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대충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중 좋았던 시절은 소년기였다.
물커덩한 미역국이 먹긴 싫었지만, 일단 호주머니가 두둑해 좋았다.

그리고 청년기에는 생일이 싫었다.
본디 성격이 암띠어 나를 주인공으로 이루어지는 자체가 싫었고,
사춘기의 반항심까지 더해, 더러운 세상에 태어난 것조차 불만이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챙기지 않았으니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음력 날짜는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10여전 지금의 아내를 맞고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어찌나 생일을 챙기는지, 귀찮을 지경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술판까지 벌여주는 그런 여자다.

그렇게 길들어 살아왔는데, 어제께 또 생일을 맞은 것이다.
올해 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건, 페북 때문이었다.
온 천지에 생일이 알려져 축하메시지와 전화가 빗발쳤다.

한정식선생님과 장경호씨를 만나러 점심때부터 인사동에 나갔다.
아내와 함께 한정식선생을 만나 뵙고, ‘대청마루’에서 거룩한 생일 밥을 먹었다.
돼지갈비에 소주 한 병, 딱 좋았다.
그러나 낮술에 취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술 마시지 않을 때는, 새 색시처럼 내숭 떨다,
한 잔만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는 지랄 같은 술버릇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뒤늦게 ‘눈빛출판사’ 안미숙씨를 만나 요상한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술도 깰 겸 밖에 나왔다가 거리에서 장경호씨를 만났다.
둘이서 공성훈씨의 전시에도 가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술시가 좀 일렀지만, ‘유목민’으로 들어갔다.
싱싱한 고등어조림에다, 또 한 병 깠다.

주인장 전활철씨와 노광래, 유진오씨를 만났으나,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해 노광래씨 차에 실려 얼른 집으로 튀었다.

아! 술이 취해 집에 들어왔으면 자빠져 잘 일이지, 왜 컴퓨터는 켰는지 모르겠다.
숱하게 올라 온 폐북의 축하메시지들 답하느라 낑낑댄 것이다.
독수리 타법으로 또닥거리며, 친근하게 답 한다는 게 너무 오버한 것이다.

이틑 날 반나절을 낑낑거리며 누웠는데, 밤늦게 쓴 댓글이 영 찜찜했다.
그 중 두 분은 폐북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젊은이들 아니던가?
마음에 걸려 확인해 보았더니 정말 과관이었다. 거시기란 말이 여기 저기 박혀 있었다.
얼른 고쳤으나 이미 본 뒤라, 때 늦은 후회였다.

“죽으면 늙어야지, 죽으면 늙어야지”를 되씹으며 반성한다.

이제 늙어감을 축하할 일도 아닌듯 싶다.
그 놈의 생일 때문에 쪽 팔렸으니, 다시 생일을 반납해야겠다.

사진: 한정식,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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