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로 오나가나 독거의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다들 꼼짝을 안 해 만날 수도 없지만, 만나도 눈인사나 나눈다.

매일같이 모여 앉은 부랑자들은 주위의 시선도 따갑지만,

나 역시 감염에 일조하는 것 같아 어울리기를 꺼린다.

 

몇 달이 넘도록 주눅 들게 하는 ‘코로나’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다.

무더운 쪽방에서 도망쳐 와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지내다,

생각나면 돌아가는 반복된 나날을 보내는데,

컴퓨터와 노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어 버렸다.

 

지난 24일은 인삼드링크 받아가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공원은 한가했으나, 입구에 진을 친 병학이 아지트는 여전했다,

그 날 낯선 노숙자 한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많이 다쳤다.

먹는 게 없는데다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해서다.

 

신고 받은 119 대원이 달려왔으나 그들이 할 일은 없었다.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 옮겨야 했으나, 당사자가 손을 내저었기 때문이다.

한 푼도 없는 거지 치료비를 누가 낸단 말인가?

상처를 꿰매야 하지만, 머리에 붕대만 감아놓고 떠나 버렸다.

 

무덥고 갑갑한 붕대 따위는 이내 벗어 던져버렸다.

술로 소독하려는지 연신 술만 퍼마셨다. 삶에 애착이 없어 보였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무소유의 자유도 눈앞에 닥친 고통 앞에서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어떤 놈은 돈을 쌓아두고도 돈 욕심에 눈이 벌겋게 설치는데,

아무 것도 없이 살아도 기초생활 수급비도 못 받아 먹는 불쌍한 신세다.

불공평한 현실을 탓해봤자 무엇에 쓰겠는가?

 

그들과 달리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원희룡씨를 길에서 만났다.

원씨는 후원자로부터 도시락을 받아와 전해주기도 하고,

고물을 주워 모아 파는 등 무슨 일이던지 닥치는 대로 한다.

한 푼이라도 벌어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시골가족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서다.

 

할 일없이 혼자 사는 독거나, 방황하는 부랑자에 비한다면 선택받은 삶이다.

인삼액기스는 받았냐며 쪽방촌 정보부터 알려준다.

이제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줄 세우지 않아 언제든지 찾아 가면 된다.

진즉부터 그렇게 하면 될 일을 한 번에 끝내려는 속셈에 고집 부린 것이다.

 

상품을 주는 물품보관소에 들렸더니, 직원들 뿐이었다.

나누어 준지가 며칠 되었건만 많은 물건이 남아 있었는데,

다들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영양이 부족한 쪽방 노인들에게는 좋은 선물일 텐데...

 

상자에는 ‘제일제당’에서 보낸 ‘통째로 갈아 넣은 인삼 한 뿌리’라고 적혀있었다.

진짜 인삼을 갈아 넣었는지 뜨물 같은 흰 액체에서 인삼 맛까지 났다.

과분한 선물인 것 같았으나, 노숙자는 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몸 생각을 하지 않아, 줘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로운 쪽방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윙윙 되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맞으며 티브이 채널만 돌리고 있다.

가끔 인삼 액기스로 몸보신도 하겠으나, 그 넘치는 정력은 어디다 쓸까?

각자도생하는 세상, 혼자 재미있게 노는 방법이나 연구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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