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 전기 작가 이충렬씨가 펴낸 '아, 김수환 추기경'책을 받았다.

김 추기경의 7주기를 맞아 출간된 전기였는데, 훑어보니 작가의 공력이 대단했다.
추기경의 일기와 강론은 물론, 각종 신문, 잡지에서 찾아 낸 수많은 자료와 360여장의 사진들이

촘촘히 정리되어 있었다. 김 추기경 주변에 계셨던 신부들은 물론 지인들의 증언까지 생생했다.

마치 탐정같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샅샅이 찾아낸 것이다.

그 많은 일을 미국 사시는 분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성실하고 치열한 그의 작가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책 읽기보다 인터넷을 즐겨, 두터운 두 권을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라 여겼는데,

읽어보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성직자의 전기라 다소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싹 날려버린 것이다.

그의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소설 이상의 재미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 출생에서 박정희 정권 때까지를 담은 ‘신을 향하여’와 그 이후를 담은 ‘인간을 향하여’는

1100여 쪽에 걸쳐서, 87년동안의 김수환추기경 일대기를 샅샅이 풀어내었다.

이제까지 몇 편의 김 추기경 평전과 어록이 간행된 적은 있으나,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그의 삶 전체를 이처럼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전기물은 처음이었다.

청빈한 삶을 살다 가신 김수환추기경의 위업이야 잘 알지만,

작가는 김 추기경을 영웅으로 격상시키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낮은 자세로 사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추기경의 따뜻한 인간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불쑥 성매매 여성 쉼터에 찾아가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그녀들과 함께 밥도 먹으며,

막 살아 온 그녀들의 술주정도 다 받아 주었단다.

어떤 여인이 추기경의 무릎에 드러누워도 그냥 웃기만 하셨다는 것이다.

뒷이야기지만, 윷놀이를 하다 추기경께서 일부러 판을 좀 속였더니 “믿을 놈, 한 놈도 없다”는

막말까지 나와 추기경께서 ”나도 좀 따야지“라며 맞받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힘 있는 자에게는 목소리를 높이고, 약자에겐 한없이 자세를 낮췄다.
어두운 시대와 함께했던, 정치, 사회면의 보도사진들과 뒷이야기까지 상세히 풀어,

한 개인의 전기에 앞서,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역사였다.

전기작가 이충렬씨를 직접 만나 뵌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샘이 깊은 물”, “한겨레”,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에 쓴 단편이나 르포, 칼럼에서

그 분의 유려한 글들을 읽어 성함은 일찍 알았지만, 직접 만난 건 지난 해 ‘6인의 사무또라이’전 뒤풀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서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화백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너무 점잖으셨다.

그 이후 페친이 되어, 그 분의 출판 소식과 근황을 알게 된 것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전기문학가 이충렬씨의 네 번째 전기다.

그는 ‘실천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전기 장르에 꾸준히 작업 해왔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등 여러 권을 썼다.

이번에 펴낸 ”아! 김수환추기경“은 전기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기가 출판되자 전 언론이 일제히 대서특필하였고, 심지어는 교보문고 입구 한 벽을 광고판으로

도배할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생각보다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그 원인이겠지만, 두 권으로 나뉜 두툼한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기경께서 말년에 스스로를 바보라며 그림까지 그렸다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말 바보인 것 같다.


이틀 전, 작가 이충렬씨가 마련한 안국동 .묵호회집‘의 만찬에 초대 받았다.
박재동화백과 박불똥화백, 중앙일보 정재숙기자 등 반가운 분들을 만났으나, 처음 보는 분도 더러 있었다.

작가의 친구이며 광주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이원복씨, 영화사를 운영하는 조원장씨,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에 있는 이희연씨도 오셨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소식도 들었다.
이세돌 알파고 바둑대결을 지켜보느라 좀 늦게 나타난 정재숙기자는 사뭇 흥분되어 있었다.

앞으로 통계자료에 의해 모든 걸 로봇이 해결하는 시대가 되면 기자는 물론 대개의 직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술 부분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을 주었는데,

그럴수록 인간적인 삶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웹툰에 만화 연재할 준비를 하는 박재동화백께서 그 내용을 살짝 귀띔했는데, 너무 재미있겠더라.

연재가 시작되면 대박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꿈의 학교’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틀에 박힌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멋진 학교라는 것이다.

일례로 수학에 천재적인 재질을 가진 학생이 외국 유학을 갔는데, 수학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강의만 했다고 한다. 실망해 그만두려는데, 수학을 아름답게 푸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었단다.

아무튼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았다.


이충렬씨는 역작을 펴내기가 무섭게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평생 교회 종만 치며 살아 온 종지기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집필할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에 국한된 전기에서 나아가, 평범하게 살아 온 서민의 삶에 초점에 맞춘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이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애 아니겠는가?























그 날 함께 하기로 한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판화가 류연복씨가 사정으로 참석 못해 아쉬웠지만, 즐거운 자리였다.

환담이 오가는 와중에도 박재동화백은 참석한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캐리커쳐해 선물로 주셨는데,

내 몰골 하나는 웹툰에 액스트라로 사용하려는지 챙겨 두셨다. 괜히 기분 좋아지데...



사진,글 / 조문호



정재숙씨


조원장씨


이희연씨


박불똥씨


거지왕 김춘삼씨가 생각납디다.


지명수배자 / 혹 웹툰에서 이런 몰골 만나면 신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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