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지난 명절연휴 끝자락에 인사동에서 독거들 밥상머리가 있었다.
장경호, 하태웅씨와 ‘툇마루’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같이 먹진 못했다.
장경호씨는 너무 일찍 와 먼저 먹어버렸고, 하태웅씨는 너무 늦게 와 먹지도 못했다.
중요한 것은 술꾼들이 술보다 밥을 먼저 챙겨먹었다는 사실이다.
긴 연휴동안 얼마나 곯았기에...






그런데 오랜만에 ‘툇마루’ 비빔밥을 먹었더니, 너무 맛있었다.
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막걸리를 두 주전자나 비워 재꼈다.
장경호씨는 어렵사리 이사한 자기 사정보다, 손장섭선생 작업실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미대 다니는 아들이 자기가 이사한 연신내로 합친다는 반가운 소식도 주었다.
드뎌 독거는 면했지만, 행여 아들놈 시집살이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들 때문이라도 끼니는 좀 챙길 것이고, 술도 좀 줄이겠지.
이야기 중에 치과의사 이세희씨가 죽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로마네꽁티’에서 와인을 엄청 얻어 마셨는데, 유난히 건강을 챙기던 양반이 아니던가?
매일 죽는다고 나발 부는 나는 멀쩡하고, 아직 짱짱한 양반이 먼저 죽다니, 세상사 참 새옹지마다.
난, 대장암 걸린 신경림 선생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제발 무탈하시길 빌 뿐이다.






술 마시다 밖에서 담배피우고 있으니, 그 때야 하태웅씨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술자리 끝났다며, 밥도 한 그릇 먹이지 않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유목민’에는 공윤희, 이회종, 전월봉씨 등 반가운 사람이 여럿 있었다.
취기가 올랐으나 이번엔 소주 한 병을 시켰는데,
화가 전월봉씨가 즉석에서 내 몰골까지 스케치 해주었다.






그런데, 왜 그림에다 보증수표 만원이라 쓰 달라고 졸랐을까?
술 취하면 택시비로 사용하기 위해서일까? 팁 주기 위해서일까?
그 날 장경호씨가 한 말처럼, 정말 세상 잘 놀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오후6시 무렵,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 무대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노조 할 권리 쟁취' 궐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리고 광화문역 7번 출구 인근 고공농성장 앞에서도 '비정규직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광화문광장 본 무대에서는 ‘지구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탐욕의 세상을 쓸어버리겠다는 뜻으로 빗자루 100개를 들고 대학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하며,

하청노동자와 청소노동자가 만나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왔고 촛불의 힘으로 촛불대선이 치러지고 있다"며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는 광화문 고공단식농성장에서

선포식을 열며 농성자들을 지지하고 함께 투쟁하기 위한 '한 끼 동조단식'을 진행하였다.


'한 끼 동조단식'은 선포식 이후 30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심신이 지쳤나보다.

이틀 동안 쪽방에 들어 누워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토요일 햇불 집회 생각으로, 더 이상 누워 있을 여유가 없었다.

광화문에 가야하지만, 한 두시간 더 쉬고 싶었으나,

서울역에서 왕왕거리는 확성기 소리에 그만 일어나야 했다.



 




빈속이라 뭘 좀 먹어야 했으나, 밥 때를 놓쳐버려 그냥 나갔다.

서울역으로 갔더니, ‘박대통령을 모함하는 검찰을 구속하라

현수막을 펼쳐잡은 노인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요즘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 집회에 맛 불 놓느라, 노인들이 종종 난리를 피운다.

이전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엄청 멸시했.


  

 




그런데, 그 날은 잘 아는 이웃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돈이 탐나 일당 받으러 나왔을까?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할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일 뿐이지, 개짓하는 지식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도 나쁜 짓 하는 인간들보다, 잘 몰라 그러니 용서라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여지 것 권력가진 인간들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이 바로 돈 없고 못 배운 서민들이었다.







