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선물도 나누어 주고 꽃도 달아준다.

 

그러나 잊고 사는 가족만 더 그리워지게 만든다.

 

조화 한 송이로 마음 달래며, 나누어 준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올 해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꽃을 달아주며 떡과 음료를 나누어 주었다.

 

해마다 어버이날과 추석이 다가오면 주민들을 불러 모아 새꿈공원에서 잔치를 벌였으나,

전염병에 발목 잡혀 이 년 동안 한 번도 잔치를 열지 못했다.

 

올해는 그나마 규제가 풀려, 찾아 다니며 꽃이라도 달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버이날 며칠 전에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라면, 샴푸, 면도기 등의 생필품이었으나, 줄 세우는 관행은 여전했다.

 

당일에는 등불교회에서 도시락을 50개 준비해 왔으나, 공원에 나온 주민이 몇 사람 없었다.

 

도시락 하나 얻어 돌아오니, 아래층 박씨 방의 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몸이 아파 돌봄이 필요한 요양원에 갔다지만, 가져갈 짐은 없고 다 버려야 할 짐 뿐이었다

 

이제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그곳은 저승 대기소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또 한사람 사라지는 것이다.

 

늦은 시간 녹번동에 들렸더니, 정동지 조카 심지윤이가 꽃다발을 사 들고 왔더라.

좋아하는 정동지 모습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부추전에 술 한 잔 마시며 어버이날을 자축했다.

 

사진, / 조문호

 

 

 

2020년 1월부터 609일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1216명

영등포 경인로 9명, 엇비슷하게 가난했고 아팠지만 서로를 몰랐던 단절된 삶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환한 햇빛이 작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무연고 사망자 허일남(66)이 살았던 서울 영등포구의 쪽방은 눈이 시릴 정도로 볕이 잘 들었다.


영등포구 무연고 사망자 134명

허일남의 생애 마지막 거처는 일세 5천원짜리 3.3㎡(한 평) 쪽방이다. 텔레비전이 있는 방은 일세 8천원, 없는 방은 5천원이다. 그의 방엔 텔레비전이 있지만 켜지지 않아 방값을 5천원만 냈다. 볕은 눈부셨지만, 방은 엉망이었다. 여닫이문 위쪽 유리는 다 깨져서 밖에서도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구겨진 신문과 이불, 먼지와 담배꽁초 등이 어수선하게 뒤엉킨 채, 빈방은 방치돼 있었다. 허일남이 많이 아파 경기도 군포의 요양병원으로 옮겨간 뒤 이 방에 들어온 주민이 작은 화재를 내는 바람에 이렇게 엉망이 됐다. 엉망이 되어버린 방의 모습은 허일남의 삶과 겹쳐 보였다. 그는 2019년 12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패혈증이었다.

허일남이 살던 쪽방에서 가깝게는 10m, 멀어도 150m 남짓 떨어진 근처 쪽방에 살다가 무연고 사망한 이가 9명에 이른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치른 1216명의 주소지를 일일이 입력해, 같은 주소지에서 숨진 이들만 따로 뽑아낸 결과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 2층짜리 쪽방 건물에 2명, 경인로2 4층 건물에 3명, 경인로3과 4의 건물에 각각 2명씩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차츰차츰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이들 9명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가난했고, 몸과 마음이 아팠고, 술을 마셨다. 물이 낮은 곳에 고이듯, 빈곤과 질병이 쪽방들에 고였다. 9명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사회적 관계망도 단절됐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로 주소가 시작되는 영등포 쪽방촌에는 이들 9명처럼 가난, 질병, 관계 단절, 알코올중독 등 바닥의 삶을 버텨내는 ‘투명인간’들이 모여 산다. 쪽방은 ‘약 0.5~1평 규모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를 내는 무허가 숙박시설’을 뜻한다.1 1970년대 성매매집결지와 여인숙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등포 쪽방촌에는 현재 67개의 쪽방 건물이 있다(2020년 말 기준). 그 안에 벌집처럼 쪽방 531개가 들어차 있고, 거주하는 이는 500명 안팎이다. 남성이 75%, 여성이 25%다. 기초생활수급자는 63%에 이른다.2 이곳의 평균 월세는 22만원이다. 단열과 난방은 물론이고 위생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쪽방 건물의 약 70%는 건물 등기부등본도 없는 무허가 건물이다. 쪽방 주인인 토지소유자들은 외부에 살면서 건물 관리인에게 전세로 건물을 임대해주고, 관리인은 쪽방 주민들에게 월세나 일세로 방을 빌려준다. 서울 쪽방 주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70만3천원이고, 연락 가능한 가족이 없는 이가 66.4%에 이른다. 5~15년 거주한 주민(42.8%)이 가장 많고, 15년 이상(28.1%), 5년 미만(26.3%) 거주자가 그 뒤를 잇는다.2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의 25개 구청에서 받은 공문을 정리한 자료를 보면, 609일 동안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자치구는 영등포구(134명)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1명(11%)은 영등포구에서 나왔다. 영등포 쪽방과 함께 종합지원센터, 임시보호시설 등 노숙인 지원 시설이 모여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그들 삶의 퍼즐 조각을 모아보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무연고 사망자 삶의 실태가 어떠했고, 어떤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지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을 듯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투명인간들’ 9명 삶의 자취를 따라가보기로 한 이유다.






