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빈곤사회연대’가 주최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동자동에서는 우건일씨를 비롯하여 박정아, 선동수, 김정오, 임수만, 지연숙, 조인형, 조성삼,

정인철, 허미라, 박소영, 박성일, 김원오, 오유란씨 등 20여명이 모여 박권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사진 찍는 빈민운동가 최인기씨와 최건모, 문성식씨도 그 자리에서 만났다.


동자동 대표로 나선 김정오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복지를 넓히기보다

부정수급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복지의 장벽을 더 공고히 쌓았다"며

“부정축재하려고 부정수급이란 말 만들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은 폭력이다. 이는 생존을 위협하는 고통이 되어 사람을 죽여가고 있으며,

당장 목숨을 빼앗지 않더라도 불안정한 생활은 질병과 부채의 고통에서 허덕이게 한다.

이미 빈민들은 부족한 복지에 허덕이며, 불법추심, 명의도용, 노예노동의 범죄행위에 유린당하고 있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이들이 복지제도를 이용조차 할 수 없었고,

거리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불심검문을 당하고 벌금폭탄을 맞았다.

노점상의 생계보다 거리미화를 우선하며 지자체는 노점상 때려잡기에만 혈안 되었고,

세입자의 기본권보다 임대인의 이윤이 우선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매일같이 쫓겨나고 있다.

세상은 언제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더 잔인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모두들 레드카드를 청와대 쪽으로 들어 보이며,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옆 자리에서는 음악인들도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민주공화국은 박근혜 최순실 세력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으며 그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광화문광장에는 예술인들의 투쟁 터인 캠핑촌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요즘 하야해노래가 화제의 신곡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온 종일 곳곳에서 박근혜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밤늦게는 인사동으로 촛불시위대가 지나치며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박근혜 탄핵이란 말을 온 종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자리에 누웠는데도 환청으로 들렸다.

 

그러나 박근혜는 귀 구멍이 막혔는지, 제정신이 아닌지, 마이동풍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광화문에서 피어오른 촛불은 들불로 번지고 있다.

귀먹고 미친 정권은 몽둥이로 때려잡는 수밖에 없다. 오는 12일이 시한이다.

그 날 모두 거리로 나와 끝장 내 버리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3일은 동자아파트에 사는 이준기씨 댁을 방문했다.
한 번 찾아가겠다는 말은 한 적 있지만,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가보니 다른 쪽방에 비해 넓고 잘 정리된 방이었고, 모자와 바지가 가지런히 걸린 게 눈에 띄었다,

그때 사, 준기씨가 한 쪽 다리가 없는 불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전에 만났을 때는 의족 때문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바지에 유달리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느닷없는 침입에 반갑게 맞아주었고, 술상까지 차려 왔다.
그가 살아 온 지난한 삶의 여정이 궁금해 이 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취부까지 다 들추어냈다.

그는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에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혼자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로 예순 셋이지만, 아직도 결혼을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못 할 것 같았다.

한 때는 어느 여인과 동거하여 애까지 낳았지만, 모두 뿌리가 없다보니, 쉽게 헤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열다섯 살에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잃고 들어 간 양동에서의 부랑 세월은

착한 사람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였다.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세상에 안 해 본 짓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 믿음의 신의는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의리 하나만은 그의 생명줄과 같았던 것이다.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했던 젊은 시절에는 기물파괴나 폭력으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 했다고 한다.

자존심 하나로 버틴 그의 자존심을 망가트려, 어느 날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끔찍한 살인을 저지러고 말았다.

칠년 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였으나, 그 기간이 원래의 이준기로 다시 태어나게 한 전화위복의 시기였던 것이다.

교도소에서 천주님의 교화를 입은 것이다.

요즘은 장애3급이라 한 달에 칠십 여 만원이 나오니, 혼자 사는 데는 지장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의리 하나로 살아 온 그의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으니, 여유가 생길 겨를이 없다고 한다.

그 날도 이야기를 듣는 중에 술친구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규도, 이성구, 신동원, 김진석씨가 차례대로 나타나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찾아 온 친구들에게도 한 번 물어 보았다.
“당신들이 볼 때, 이준기의 제일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합니꺼?”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의리 빼면 시체지요”
그렇다! 그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였다.

시름시름 마신 술에 취해, ‘인천의 성냥공장’ 노동가 한 곡 부르고, 보따리 쌌다.
집을 나선 거리는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동자동에도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지나면, 또 다시 밝은 아침은 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평등의 세상은 언제 올지 기약이 없다.


착한 사람이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 더러운 세상을...


사진, 글 / 조문호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토록 정겨운 달동네가 살아남았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자기 것 밖에 모르는, 이 야박한 세상에 말이다.

