 만난 분도 잊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필름을 돌릴 수가 없었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동아리를 30년 동안 지도했다고 한다.






좌우지간 김선범씨의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첫 곡이 그 날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로 시작되는 이장희의 ‘비의 나그네’였다.
‘쟈니기타’를 비롯하여 80년대 시절 노래들이 지난 추억을 새록새록 불러들였다.
이명희씨는 김현승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구성지게 낭송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기도와 사랑과 고독이 삼위일체가 되어 자연에 동화하는 아름다운 시였다.






‘시가연’을 찾은 손님들도 틈틈이 불려나가 노래 한곡씩 불렀는데, 다들 가수 빰 치는 솜씨였다.
난, 술 마시지 않으면 노래는 커녕 말도 한마디 못하는 숙맥이 아니던가.
오후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장장 다섯 시간을 눈앞에 술을 두고도 못 먹는 고문을 당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주여! 다시는 이런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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