이탁영(53)이 살았던 영등포구 경인로4 쪽방 복도. 그는 이 복도 맨 끝 왼쪽 방에서 살았다.


허일남 어릴 때부터 무너져내린 인생


허일남의 삶도 처음엔 그가 살던 쪽방처럼 밝은 볕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삼대독자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한 아들을 얻었다는 의미로 ‘한 일’(一)자를 넣어 아들 이름을 손수 지었다. 영관급 장교인 아버지와 생활력 좋은 어머니가 꾸린 서울 종로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시작은 행복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허일남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 허일남은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틀리면 손찌검이 이어졌다. 영조가 아끼던 아들 사도세자를 뚜렷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잡았듯, 아버지도 허일남을 잡았다. 어린 허일남은 크게 주눅들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내와 허일남을 두드려 팼다. 허일남의 둘째 여동생 허수영(62)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맞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퇴근해서 귀가하는 저녁이 되면 불안에 떨었어요. 또 폭력이 시작될 테니까.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란 존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한 아버지가 없어지지 않을 거 같으니까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내가 그 정도였으니 피해 당사자였던 오빠는 오죽했겠어요.”


지옥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성인이 된 허일남은 군복무를 마쳤다. 밥벌이를 시작했다. 20대 중반이던 1980년대 초 한창 ‘말죽거리 신화’ 개발 붐이 일던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고, 남대문시장에서 옷 도매 일도 했다. 성악을 전공한 여성과 연애도 했다. 하지만 다시 지옥이 도래했다. 이번 지옥은 피해자였던 허일남 스스로 만들었다. 허일남도 술을 마셨다. 음주 뒤엔 난폭해졌다. 애인을 때렸다. 이를 본 허수영은 “무서웠다.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의 부정적 결과 중 하나는 대를 잇는 중독의 세대전이 현상이다. 음주 지속과 중독 과정에서 삶이 서서히 붕괴돼간다. 일상 붕괴는 건강 악화는 물론 직장에서의 위기, 가족 갈등과 해체, 사회관계 고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다.3 1980년대 후반 이후 허일남은 “막 살았던 것 같다”(허수영).


20년 가까이 단절의 세월이 흘렀다. 2000년대 중반쯤 허수영은 오빠의 연락을 받았다. 50대 초반이 된 허일남은 서울의 한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에서 꺼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오빠가 거기에 있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허일남이 “이가 빠졌으니 치과 치료를 좀 받게 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치료 비용을 부담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론 소식을 알지 못한다. 허수영은 “선하고 성실했던 오빠가 부모를 잘 만났으면 잘 살았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크랩 / 한겨레21 / 글 김규남 기자 / 사진 박승화 기자





<한겨레21>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기록을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주소창에 remember.hani.co.kr을 입력해주시면 인터랙티브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징그러운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비정한 세상에 함께 어울리는 것을 거부하며 방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사는 방법과 질서를 하나하나 바꾼다.

 

쪽방 사람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들 꼼짝 하지 않으니, 사람만나기가 어렵다.

노숙인은 한결같지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게 낫다.

 

날씨까지 정신 나갔는지, 한 여름을 방불케 한다.

4층은 달구어진 옥상 열기에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다들 팬티만 입고 살아 벌써부터 십구금이다.

 

옆 방 사는 김씨는 교도소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하겠단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죽고 싶지만,

사람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게 억울해 죽을 수도 없단다.

 

사람들 발길이 줄어든 공원도 낯설기 그지없다.

거리는 담배 피우러 나온 회사원만 서성일 뿐, 한적하다.

골목 구석에서 외로움 달래는 자의 술잔만 허허롭다.

 

이제, 무료급식과 모든 지원이 줄어들어 살기도 힘들어졌다.

슈퍼마켓은 문 열었지만, 빈민들을 위한 푸드마켓은 문 닫은 지 몇 달째다.

아랫 공원은 거지들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코로나 핑계로 줄이고 생략해, 외롭고 배고파 못 살겠다.

 

코로나가 사람들 정신 차리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여지 것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으나, 코로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또 하나 신통한 것은 빈민들 줄 세우는 일도 사라졌다.

