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에 전통성이 사라지면서 관광객이 줄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통의 거리 인사동에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대거 들어서고 있는데다 전통상점에서는 국적 불명의 공예품이 판을 치고 있어서다. 반면 중국의 전통거리 류리창은 여전히 고색창연한 자태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사동이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류리창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관광지를 갈 것인가’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다. 각각의 관광지가 저마다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정체성’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독특한 건축물일 수도 있고 값싸고 진귀한 상품을 파는 재래시장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정체성만 보고 해당 지역을 찾을 공산이 크다. 정체성이 관광산업과 지역 상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인사동이다. 인사동은 전통문화 상점, 전통찻집 등 한국의 멋을 간직하고 있어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실제로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인사동을 찾은 비율은 49.2%에 달했다. 서울에 오는 관광객 중 절반은 인사동의 정체성 ‘전통’에 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에서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 인사동에서 파는 전통 기념품 중 열에 아홉은 중국산이다. 더구나 전통문화 상점을 화장품 가게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중국ㆍ동남아 관광객에게 국산 화장품이 인기를 끌자 화장품 가게가 인사동마저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 지역의 정체성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정체성을 잃은 인사동이 곧 사람도 잃을 거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전통거리를 살리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해답을 중국의 류리창琉璃廠에서 찾았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중심부에 위치한 류리창은 인사동과 마찬가지로 옛 모습을 간직한 전통거리이자 관광명소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란 점은 청나라 시절의 일상적인 풍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상점에서 파는 여러 골동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베이징 시 당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곳을 ‘역사ㆍ문화 창의 산업 집중 구역’으로 지정했다. 거리를 넓히고 전통문화 상점도 유치했다. 이로 인해 류리창은 300년 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명물 쇼핑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류리창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류리창이나 인사동이나 정체불명의 쇼핑 거리로 퇴색할 여지는 언제나 있다. 하지만 옛 골목과 건물이 잘 보존돼 있는 류리창에 비해 인사동은 외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 다르다. 인사동은 그만큼 내실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이 앞장서야 한다. 과거의 대상인들은 이윤보다 신용을 중시했다. 이윤은 쉽게 나고 사라지지만 신용은 쌓기는 어려워도 한번 쌓으면 평생 장사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용의 중요성이 21세기엔 정체성의 중요성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신용문제는 많이 개선된 반면 정체성은 여전히 시장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향을 소비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래도록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체성인 것이다.


[이기현 더스쿠프 객원기자 lk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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