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파극에나 나왔던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시국이다.

 

정치건, 성이건 모든 걸 편 갈라 등 돌리고 사는 세상이라 그럴 것이다.

가끔 SNS에서 안면 바꾼 날 선 공방을 보며, 이제 갈 때가지 갔다는 생각이 던다.

 

비운의 삶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구역질 난다.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여 여성을 대변한다는 뻔뻔스런 상판대기들 보는 것도 지겹다.

속 보이는 짓거리가 부끄럽지도 않을까?

 

나 역시 한 때 미투에 지목될 만큼 여자를 좋아했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이젠 여자가 무섭고 싫어졌다.

오죽하면 처와 딸을 가진 사내로서 여성에 혐오감을 가지겠는가?

 

그 가슴 두근거리던 아름다움과 처연했던 감정을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 남자는 늑대로 여자는 여우로 치며 잘 어울려 살았다.

 

이제 그만 끝내라. 제발 죽은 사람 두 번 죽이지 마라.

 

-2막-

 

“돗자리를 따르자니 돈이 울고, 선풍기를 따르자니 몸이 운다“

쪽방 주민들에게 선풍기와 돗자리 나누어 주던 날, 줄 선 서씨가 뱉은 말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

돗자리가 필요하지만 값 비싼 선풍기가 탐이나 하는 말이다.

 

작년 여름에도 선풍기를 주었으니,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 있다.

비좁은 쪽방에 모셔 둘 자리도 없건만, 대개 선풍기를 가져간다.

기껏 팔아야 오천원 남짓 받지만, 단 돈 오천원에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지난 17일, 모처럼 새꿈공원에 줄서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마트’에서 선풍기 300대, 서울시 50플러스센터 직원들이 대자리 380개를 후원해

동자동 쪽방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공고였다.

 

줄 세워 나누어주지 말라고 몇 년 동안 나팔 불어도 시정되지 않더니,

‘코로나19’ 덕에 그나마 고쳐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분량의 물자를 지하로 내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시간 있을 때 찾아가는 방법이 별 탈 없이 정착되어가는 중이라 당혹스러웠으나,

한 편으론 반가운 면도 있었다.

 

다들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혀 살아, 사람이 그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더냐?

 

모처럼 만난 벗들의 반가운 눈 꼬리가 초생 달처럼 징거러운데.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 알아채고 끈적댔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싱글 벙글하는 분위기에 다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행렬은 4년 간 지켜 본 중에 가장 긴 줄이었다.

정해진 낮 2시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 선 사람의 행렬은 골목골목을 돌아 오백 미터가 넘었다.

 

선풍기도 선풍기지만,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 나왔을 것이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으나, 코로나에 의한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다닥 다닥 붙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버리거나 반쯤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자칫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쪽방 빈민들 줄 초상 날 지경이었다.

 

더운 날씨에 줄은 줄어들지 않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

노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는 쪽 쪽 번호표를 줬으면, 이렇게 무더운 땡볕에 줄 설 일은 없지 않느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할 것 아니가? 씨발 넘들아!”

 

얼마나 “서울역쪽방상담소“ 욕을 많이 해대는지, 내가 할 욕을 잃어버렸다.

제발! 너희들 편리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가 남이가?”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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