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이런 저런 관습에 따른 저항에 부딪힌다.

가난한 형편에 엄청난 돈을 예식비용에 쏟아 붙는 것도 그렇지만,

무슨 놈의 쓸데없는 격식은 그리도 많은지...



 


결혼식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더러워진 몸의 때보다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다.

탕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런 저런 불편한 마음을 닦아내며, 아들의 행복을 축원했다.

그 불편한 마음들은 모두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좋은 말도 잘 못 전달되면 욕이 될 수 있고, 별 것 아닌 말도 오해하면 독이될 수 있는 것이다.

더러는 선입견이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는 말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불편함을 유발시킬 때가 더 많다.

잘못된 일을 알게 되면 아무리 가까워도 지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일도 감추지 않아 가족으로 부터 원망을 들을 때도 있다.



 


그리고 종교는 잡종이다. 기독교에서 천주교, 불교를 두루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은 토속적인 무속을 좋아하나, 사실은 무신론자에 가깝다.

불쑥 종교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깥사돈 남선우씨와 친구 배평모씨,

그리고 내가 천주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돈이 된 남선우씨는 16년 전에 우연히 한 번 만난 적 있는 분인데,

상견례 자리에서 혹시 배평모씨를 모르냐?“고 물어 온 것이다.

자신이 배평모씨의 천주교 대부라는 것이다.

배평모씨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한 때 내 대부 역할을 한 적이 있어, 

그 별난 인연에 놀랐다.



 


배평모씨에게 전화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연락처를 몰라 끊어진 사돈과의 관계가 다시 복원된 것 같았다.

오지랖 넓은 친구라 걱정은 되었으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에게 전화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식 놈이 속도위반해 손자 가졌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자랑이지 욕일 수 있나?

싸가지 없는 말버릇에 더 울화가 치밀어 니 걱정이나 하라”는 말이 튀어 나왔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혼식에 참석한 다음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 전화로 알고 잘 내려갔냐?‘며 인사부터 했는데다시 신경 건드리는 이야기를 꺼냈다.

너의 사돈과 통화를 했는데..“라는 말에 갑자기 불쾌했던 그 날이 생각났다.

데없이 사돈에게 전화질 해 말 물어 나르지 말라며 끊어 버렸다.



 


또 다른 일은 정영신씨에게 일어 난 이야기다.

그동안 햇님이를 친자식처럼 여겨 물심양면으로 애를 많이 써왔다.

결혼식에도 나가서 인사동 축하객을 맞기로 약속했는데,

당일엔 전화를 꺼 놓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이 찾았지만 감감소식이었.



 


결국 결혼식이 끝난 밤 늦게서야 만났는데, 그 사연을 들으니 귀가 찼다.

어느 지인의 전화질에 마음이 상해 하루 종일 돌아 다니며 방황했다는 것이다.

“네무슨 자격으로 예식장에 가냐?”며 가서는 안 될 자리라고 충동질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햇님이 친모도 니 색시는 안 왔냐?”며 걱정했는데 말이다.

사람 관계란 만들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다들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참견해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 뿐 아니다. 혼주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안 되고, 사진도 찍으면 안 된단다.

별의 별 관습이 나를 다 불편하게 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양복을 입기 시작했으며,

사진찍는 것은 반가운 사람 만났을 때 하는 나의 인사법이다.

사람 찍는 사진쟁이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떻게 그냥 둘 수 있겠는가?

길들어 온 민족성 때문인지, 관습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난리 나는 줄 안다.

자기에게 조그만 덕이 되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난 24일 밤은 결혼식 전야제를 하자는데, 술 마실 핑계도 다양했다.


울산에서 오세필씨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김명성, 최백호, 이상훈씨도 인사동에 나와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부터 찾았으나, 태풍소식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여자만부산식당을 거쳐 결국 '툇마루'에 자리 잡은 것이다.



 


김명성, 최백호씨는 결혼식 날 선약이 있어 축의금만 보냈단다.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려 했던 말이지만, 예의가 아닌 말을 뱉고 말았다.

한 사람 식대가 오 만원씩 들어가니, 안 오면 더 좋아





'유담'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유목민에 장경호, 김상현, 이한성씨도 있었다.

지나가던 이정황감독까지 합세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제작에 관심 많은 최백호씨가 은근히 걱정되더라.



 


결혼식을 끝낸 그 이튿날은 유목민에서 착복식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불편한 양복을 입어 착복식이라 이름 붙였지만,

지방에서 올라 온 벗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만든 핑계거리였다.

옛날 시골에서 결혼하면 이웃이나 친구들이 어울려 하루 종일 놀았는데,

요즘의 결혼 풍속도는 너무 야박해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집부터 들려 편치 않은 양복부터 벗어버렸다. 그리고 불편한 틀니도 뽑아버렸다.

결혼식 때문에 틀니를 끼웠더니,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발음까지 정확하지 않았다.

마치 광대처럼 차려입은 불편한 것들을 모조리 해체하니 속이 후련했다.



 


유목민에는 신동여씨를 비롯하여 조준영, 김용문, 박상희, 전강호, 임태종,

유진오, 이명희, 전활철, 이정환, 성유나씨가 있었고,

툇마루에는 장경호, 헨리윤, 김진두, 배성일, 신상문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목민으로 합류한 뒤에는 이인섭, 신명덕, 한상진, 공윤희씨도 나타났다.



 


그런데 착복식 한다며 큰소리치고 나갔는데, 지갑에 돈이 십만 원 밖에 없었다.

정영신씨를 만나지 못해 생긴 일로, 돈도 없으면서 혼자 큰 소리 친 셈이다.

처음엔 임태종씨가 계산하고, 나중에는 조준영씨가 부족분을 메웠으나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자식 핑계로 즐겁게 놀긴 놀았는데, 너무 취해 버스 종점까지 가버렸다.


어차피 내 인생은 좌충우돌 연착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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