우리민족은 유달리 긴 세월동안 권력자들에게 짓밟혀 온 서러운 민족이다.

그러나 이젠 그 틀을 깨야한다. 아니, 얼마나 앞 당기냐의 문제지, 깨어 질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무지한 국민보다 깨어 있는 국민들이 더 많으니,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더구나 SNS의 위력은 나쁜 짓하는 놈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구조다.


그날도 서울역에서 카메라 들고 설치던 MBC같은 사이비 언론도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소수의 목소리도 중요하다는 명분이야 그럴싸하지만, 그 속내는 뻔하다.







더 이상 이웃과 얼굴 부딪히기 싫어, 얼른 지하도로 내려갔다.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방향으로 갔는데, 오후 3시쯤인데도 사람들이 몰려와 도로가 혼잡했다.

예술인 캠핑촌에서 아는 분들을 만나려 했으나, 사람에 막혀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어쩌다, 판화가 류연복씨와 김사빈씨를 간신히 만났을 뿐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앞 장선 행렬에는 백기완선생과 이재명, 장경호, 하태웅씨의 모습도 보였으나, 사람에 막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길 가 양쪽을 경찰차로 방벽치고 인도는 경찰이 점거하고 있었으니, 4차선 도로가 북새통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넘게 시달리고 나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몸이 정상이 아닌데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으니, 그런 것 같았다.



 


간신히 경복궁 지하역으로 빠져 내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메우고 방으로 올라오니, 4층에 사는 정씨가 말을 건다.

오늘은 데모하는 날인데, 왜 벌써 와요?”

차마 아프다는 말은 못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늙은이는 빠졌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보수성향의 정씨가 반색을 한다. “그래요. 앞으론 그런데 가지마세요

 

말할 기력도 없었으나, 한 마디 했다.

가고 싶어 가나요. 세상 좀 바꾸어야지요.

우리야 어차피 그렇게 살았지만, 자식들은 잘 살게 해야 지요

 

사진 / : 조문호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동자동 쪽방사람들의 행렬이 인사동을 메웠다.

‘남인사마당’에 집결한 빈민들은 북인사 마당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그들이 외치는 “박근혜 방 빼!”라는 함성이 인사동 거리에 울려퍼졌다.

빗길 나들이의 외국 관광객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지나치는 행인들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시냇물이 강물 되듯, 광화문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물결은 광화문 일대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울려 퍼지는 퇴진 함성과 음악소리에 들떠 추위도 잊게 했다.

어두워지자 경찰이 진을 친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오히려 전경을 위로하는 시민이 늘어나고, 전경들도 몸은 묶였으나 마음은 똑 같다는 듯 서로 일체감을 보였다.

밤늦은 시간, 인사동에서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 어디 있어? 광화문에 있으면, ‘여자만’으로 와”
빵조각으로 끼니는 메웠으나, 추위를 녹여줄 술 생각이 간절했던 터라 잽싸게 달려갔다.


‘여자만’에는 김명성씨와 김용국씨가 있었지만, 연락을 받았는지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고중록, 이강군, 김영배, 정영신, 신상철씨에 이어 인사동 어르신들도 오셨더라.

방배추로 통하는 시대의 협객 방동규선생과 강 민시인, 구중서, 전태수선생 등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시위현장에서 오신 것 같았다.

이미례씨가 차린 술상 옆에는 박기성씨와 김여옥씨도 있었지만, 긴 시간 퍼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급히 마신 탓에 취기도 올랐지만, 시위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인사동 거리는 붐볐다. 오히려 종로 방면은 사람이 빠져나가 보행이 다소 수월했다.

광화문 군중대열에 합세하여 또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 방 빼! 박근혜 방 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6일 열린 박근혜퇴진 5차 촛불집회는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90만에 이르는 인파가 전국을 메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동자동에 사는 빈민들도 쪽방 촌에 집결해, 인사동 ‘남인사마당’으로 이동했다.
처음 내린 눈발이 빗방울로 바뀌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인사동 거리를 휩쓸며 “박근혜 방 빼~”를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냇물이 강물로 바뀌고, 강물이 바닷물로 변해 서울 도심은 인파로 넘쳐났다.

