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짝 사랑해 상사병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더러는 변해가는 풍정에 등 돌리지만,
인사동을 못잊어 안타깝게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향처럼 정들었던 인사동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 아름다운 낭만의 시절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다.
제주도에 멀쩡한 집 두고, 인사동 여관방 얻어 혼자 지내시다, 이제 요양원에 갇힌 분이다.
매일 유령처럼 인사동을 떠돌며 아리랑 춤을 추셨다.
그 다음은 시인 강 민 선생이다.
두 시간이나 걸리지만, 인사동 나오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시는 분이다.
몸이 불편해도, 만날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다.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며, 인사동을 기웃거리신다
음유시인 송상욱선생도 계신다.
인사동에 콧 구멍만한 사무실 하나 얻어놓고, 매일 같이 나오신다.
그 곳에서 시 쓰며, 흘러간 노래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몇 일전 길거리에서 만나 통 사정하셨다.
"조형, 인사동에 재미있는 일 좀 만들어봐. 심심해 미치겠어!"
인사동에 제일 좋은 갤러리 세워서 망한 김명성시인도 있다.
인사동 르네상스를 꿈꾸며,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사람이다.
정말 의지의 사나이다.
인사동에서 리어커를 끌지라도 떠나지 않겠단다.
인사동에서 미술관장 지낸 화가 장경호씨도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인사동에 반기는 사람 하나 없지만, 나오고 싶어 안달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인사동 나와서만 마신다.
꼬장꼬장한 성질머리로 문전박대 당해 "다시 안 나온다"면서도 또 나온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골목 안 천정 낮은 주청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콩알처럼 박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나 역시 인사동을 방황하는 것이다.
예술과 풍류가 넘실대던 그 때의 인사동은 온데 간데 없고, 얄팍한 상혼만 무성한 인사동.
천상병, 민병산, 중광을 비롯한 인사동 예술가들의 자취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무정한 인사동.
옛 소문에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실망감만 안겨주는 인사동.
인사동 장사꾼들이 모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와
장사꾼 말만 듣는 '종로구청'이 인사동을 망친 공범자다.
제발, 상사병 난 사람들과, 인사동 살려 낼 방안 좀 연구하라.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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