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떠나보내는 인사동 사람들의 송년회가 지난 9일 오후7시부터 인사동 ‘사동집’에서 열렸다.

무의도 예술촌장 정중근씨의 제안에 의해 갑작스레 열린 송년회라 참여율이 낮았다.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을 비롯하여 배평모, 장경호, 노광래, 전강호, 노인자, 정영신, 김 구, 유진오, 정중근,

이세종, 조수빈, 윤강욱, 임경일, 나재문, 주승자씨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요즘 동자동 일에다 개인전까지 겹쳐 인사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뜻밖의 반가운 분들을 만난 것이다.

다들 오랜 인연들이 새록새록 했다.

소리꾼 조수빈의 민요가락과 송상욱선생의 흘러 간 노래가 이어졌고,
나재문씨의 하모니카연주에서부터 장경호씨의 뒷동산 아지랑이 십팔번까지 다 나왔다.

난, 광화문에서 술이 취해 온 터라, 나중엔 어떻게 놀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옆자리 화가들의 뒤풀이에서도 사진을 찍은 모양인데, 최성규, 이남찬, 김하은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튼 정치판이던 인사동이던 내년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기대한다.
“빨리 사라지거라, 이 지긋지긋한 병신년아~”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6일과 7일은 연이어 인사동에 나갔다.
동자동 쪽방 촌 기록에만 전념하고 가치를 잃어가는 인사동은 더 이상 찍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전시를 보거나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대부분 인사동이기 때문이다.

이젠 지하철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두 구역 밖에 되지 않아 더 쉽게 갈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넘실대는 인사동 거리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런데 전시를 보거나 약속장소에서 사람들만 만나면 그만인데,

인사동 거리를 지나치다 보면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 사진들은 문영태화백의 추모전을 위한 모임에 찾아가며 찍은 사진들과

‘문화알림방’ 일거리로 수석전시장을 찾아가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냥 사진들을 모아 두었으나, 정리를 하다 보니, 또 다시 올리게 된 것이다,

거리를 지나치다 인사동 음유시인 송상욱선생과, 제주도의 황학주시인을 만나기도 했고,

전시장에 들려서는 공윤희씨도 만났다. 그 외에도 무의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과 정열을 쏟아 붇는 정중근씨와 소리꾼 조수빈씨도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마눌님 책 심부름으로 '정독도서관'에 갔다.

무식한 나는 책 볼일이 별 없지만, 아내 때문에 가끔 들린다.

지난 11일 오후 여섯시의 도서관은 벚꽃에 뒤 덥혀 있었다.

화려한 꽃 천지가, 지는 햇살에 숨죽이고 있더라.

그렇게 놀다, 실없이들 가겠지!’

인사동의 봄은 오는 듯 가는 듯, 맥아리가 없다.

 

인사동 음유시인 송상욱 선생을 거리에서 만났다.

왜 그리 안 벼~ 심심해 미치것어! 봄 가기 전에 한판 놀아야제

퇴근 하시는 걸음에, 날 보고 반색하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을 못 만나, 점심 드시며 툇마루서 막걸리 한 잔

걸치는 게, 유일한 위안 주란다. 다들 힘들어하는 김명성을 그리워했다.

그랬다. 그는 인사동 유목민에게 유일한 위안이었고, 한 가닥 희망이었다.

 

오늘 끝날 내숭작가전 본다는 아내 연락에, 그 앞을 서성거렸다.

얼마나 짐이 많은지, 차가 여러 대나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동에 돈을 뿌리고 가는 구나!'.  푸념에 전시장 나온 아내가 답했다.

돈이란 저렇게 쓰는 거야.부러운 듯, 들렸다.

간이 적어 도적질도 못하고, 아둔해 사기도 못 치니,

내 죽는 날까지, 저런 호강은 못 시켜줄 것 같았다.

 

모처럼 인사동서 만났으니, 저녁이나 같이 먹잖다.

아내 좋아하는 사동집만두전골 먹으러 갔다.

주인장 송점순 여사가 반갑다며 굴전까지 서비스하는데,

카메라 전지가 다 돼, 인증샷도 못 찍었네.

배 터지도록 먹고 남아, 도시락까지 싸야 했다.

이 정도 호사면, 인사동 봄도 결코 서럽지는 않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안국역 6번 출구에 인사동의 갖가지 기억들을 백자 타일 150장에 담은 도화벽이 있다.

'인사동 풍물에 류를 더하다" 란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는데,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도화 벽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나, 기념사진 찍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날로 찾는 이들이 늘어, 이제 인사동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3일 이곳을 지나치다, 인사동을 자주 오가는 시인들의 낙서 조각들을 주워 보았다.

인사동에 현대시학사무실을 두었던 정진규시인의 나의 골목이란 글도 보였고,

이재무시인의 "인사동은 추억의 출구이자 입구", 그리고 “인사동 봄날을 노래한 이승철시인의 글도 있었다.


인사동은 고장 난 피아노의 건반 속 같다음유시인 송상욱씨의 인사동요

귀천의 목순옥 여사가 떠나는 꽃길을 엮은 김명성씨의 시도 찾았다.

 

인사동은 문화예술인들의 숨구멍이고, 남도 바닷가의 찰지디 찰진 개펄이라

김여옥시인의 낙서를 보며, 잠깐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찰진 개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나의 천상병선생사진을 비롯해, 박재동, 여 운 등 많은 이들의

붓길 흔적들이 가슴에 그리움만 쌓이게 했다.