 

몇 년동안 길들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나팔 불었지만 쇠귀에 경 읽기더니,

코로나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버렸다.

지금처럼 하면 될 걸, 왜 그렇게 고집 부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쪽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

별 일 없는 동자동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개길 때가 더 많아졌다.

올 여름엔 정선에서 무너지기 직전인 집이나 수리할 작정이다.

 

녹번동에서 편한 밥 얻어먹자니, 사모님께 알랑방귀를 뀌어야 살아남는다.

청소나 설거지는 물론, 궂은 일은 모두 내 차지다.

식모 아니, 식부의 설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하다 그릇 깨는 일은 다 반사고,

너무 열심히 해, 할 때마다 팬티가 다 젖는다.

그보다 더 귀찮은 것은 담배 피우러 밖으로 들랑거리는 일이다.

 

누군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지만,

길 잃은 사나이의 비애를 여인네들이 어찌 알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햇살이 빌딩숲에 가린 동자동은 적막강산이다.
수급 날을 이틀 남겨 돈도 없다.
다들 쪽방에 들어박혔지만, 양지 찾는 사람도 있다.
그 얼굴에 그 소리지만, 사람이 그립다.

사진, 글 / 조문호





닥아 오는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동자동 사랑방’ 식구들이 힘을 모아 조그만 잔치를 연다.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열리는데, 주민들에게 카네이션 꽃도 달아 드리고,

점심식사를 챙겨드리며 술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고마운 자리를 만든다.

올해로 여덟 번째 치루는 이 어버이날 행사는 그동안 ‘동자동 사랑방’ 식구들이 매년 치러 왔는데,

외로운 쪽방 촌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좋은 나눔의 자리다.

협동하는 공동체정신으로 서로 정 나눌 수 있도록,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동네잔치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이 어버이 잔치를 위한 세 번째 준비회의가 지난 5월 2일 오후5시 동자동사랑방 사무실에서 열렸다.

우건일조합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박정아, 조두선, 김정길, 김정호, 강동근, 차재설, 선동수, 한정민, 최순규,

이난순, 양정애, 허미라씨 등 20여명의 임원들과 주민들이 모여 행사 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를 했다.

장은 누가 어떻게 보고, 음식은 누가 어떻게 나누며, 문제점은 없는지 등 그 날 치루어 질 행사에 대한 치밀한 작전회의였다.

다들 마음에서 우러나 협동하니 결과야 보나마나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소요될 예산이 총250만원인데, 주민들의 후원금이 100여만 원 밖에 모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사 당일에도 후원하는 분이 있겠지만, 강제하지 않는 일이라 좀 불안하다. 관심 있는 분들의 사랑어린 손길을 기다린다.

난,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프린트하여 이 날 전해드리기로 했으나, 협찬을 얻지 못해 절반만 만들기로 했다.

우선 130여장만 전해드리고, 나머지는 추석 잔치 날 돌려드릴 작정인데, 그마저 수급비에서 잘라내어 프린트를 맡겼다.

사진전시란 이름을 내 걸고 한다면야 그 정도의 협찬은 얻을 수 있겠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오붓한 동네잔치를 떠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시라기보다 주민들이 돌려 보기 싶도록 빨래 줄에 걸어 보여 준 후,

잔치가 끝나면 자기사진들을 챙겨가는 그런 사진 나눔의 장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 춤꾼 이유나씨가 위문공연을 내게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마저 자칫하면 옥상옥이 될 것 같아 회의에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아무튼, 외로운 동자동 주민들의 언 마음을 녹여주는 훈훈한 잔치가 될 것을 확신한다.
사랑을 만드는 “동자동 사랑방 사람들” 파이팅!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둘로 나누어진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한이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진보, 보수로 나뉘는 정치적 대립은 물론, 종교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색깔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 문제는 다르면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광신도적인 종교적 성향을 가졌거나,
박사모 같은 보수꼴통의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터넷 매체에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씹어대니,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살며 마음 주고 받으면 그만인데,
몰지각한 정치꾼이나 맹신도들의 놀음에 왜 우리가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민들을 돕는 조직부터 둘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꾸려가는 ‘동자동사랑방’과
관변 조직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데, 서로 반목한다.