함께 이동하던 동자동 주민들도 어디로 휩쓸렸는지, 사람에 밀려다녔으나 힘은 솟구쳤다.

그 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물러나라 쇼’에서는 가수 안치환이 나와 자신의 히트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고, 광화문에서는 가수 양희은이 참석해 ‘상록수’를 불러

노랫말의 의미에 시민들을 울리기도 했다. "근혜는 아니다~ 근혜는 아니다~"란 노랫소리가 북한산에 울려 퍼졌고,

 “박근혜 방 빼, 박근혜 방 빼”란 구호를 리듬에 맞추어 외치기도 했다.

 

이날 거리에서 ‘집에 가소’ ‘하야 하소’ 등의 글을 써 붙인 소도 눈길을 끌었지만, 하유스님이 보여 준 광란의 춤도 열기를 북돋았다.

경찰차벽을 꽃모양 스티커로 도배한 꽃 벽도 아름다웠고, 딱딱한 구호대신 재치와 해학이 담긴 깃발도 곳곳에 등장했다.

비아그라를 풍자한 “비우그라‘,”하야그라’가 등장했고, 청와대가 고산병 예방약으로 샀다는 해명에서 따온

‘한국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라는 단체 이름도 있었다.

요즘은 프로포폴 의혹에 이어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등 입에 담기도 창피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약물의 등장은 국정을 뒤흔들어버린 ‘박근혜 게이트’를 순식간에 ‘관음증’ 수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청와대를 200미터 남긴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까지 진입해 경촬과 대치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길거리를 지나치다 무예가 하태웅씨를 만나기도 했고, 김낙영시인을 만나기도 했다. 

 

늦은 시간, 광화문광장으로 다시 빠져 나왔다.

블랙리스트 예술인 캠핑 촌의 구석자리는 너무 어두워 번번히 사진을 망치지만, 아는 분들을 찾아보았다.

어두워도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류충렬화백과 성기준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 이틑 날 오후,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그 년 낮 짝을 보며 또 한 번 열 받아버렸다.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보톡스 맞은 쌍판대기에 음흉한 꼼수만 이글거렸다.

나야 텔레비젼이 없어 그 년 볼 일이 많지 않지만, 매일 같이 티비를 보는 국민들은 얼마나 열 받을까?

주둥이가 개 밑구멍 같이 생긴, 변호하는 놈의 낮 짝도 보게되면 밥맛이 떨어진다. 

대국민 담화문에서 지껄인 내용은 하나같이 국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변명으로 가득했다.

밤을 지새우며 고민 했다는 내용이 또다시 국민들을 기만하는데 그쳤다.

결국, 국회에 공을 넘기며 시간을 벌겠다는 꼼수였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담화문은 시간끌기 위한 기만술책일 뿐이었다.

박근혜가 시간을 벌면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증거인멸과 은폐, 그리고 퇴진 후 입지를 보장해줄

정권창출인 것이다. 범죄자 박근혜는 이제 시간을 끌것이 아니라 즉각 퇴진하여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진정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틀 끝 만치 라도 있다면, 이 것 저 것 계산하지 말고 당장 하야해라.

무능한 네가 그 자리에 있는 시간만큼 나라가 더 위태로워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 박권수 유작전 뒤풀이에서 줄창 나게 마셨다.
밤늦은 무렵, 인사동거리는 무명가수의 노래 소리가 처량하게 퍼지더라.

마침, 길거리에서 하태웅씨를 만났다.
술 취한 채현국선생이 걱정되어, 따라 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계셨는데, 너무 반가워 술김에 춤까지 췄다.
그 날 구로에서 강연이 있었다는데, 일찍부터 한 잔 하신모양이었다.

선생님께서 술이 취하면, 덜 취하기 위해 길거리나 술집을 돌아다니신다.
가게에서 산 물건을 반가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하고,
때론 주머니까지 털어 주시는 분이다.