지난 2일 정오 무렵, ‘식도락’에서 밥을 먹고, 지척에 있는 ‘동자동 사랑방'으로 갔더니,

강 호씨가 반갑게 맞으며, 커피를 타주었다.


이어서, 폐지 모우는 조인형씨가 싱글벙글 나타났다. 오늘은 돈 되는 스탠 고물을 주웠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너무 부지런해 돈을 짭짤하게 모았지만,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정 많은 분이다.

대개들 힘들게 돈을 모으지만, 쓸 줄 몰라 고생만 하고 돌아가시는데, 이 분은 돈을 쓸 줄 아는 현명한 분이셨다.

공원으로 올라가니, 이기영씨가 손을 흔든다. 나만 보면 사진은 언제 주냐지만, 늘 조금만 기다리라고 미룬다.

곧 라이타 돌을 실은 배가 인천항에 들어온다며 너스레를 풀곤 한다.
좀 있으니, 단감 한 자루를 사와서는 공원입구에 풀어놓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주워가고도 남았지만, 다들 하나 밖에 가져가지 않았다.

흔한 일이라, 산 사람도 생색 내지 않고, 먹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어 먹었다.

난 익숙하지 않아 딴 전을 피웠더니, 강 호씨가 내 손에도 하나 쥐어주었다.

그 날은 후암시장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 가게들도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마침 눈에 익은 잡화상을 만났다. 이 것 저 것 고르다 보니, 가진 돈이 부족했다.

물건 하나를 내려놓았더니, 모자라는 천원은 다음에 달라며 가져가라는 것이다.

사람을 믿고, 외상으로 주는 장사가 요즘 어디 있는가?


인정으로 똘똘 뭉친 마지막 달동네, 동자동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10월26일

▲조문호 사진가



서울역 건너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빌딩 틈으로 쪽방들이 코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옛날 사창가였던, 양동을 비롯해 동자동, 도동 에 전세 100만원에 월20만원 정도하는 한 평 남짓의 쪽방들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아내와 헤어져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 온지가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서다. 간단한 살림살이라 당장의 불편함은 따르지만, 맘 편하게 산다. 그러나 가장 번거로운 일이 끼니 때우는 일이었다. 이젠 얻어먹는 것도, 굶는 것도 이골 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역 주변의 쪽방에서 절망스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천 백명이나 되는데, 대부분 독신이었다. 아직까지 그런 집이나 방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위생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좁은 방에 늘린 어지러운 용품들, 자칫하면 넘어질 것 같은 비좁은 계단의 거미줄 같은 전선들이 불안감을 조성했다. 좁은 쪽방에서 짐이 많아 다리를 못 펴고 주무시는 노인도 많았다. 그들의 방에 가려면, 대낮인데도 어두워 조그만 후레쉬를 지녀야 할 정도다. 그 경사진 좁은 계단을 오르다 자칫하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대개 기초생활 수급비로 사는데, 기초생활수급비 받는 조건이 까다로워져 혜택을 못 받는 분들도 많았다. 혜택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노숙자로 전전하는 것이다. 당장 살기가 급급한데, 무슨 놈의 행정절차가 그리 복잡한가? 조그만 수입만 생겨도 수급자에서 잘려나니, 모두들 일할 생각조차 안 한다. 아니 못하게 한다.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막은 것이다. 그리고 악덕 건물주들의 횡포도 심했다. 방세는 꼬박 꼬박 받으면서 난방시간을 줄여 추위에 떨게 하거나, 집의 보수조차 하지 않고, 지자체나 봉사단체에서 해 주기만 바란다.

그렇지만,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인정 하나는 살아 꿈틀거린다. 다들 없이 살아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아마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인정이 살아남았을 게다. 돈이 사람을 망친다는 것을 재인식시켜 주었고, 가진 자보다 없는 자들이 더 인정이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대개들 하는 말이 ‘요즘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몸만 움직이면 무료급식도 늘려있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단다. 그렇지만, 그들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한다. 20여명이 사는 쪽방건물에 화장실이 하나뿐이니, 아침이면 곤욕을 치룬다. 그러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사회로 부터의 소외고 외로움이다. 다들 복에 없는 돈보다 사람 사는 정에 더 목말라 했다.

