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추정 남성…높이 걸린 55만원 상당 작품 떼어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왜 그랬을까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 가져간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요…"

갤러리가 줄지어 늘어선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대낮에 한 전시관에 걸려있던 그림이 도난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도둑으로 돌변한 관람객은 2층에서 그림을 떼어낸 뒤 1층으로 내려와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6일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3일 오후 4시30분께 인사동의 한 건물 2층에 마련된 갤러리에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들어섰다.
당시 이 갤러리에는 회화 작가 최정미씨의 개인전 '시간의 기록'이 열리고 있었다.
흰색 상의에 짙은 색 바지를 입은 점잖은 차림의 이 남성은 80㎡ 넓이의 갤러리를 한 바퀴 돌며 전시된 추상화 작품 50여점을 5분 가량 둘러봤다.
그러다 출입구에서 가까운 모서리 높은 곳에 걸린 수채화 앞에서 멈춰 섰다.
꽃과 이파리를 나타내는 듯한 붉은색과 녹색이 마치 구름과 같은 모양으로 그려진 추상 작품이었다.
'꽃구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가로 27㎝·세로 22㎝ 크기에 가격은 55만원에 책정됐다



도난당한 작품 '꽃구름'

그런데 남성이 갑자기 머리 위로 손을 쭉 뻗어 작품을 벽에서 떼어내고는 빠른 걸음으로 갤러리 문을 나섰다.
이 장면은 갤러리 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잡혔다. 갤러리 측은 바로 도난신고를 했다.
사라진 작품은 이미 판매돼 전시가 끝나면 구매자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최 작가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그는 "작품을 도난당하기 약 1시간 전에도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성이 갤러리를 찾아와 전시를 관람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면서 "그때 미리 작품을 점찍어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작품 '꽃구름'이 없어진 자리. 작품을 걸었던 못만 남았다.

중년 남성은 왜 하필 그 그림을 훔쳐간 것일까. 작품 가격은 몰랐던 걸까.
전시장에는 가격이 더 비싼 300만∼400만원대 작품도 있고 크기가 작아 몰래 가져가기 쉬운 작품도 많았다. 더욱이 그 그림은 천장 가까이 높은 곳에 걸려 있어 벽에서 떼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최 작가는 "그림을 훔쳐간 것이지만 그도 아마 그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가져간 것 아니겠느냐"며 "당황스럽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남성의 신원과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장물로 팔아넘겼을 가능성, 동종 전과자 탐문 등을 포함해 다각도로 수사하고 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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