싶게 말해 애들처럼 사탕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시적인 지원행사는 빈민들의 자립심만 잃게 한다는 말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정치적 성향으로 갈려있다.
몇일 전 진보성향의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사 하는 분이 지금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잠깐 언급하자
한 분이 대뜸 일어나 총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지난 30일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가 내가 사는 쪽방을 방문했다.
‘동자동사랑방’ 박정아씨를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
‘식도락’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박정아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건모씨에게 닥아오는 어버이날, 주민들 사진 돌려줄 수 있도록
사진 프린트 지원업체를 한 번 알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사무실 주변에는 여러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호씨는 사랑방 입구에 걸린 간판을 자기가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 했다.
최건모씨가 돌아간 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 버틴 목련 꽃송이는 터질듯 부풀어 있었다.
그 아래 정재헌씨가 이른 시간부터 낮술에 젖어 있었다.
목련꽃 몽울진 봄바람에 취했는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허무를 달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김장수씨는 기계체조 선수 시절의 추억을 씹었다.






‘동자동사랑방’ 주변에는 낮에 술 취한 사람이 전혀 없지만,
공원주변에는 낮에 취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술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차이가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한 가닥 희망마저 포기했기에 죽음 제촉하는 독주를 대낮부터 퍼 마셔대는 것이다.





돌아서니 최남선씨가 나를 불렀다.
영정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요즘은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면 반갑다.
가진 재주가 그 뿐이니, 주변에 세워 두 컷을 찍었다.
슬며시 내 손에 전해주는 베지밀 병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이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동자동엔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지난 9일과 14일, 20일 등, 2월 들어서만 세분이 돌아가셨다.
다들 창살 없는 감옥같은 단절된 쪽방에서 살다보니,
정확하게 숨진 날자와 사인마저 분명치 않다.






지난 14일 시신을 발견한 김영훈씨는 이제 육순을 맞은 장년에 불과했다.
무슨 가슴 아픈 사연이 그리 많은지 술로 지세다 비명에 가신 것이다.
그가 떠난 빈방에는 술병들만 즐비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어차피 한 번은 가야할 길이라지만,
떠남을 슬퍼해 주는 가족이 없다는 것이 더 서럽더라.






정대섭, 박수태씨는 수배한 가족이 장례를 치루었지만,
김영훈씨 가족은 시신포기 각서를 쓰고 그냥 갔단다.


‘동자동사랑방’에서 대신 장례를 치러 주긴 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북망산천 길이 어찌 편하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또 누가 떠날까? 내 차례는 언제일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네팔 카트만두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다지만,
신판 고려장 같은 쪽방촌 사람들은 절망만하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나처럼, 쪽방 사는 사람들을 식물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생계비로 살아야 가지만, 정부에서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는 만큼 먹고, 먹은 만큼 똥 싸니, 그게 식물인간이 아니고 뭐겠는가?


하기야! 지난 19일, 관악구 쪽방 살던 김씨는 그 혜택마저 받을 수 없어 목메 자살했다.
그런 분에 비한다면,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 할지 모르겠으나,
인간답게 살지 못 할 바엔 깨끗하게 떠나는 방법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좌절해 힘들게 살지 않은 쪽방촌 사람들도 있다.
바로 ‘동자동사랑방’ 식구들이다. 서로 사랑방을 오가며 소통하기 때문이다.
밥 나누고 정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원망하며, 먼저 떠난 이들이여!
부디, 저승에서나마 사람답게 사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JTBC ‘뉴스룸’은 보수단체가 벌이는 집회에 유형별로 가격표가 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친박단체인 어버이연합의 집회 참가자 모집책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어버이연합 회원에게는 2만원,

추운 날씨에는 6만원,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5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유모차는 가족이 함께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많이 준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회연설에 박수부대 동원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특검에 소환통보를 받는 등 돈으로 사람을 끌어 모우는 일은 이 부패정권의 주특기다.

서울역 집회에서도 돈 받은 사람을 여럿 확인한 바도 있는데,

이제 관제데모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고무신 공세를 비롯해 돈으로 표를 매수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관행이었다.

돈 좋아하고 공짜 좋아하는 국민근성을 탓할 수는 없으나, 아직까지 그와 비슷한 짓거리가 반복한다는데, 기가 막힐뿐이다.

설 명절이 다가와 귀성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서울역 주변에는 갈 곳 없이 배회하는 노숙인들의 한 숨이 더 높다.

술에 시름을 달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넋을 놓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빈민들의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으나, 그 마저 남의 일인 냥 관심두지 않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빈민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설 민심돌리기에 혈안이 된 보수단체들의 행태다.

‘뉴스타운’, 프리덤뉴스‘ 노컷일베’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문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귀성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죄인 박근혜를 옹호하는 개가 들어도 웃을 내용뿐인데, 그 많은 제작비나 인건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돈으로 고향 못가는 노숙인 들을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기야 정신병자 집단인 그들이 빈민들의 삶이 안중에나 있겠나.





복지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자리를 탈취한 박근혜는 재벌에게 돈 끌어 모아 나쁜 짓은 다 했지만, 없는 자에게는 더 가혹했다.

가난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모른다.

하루속히 죄인을 탄핵 구속시키고,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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