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사동의 고풍스러움은 사라지고, 아련한 추억들만 무성하다.
고미술이나 고서점으로 이어진 정겨운 가게들이 하나 둘 밀려나더니,
예술가들의 열기로 가득했던 골목골목의 주청과 찻집들도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실비식당, 하가, 티롤, 레떼, 평화 만들기, 귀천, 수희재 등 많은 업소들이 생각난다.

암울한 시절, 빈 주머니였지만 어머니 품처럼 예술가들을 토닥여 주고 안아 준 곳이

인사동이고, 그런 술집들이다.

이제 그런 예스러움이나 풍류들은 오 간데 없고, 싸구려 잡동사니만 넘쳐난다.
멀지않아 인사동 고유의 색깔은 완전히 사라 질 지도 모른다.

그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왜  찾겠는가?
인사동 고유의 색깔이 없는데, 또 올 리가 없다.

빨리 기념품 일색의 거리환경부터 정리하자.

지금이야말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절실한 때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궁중화가들의 작업실인 도화서가 있던 곳이다.
그 도화서를 복원하여 작가들이 이용케 하는 방법은 없는가?


연암 박지원과 율곡선생도 인사동에 살았다. 그리고 민영환 선생의 자결터와

민병옥대감의 저택인 ‘민가다헌’도 잘 보존돼 있다.
그러한 역사적 자취를 바탕으로 이야기 옷을 입혀야 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80년대 인사동 낭만을 풍미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중광스님도 있다.

어쩌면 먼 조선시대 이야기보다 더 가깝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

어깨에 늘 봇짐을 메고 다녔던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을 비롯하여

‘귀천’에 죽치며 막걸리 집을 드나들었던 천상병시인, 파이프를 물고있는 박이엽 작가,

거지행색으로 인사동을 누비던 중광스님의 자유분방한 행색들 말이다.

그 분들의 동상이라도 만들어, 인사동 거리분위기부터 바꾸어보자.

그 다음에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가들의 사람냄새를 담자.
인사동 특유의 골목 문화도 가꾸어, 인사동을 낭만1번지로 되돌리자.


사진, 글 / 조문호



아래사진은 지난 9일 오후의 인사동거리다.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오갔고, 개막식이 열리는 전시장들도 붐볐다.

전시장에서 나오는 미술평론가 유근오씨와 그 제자들을 '아라아트' 앞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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