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문 낭독한 태화관 부터 승동교회, 탑골공원 등 역사적 발자취 많아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이 퍼져 나갔다. 학생과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줄기찬 외침은 민족 독립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97년이 흘렀다. 서울 도심 거리에는 이미 태극기가 펄럭이고, 3.1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 준비도 한창이다.

특히 서울 종로구는 3.1운동의 시작 지점으로 근현대 독립운동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달 26일, 필자는 3.1운동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안국역 6번 출구를 거쳐 서울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에 다녀왔다



인사동 전통 문화의 거리 상점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민족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 태화관


인사동에 들어서자 골동품 상점, 화랑, 전통공예품 상점 등이 있는 전통문화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전통문화의 거리를 지나 필자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인사동 5길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태화관’.

태화관은 3.1 독립운동 당시 요리점 명월관의 별관으로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으로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한 때 이완용의 별장이었다.   



태화빌딩 입구의 모습.


현재 태화관 자리에는 12층 높이의 태화빌딩이 위치해있다. 빌딩 앞에 세워진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이 3.1운동 독립선언식 거행 장소임을 나타낸다. 건물 1층 로비로 들어서면 작은 카페가 있는데, 한쪽 벽면에는 ‘민족대표 삼일 독립선언도’가 걸려있다. 이곳은 현재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는 휴식 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태화 빌딩 안의 카페에 민족대표 삼일 독립선언도가 걸려있다.


학생 대표들이 3.1운동 지침과 계획을 모의한 곳, 승동교회


태화관에서 다시 탑골공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승동교회’가 위치한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130호로 지정된 승동교회는 학생대표들이 모여 3.1운동 지침과 계획을 모의한 곳이며, 교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학생시위운동이 일어났던 장소다. 이곳은 탑골공원과 근거리에 있어 3.1운동의 본거지로 적합했다. 


승동교회 모습.


1904년 인사동 한옥을 사들여 이사를 한 후, 예배당을 새로 짓기 시작해 1912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승동교회 골목길 입구에는 교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사진과 글들이 보였고, 건물 앞에는 3.1 독립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3.1운동 최초 발상지, 탑골공원

승동교회를 둘러보고, ‘탑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사동 거리 끝에 자리 잡은 ‘남인사 안내소’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탑골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탑골공원은 3.1운동의 발상지로 당시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92년 5월에 공원 명칭을 파고다 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정했다.   


탑골공원 내의 3.1운동 기념 동상.


탑골공원 내에는 3.1운동 기념탑, 3.1운동을 기록한 부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한용운 시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보물 제3호인 원각사비, 해시계인 앙부일구 받침돌 등의 문화재도 남아있다. 이날은 탑골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현재 탑골공원은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 보성사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조계사 경내에 자리 잡고 있는 보성사 터였다. 보성사는 1910년 세워진 인쇄소다. 보성사의 가장 큰 업적은 2만 장 가까이 되는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것이다.  


조계사 후문에 조성되어 있는 독립운동 기념비.


보성사는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현재 조계사 후문 맞은편에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독립운동을 알리는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큰 역할을 했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필자는 마지막으로 안국역 5번 출구 인근에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까지 둘러보며 탐방을 마쳤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3.1 독립운동을 이끄는 거점이었다. 의암 손병희 선생의 주도 아래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천도교 중앙대교당 건설이 시작됐는데, 이곳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모습.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완공 당시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서울의 3대 건축물로 꼽혔다. 직접 바라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날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는 평일임에도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3.1운동 유적지들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조금 썰렁하기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3.1절이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인사동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과거와 오늘을 느껴보는 것 어떨까.    

 

정책기자 이상국(프리랜서) leesang3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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