가게에서 산 그릇을 아내에게 선물하며, ‘유목민’에 가 있으라는 것이다.
‘유목민’에는 장경호, 노광래, 이성용, 백남희, 이영기, 이정아, 임경일, 이회종씨 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느닷없이 노광래씨가 신사임당 지폐 한 장을 꺼내며, 채현국선생님께서 줘랬다는 것이다.
내가올지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받기가 좀 그랬다.
전해주는 사람도 개털인지라, 지폐를 반으로 찢어 한 장 씩 나누어가졌다.
나중에 노광래씨가 모아 담배를 사왔지만..

좀 있으니 박인식씨에게 체포당한 김명성씨가 '유목민' 골목을 지나가더라.
‘로마네꽁띠’로 가는 모양인데, 술이 취해 가방을 어디 뒀는지 두리번거렸다.
취객들이 지나치는 밤늦은 인사동 골목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뒤늦게 하태웅씨가 채현국 선생님을 모시고 나타났다.
그런데 채선생님을 수행하는 이회종씨가 채선생님 면전에서,
준 돈을 찢었다며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꼼짝없이 하사금을 모독한 불경죄에 걸린 것이다.

이 또한 권력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명사로서의 채선생님보다, 그냥 예전의 선생님이 그립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백남기씨 쾌유를 비는 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로 열렸다.

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소요문화제에는 약 팔천 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소요가 무엇인가? 사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들고 일어나 술렁거림이라고 적고 있다.

경찰이 물대포로 백남기씨를 사경에 빠트린 그 사건에, 소요죄를 적용한다는 데 따른 저항으로 '소요문화제'라 했다.

 

시민들은 지내들 입맛대로 갖다 붙이는 엉터리 법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두들 탬버린, 부부젤라, 막대풍선, 호르라기 등을 가져와 소란을 떨어 제켰다.

심지어는 양은그릇과 숱 가락을 가져 나와 두들기기도 했다.

잘 못된 법을 조롱한 것이다.

 

그리고 복면시위법을 비웃으며 가면을 쓰고 나온 분들도 많았다.

평화롭게 진행된 소요문화제를 사법처리하겠다는 등, 정권은 선량한 국민을 범법자로 내 모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다시 유신독제로 돌아가는 것 같은 살벌한 시국이다.

 

박석운 민중의 힘대표가 단상에 올라 부마사태 소요죄를 적용한 박정희는 심복에 살해됐고,

광주시민들에게 소요죄를 적용한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 날의 행사에도 백기환선생과 신학철, 장경호, 하태웅씨 등 여러 명의 지인들이 끝 까지 자리를 지켰다.

비록 그 분들만이 아니지만, 왜 이 추운 날씨에 시멘트 바닥에 앉아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 마음이 아팠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현실이 더 암담했다.

 

행사를 마치고, 청계로를 거쳐 백남기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청계로를 막 지날 무렵, “노동악법 중단하라는 구호에 맞서 시위를 중단하라는 조그만 소리가 들려왔다.

청계천을 산책하던 70대 노인이 비아냥거리듯 한 말에, 옆에 있던 할멈이 옆구리를 찌르니 말꼬리를 감추었다.

시국을 잘 못 인식한 저런 분 때문에, 박근혜가 더 기고만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국민을 이렇게 양분시켜 놓고, 놀 것인가?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집에 갈 수가 없어, 인사동 유목민에 들렸다.

시위현장에서 만났던 장경호, 하태웅씨와 술 한 잔 했다.

뒤늦게 배인석, 이승철씨가 합류했고, 채현국선생과 정선의 전상현씨를 만나기도 했다.

술 자리에서, 소모적인 시위에서 벗어나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묵시(默示)"로 가자 

백 명이고 천명이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 식음을 전폐하자.

병원으로 실려 가던, 화장터로 실려 가던, 끝 장을 내자.



사진,/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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