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노숙인 중에는
세상에서 밀려 난지 얼마 안 된 초보도 끼어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아 대개 지하도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충전하며 시간 보낸다.
어떤 이는 담배 생각에 서울역광장 흡연구역을 맴돌며 담배구걸도 한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수두룩한 재떨이 꽁초는 손도 안 댄다.
그런 초보들은 잠깐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어딘가 비빌 구석이 생겼거나 일당 주는 일거리 따라 전전할 것이다.
간혹 영등포역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지를 떠돌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인도 있다.
하루가고 한 달 가는 세월 따라 그들도 하나하나 바뀔 수밖에 없다.
체납된 요금으로 핸드폰도 버리게 되고 등짐도 단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찾는 것은 밥보다 술이다.
채움 터에 가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 술을 사기위해 구걸을 한다.
술이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는 마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노숙 생활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시킨다.
어제는 오전 여덟시 무렵 거리에 나왔다.
낯 시간은 가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만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다.
동자동 새꿈공원엔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서울역광장도 술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직 코로나 검사받을 시간이 되지 않았으나,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쫓겨 옮겨가기 직전의 서울역광장 풍경이었다.
뜻밖의 노숙인을 만났다, 가구점하다 마누라에게 쫓겨 났다는 박씨를 일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며 노래까지 불렀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손사래에 얼른 집어넣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동료와 아내가 배신했다며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작년 봄이었다.
이젠 모든 근심 걱정을 버렸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편해보였다.
행색은 더 구질구질해 졌으나 그 것은 노숙인의 계급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영등포역에서 지냈는데,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났단다.
반가움도 잠시 뿐, 경계하는 눈빛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행여 소문 퍼트려 누가 찾아올까 걱정되어 서울역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사이 담배는 끊었고, 술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단다.
이 지경으로 만든 동료와 가족에 대한 미움도 이제 사라졌고,
돈에 대한 집착까지 사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옛날에는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사 가치를 알겠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세상이치를 환갑이 되어서야 깨우쳤단다.
아는 절집에 가서 일이나 도와주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웃는다.
자리 잡으면 연락해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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