사진, / 조문호


















몸이 아픈 강 민시인은 단골식당에서 밀려남을 슬퍼하고,
음유시인 송상욱씨는 낙향하자는 사모님 채근에 슬퍼한다.


덩달아 심우성, 김승환선생까지 인생의 무상함을 슬퍼한다.

그렇게 하나 둘 떠나가고,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우는 게 세상이치지만,
인사동 영혼과 그 낭만을 이을 자가 없으니 가슴 아프다.

‘툇마루’ 비빔밥으로 허기 메우고, ‘인사동 사람’ 맥주로 시름 달랬다.



인사동 / 2015, 10, 6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인사동을 짝 사랑해 상사병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더러는 변해가는 풍정에 등 돌리지만,

인사동을 못잊어 안타깝게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향처럼 정들었던 인사동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 아름다운 낭만의 시절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다.

제주도에 멀쩡한 집 두고, 인사동 여관방 얻어 혼자 지내시다, 이제 요양원에 갇힌 분이다.

매일 유령처럼 인사동을 떠돌며 아리랑 춤을 추셨다.


 

 

 

그 다음은 시인 강 민 선생이다.

두 시간이나 걸리지만, 인사동 나오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시는 분이다.

몸이 불편해도, 만날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다.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며, 인사동을 기웃거리신다

 

 

 

 

음유시인 송상욱선생도 계신다.

인사동에 콧 구멍만한 사무실 하나 얻어놓고, 매일 같이 나오신다.

그 곳에서 시 쓰며, 흘러간 노래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몇 일전 길거리에서 만나 통 사정하셨다.

"조형, 인사동에 재미있는 일 좀 만들어봐. 심심해 미치겠어!"

 

 

 

 

인사동에 제일 좋은 갤러리 세워서 망한 김명성시인도 있다.

인사동 르네상스를 꿈꾸며,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사람이다.

정말 의지의 사나이다.

인사동에서 리어커를 끌지라도 떠나지 않겠단다.

 

 

 

 

인사동에서 미술관장 지낸 화가 장경호씨도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인사동에 반기는 사람 하나 없지만, 나오고 싶어 안달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인사동 나와서만 마신다.

꼬장꼬장한 성질머리로 문전박대 당해 "다시 안 나온다"면서도 또 나온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골목 안 천정 낮은 주청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콩알처럼 박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나 역시 인사동을 방황하는 것이다.

 

 예술과 풍류가 넘실대던 그 때의 인사동은 온데 간데 없고, 얄팍한 상혼만 무성한 인사동. 

천상병, 민병산, 중광을 비롯한 인사동 예술가들의 자취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무정한 인사동.

옛 소문에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실망감만 안겨주는 인사동. 


인사동 장사꾼들이 모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와

장사꾼 말만 듣는 '종로구청'이 인사동을 망친 공범자다.

 제발, 상사병 난 사람들과, 인사동 살려 낼 방안 좀 연구하라.


 

사진,글 / 조문호

 

 


 

 

 

 

 

 

 

 

 

 

 

 

 

 

 

 

 

 

 

수요일만 되면 별 볼일 없어도 인사동에 나가고 싶어진다.

전시장들은 새로운 작품들로 교체되고, 거리에선 반가운 인사동 사람들을 쉬 만날 수 있어

모처럼 인사동 기운이 충천하기 때문이다.

지난 27일엔 사진가 변홍섭씨와의 오찬약속을 수요일로 잡아두어, 일찍부터 작정하고 나올 수 있었다.
변홍섭씨는 정선같이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해왔으나

내가 사는 곳은 이미 관광지화 되어 추천할 수가 없었다.

‘툇마루’에 식사하러 가서는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을 만났고,

‘귀천’에 차 마시러 가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을 만났는데, '귀천'엔 빈 자리가 없었다

인사동거리에서는 사진가 이갑철, 육명심씨, 시인 강 민, 이행자, 서정춘씨, 소설가 구중관씨,

서양화가 안창홍, 이종송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사진평론가 최건수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평소 인사동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고작 한 두 사람에 불과한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대박수준이다.

그러나 대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거나, 금주령이 내려 진 분들이 많아 술 한 잔 하자는사람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의 낮 술에 취하면 힘들 것 같아 점심식사 때부터 사양했지만,
막상 그냥 지나치려니 맹숭하고 허전했다.
그래도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 여한은 없었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5일은 인사동 ‘3.1갤러리’에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도깨비 구경하러 갔다가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을 만났다.
도깨비 나올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출출한데 어디 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송선생님에 끌려 ‘툇마루’로 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입구 쪽마루에 걸터앉아 마시는 막걸리 맛도 괜찮았다.

돌아오다 남해에서 올라 온 조각가 김동환씨를 만났다.
마침 무세중선생 공연보러 간다기에 함께했다. 
굿판에서 김명성, 김상훈, 유재만, 신현수씨 등 여럿 만났다.

무세중파 도깨비들은 썩어가는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카메라 들고 그들의 못 짓 따라 다니다보니 금방 끝나버렸다.

모두들 뒤풀이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인사동 거리에는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매직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아가씨는 손님이 없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안국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휠체어를 미는 공윤희씨와 최혁배씨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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