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만지산 골짜기에 사는 이선녀씨의 인생은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이다.
이제 나이 육십에 불과하지만 한 세기 전에 살았던 것처럼 살아 온 이야기가 전설 같다. 옛날 영화에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도 있었지만, 마치 이선녀씨를 일컫는 말 같다. 남자 만나기에 따라 여자의 운명이 바뀐다는 이야기겠으나, 요즘 세상은 ‘남자의 일생’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그녀가 귤암리 윗만지산 골짜기까지 시집오게 된 사연만 풀어도 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나무꾼과 선녀’로만 요약해야겠다. 삼대를 만지산에서 살아 온 최종대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이만평 가까이 되는 산비탈 농지를 두 내외가 다 일군다. 힘쓰는 일이야 남편이 하겠지만 왠만한 일은 모두 이선녀씨 몫이다. 날만 새면 밭에 나가 살았으니, 지금 성장한 자식 셋 모두가 밭에서 일하다 낳았다. 시아버지가 며느리 치맛자락에 아이를 받아 툇 줄도 자르지 못한 채, 방으로 뛰어가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보라. 산후조리란 말은 사치에 불과하고, 애기를 낳아서도 광주리에 담아 밭에서 키웠다.


한 번은 둘째아들 용순이가 심하게 아파 13킬로미터가 넘는 정선 읍내까지 약을 사러 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갈 때와 달리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해 돌아 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모정은 약을 비닐로 머리에 동여매고 노도처럼 밀리는 강물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6킬로미터의 험난한 물길을 헤칠 땐 주변사람들이 하나같이 살아날 수 없다고 발을 굴렀지만, 귤암리 근처에 도달하여 나무뿌리를 잡고 기어 나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정말 ‘지성이면 감천’이 아닐 수 없다.

40여년이 넘도록 외지 나들이 한 번 하지 못한 채,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았으나, 아직까지 그 지긋지긋한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던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늙어 버린 것이다. 갈퀴손과 주름진 얼굴이 그의 한 많은 삶을 고스란히 증명해 주었다. 그 힘든 삶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술의 힘이었다. 시아버지로부터 배운 술은 고달픔을 잊게 하는 유일한 벗이 되어주었다. 소주를 한 홉들이 잔으로 들이키는 그의 주량은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그리고 몸 빠르게 일하는 것처럼 노는 신바람도 보통이 아니다. 10여 년 전 이선녀씨의 여동생이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얼마나 신명이 넘쳤던지, 천정에 구멍이 뻥뻥 뚫려나갔다. 무슨 놈의 춤이 손가락으로 천정을 찌르는 요상한 춤을 추었는데, “멀리 기적이 우네~”라며 천정을 뚫어댔다.


밤늦게 이웃 동네에서 술이 취해 돌아오다 정신을 잃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말이 이웃동네이지 산을 넘어야 하는 먼 거리인데, 한 번은 어두운 산길을 걷다 구덩이에 빠져 그만 잠들어 버렸다고 한다.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했다는데, 잠결에 손님 이제 문 닫아야 하니 일어나 가시야지요란 말이 들렸다고 한다. 눈을 떠보니 새벽녘이고 자기가 빠진 곳은 장례를 치루기 위해 파 놓은 무덤이었다고 했다.

 

놀 때는 화끈하게 놀고, 일 할 때는 몸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그의 사려 깊은 인정 또한 따를 자가 없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무언가를 못 먹여 안달이고 못주어 안달이다. 이웃에 경조사가 생겨도 손 걷어 부치는 성미라 일이 일사천리다.

 

작년에는 이웃에 살던 노성수씨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 한 밤중에 두 내외가 술이 취해 집으로 들어갔는데, 방문이 열리지 않아 유리창을 깨어 손을 집어넣었다고 한다. 문고리를 연 것 까지는 좋았는데, 손을 빼다 그만 유리에 동맥이 끊기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른 방으로 들어간 아내를 아무리 불렀지만, 술 취해 잠든 아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새벽 무렵에서야 현장을 목격한 아내가 이선녀씨에게 다급하게 전화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고 한다. 겉옷 입을 틈도 없이 득달같이 달려갔으나 이미 피를 모두 쏟은 상태라 손을 쓸 여지가 없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인을 다독이며 모든 뒷바라지를 이선녀씨가 다 했다. 얼마나 많은 피를 분수처럼 쏟아 부었던지, 천정에서부터 온 방은 피로 굳어 있었다. 그 응고된 피가 비료 포대에 몇 자루나 나왔다고 한다. 피로 얼룩진 방을 다 닦아내는 청소에서부터 모든 일을 그가 도맡아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처럼 만지산 선녀로 통한다.

한번은 농기구 빌리려 그녀 집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만 못 볼 장면을 보고 말았다. 이곳은 외 딴 산이라 사람들이 오가지 않으니,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기도 하고 더우면 찬물을 뒤집어쓰기도 하는데, 무더운 날씨라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고 깜짝 놀란 그녀가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얼핏 본 모습은 한 마리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며 갑자기 비상하는 바로 그런 자태였다.

 

, 이선녀씨를 생각할 때마다 선녀와 나무꾼이란 설화가 먼저 떠오른다,

목욕하러 지상에 내려 온 이선녀를 나무꾼 최종대씨가 옷을 숨겨 사는 것은 아닐까?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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