어떤 분은 귀가 어두워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셨지만, 어떤 분은 하소연하기도 했다. 자식들이 있지만, 찾지 않는다는 분도 계셨고, 죽는 날만 기다린다며 체념한 분도 계셨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한 푼이라도 생기면 가난한 자식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일 게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짝사랑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지난 추석 무렵, 동자동 쪽방에서 십 여 년 동안 사셨던 박정용(71)씨가 목메어 자살했다. 경찰이 가족을 찾아 불렀는데, 10여 년 동안 제대로 안 먹고 모은 돈이 1700만원이나 나왔다. 그런데, 가족이란 자는 돈만 챙겨가고, 시신은 두고 갔단다. 어떻게 사람 사는 도리가 짐승보다 못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서울역 주변에서 죄인처럼 숨죽이고 사는 쪽방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자.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자. 다들 가난을 물려받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죄 뿐이다. 이제 날씨마저 추워지고 있다. 추위나 더위, 화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 모두들 쪽방촌 사람들의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 주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한 참 잘 못된 말이다.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고로, 없는 자보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정치를 해왔기에,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오 갈 때 없는 노숙자나 빈민들의 한 숨 소리에 과연 귀 한번 기울여 보았는가?

 

올 여름 무더위를 누가 가장 힘들어했겠나?

바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헤맨 노숙자나 바람 한 점 들 수 없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살았던 빈민들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빵 한 조각 던져주면 다 한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탕진한 나랏돈 귀퉁이만 떼 내어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천벌 받을 짓을 더 이상 하지말자.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은 지난 토요일, 가난한 약자들의 모임인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한 ‘1017 빈곤철폐퍼레이드가 동대문에서 열렸다.

천 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빈곤철폐를 외치며,

동대문에서 종로, 종각, 청계천 영풍문고에 이르기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광교에 도착하여 살인정권을 규탄하는 백남기농민 추모대회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썩어빠진 정치판에는 개 떼 처럼 몰리는 기자들이, 가난한 빈민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더라.

그들이 가난을 맛보지 못해서 일까? 말로만 평등사회를 외쳤지,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다.

 

그 날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김윤영씨를 비롯한 수 많은 단체에서 나와 빈민들의 원성을 전했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한 김혜진씨의 호소가 귀에 박혔다.

 “어떻게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등급을 매깁니까?”

 

쪽방촌사람으로는 동자동 사랑방우건일씨를 씨를 비롯한 주민10여명을 만났고,

빈민 운동하는 사진가 최인기씨도 만났다.

 

그 날 외친 구호들이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민중복지 쟁취하자!" 
"노점 단속 강제집행 중단용역깡패 해체하라!" 
"허울뿐인 홈리스 복지 개선공공주택 공급하라!" 
"조물주 위에 건물주맘편히 장사하자!" 
"줬다뺏는 기초연금약속대로 이행하라"! 
"복지는 국가책임사회공공성 강화하라!" 
"세월호 진상규명진실을 인양하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책임자를 처벌하라!" 

 

사진, / 조문호

























































 

 





지난14일은 ‘동자동 사랑방’에 갔다.
나도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다.
가입비 천원과 이 달 출자금 만원을 냈더니, 통장 하나 만들어 주었다.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는데, 입출금이 자유롭진 않지만, 기분 좋더라.






서울 중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자동사랑방’은 쪽방 촌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공동체다. 

단발성에 그치거나 명분 내세우기에 급급한 구호의 손길보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비좁은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주거나, 물품의 공동구매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사랑방 식도락’에서는 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5년 전, 빈민들이 조금씩 아낀 돈을 출자해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비와 주거비 등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소액대출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동사업과 다양한 마을공동체 행사를 벌여, 벼랑에 선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물원에 먹이 주듯, 밥과 빵이나 던져주는 봉사단체, 조그만 돈으로 안주하게 하는 정부의 빈민정책에 비해서는 훨씬 모범적이다.






그 날은 녹색당 홍보팀장인 한진희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동자동사랑방’을 방문하여

우건일 조합장으로부터 쪽방촌의 현안과 문제점을 듣고 있었다.

방문한 젊은이들이야 빈민들의 실태에 당혹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그들과 함께 ‘사랑방 식도락’에서 천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소 뼈 목욕한 국물이긴 하지만, 그 날의 메뉴는 곰탕이었다.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더라.






그런데, 빈민들이 사는 촌방 촌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웃의 한 분은 119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도 보았다.

부축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겉 모양은 괜찮으나, 속병이 심각한 것 같더라.

부디 별 탈 없이, 다시 돌아 오길 빌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요즘 밥은 먹기 싫고, 술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으니까...

다행스럽지만, 아무리 술 생각이 나도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다짐은 한 번도 깨트린 적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쪽방촌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술자리가 곳곳에 있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술을 끌고 다니기 위한 나의 철칙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가난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이 술을 찾게하고, 외로움에 또 한 잔한다.

그들의 고민을 잊게하고 위안해 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


세상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 하는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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