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저녁 무렵 김명성씨와 김상현씨가 동자동에 찾아왔다.

성냥공장 불난 위로주를 한 잔 사려는 자리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자주 만날 수가 없었으니, 엄청 반가웠다. 동자동에는 손님 모실만한 마땅한 밥집이 없었는데, 마침 후암동 ‘속초식당’이 생각났다. 얼마 전 ‘KP갤러리’ 전시 개막식에 갔다가 들린 뒤풀이 집이었다. 대구탕을 너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생생했다.그 날은 시원한 지리 안주로 소주 한 잔 때렸는데, 기가 막혔다. 정선 만지산 집에 불 난 이야기가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집은 김상현씨와 김명성씨도 다 인연이 많았던 집이다. 김상현씨는 음악하는 후배들과 어울려 여러 차례 만지산을 적시기도 했지만, 김명성씨는 만지산의 유일한 후원자였다.

 

 

 

20여년 전 ‘동강주민들을 위한 굿마당“을 시작으로 축제 때마다 후원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벌이도 없는 주제에 일 년에 한 번씩 축제를 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만지산 땅 문서를 가져가 돈을 얻어왔다. 내가 산 가격으로 넘겨 줄 계약서를 쓰고 500만원을 받았는데, 중도금도 잔금도 주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땅을 사기 위해 준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 땅만 가져갔다면, 모든 걸 다 태우는 이 지경은 안 되었을 텐데 말이다.

 

 

 

술 마시며 만지산을 생각하니 또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비가 추적추적 내려 담배 연기에 시름을 날렸다. 세 사람이 소주 두병 시켜 반 병 남겼으니, 다들 엄청 약게 마신 것이다. 아쉽지만 일찍 헤어져 4층 쪽방까지 올라오느라 헉헉댔다. 그 정도로 빌빌거리는 걸 보니 봄날은 간 것 같다.

 

 

 

그 이튿날은 녹번동에서 개겼는데, 저녁시간이 되니 또 술 소식이 왔다. '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씨와 최석태씨가 가까운 횟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가보니 비싼 회를 잔뜩 시켜 놓았는데, 맛도 모르는 촌놈이 혼자 다 먹었다. 그 곳에서도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어질어질 했다. 정영신씨 집으로 술자리를 옮겼으나, 뒷자리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만지산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화가 박건씨의 후원 요청으로 들어 온 돈이 무려 12,910,000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빈 집에 소 들어 온 격이지만, 심적 부담에 편하게 술이 넘어가지 않았다. 도움 준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면, 단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창고’ 1호 만들 생각으로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단 오산에서 마무리 작업 중인 환경 친화적인 예술감독 안애경씨의 자문부터 얻기로 했다. 첫 번째 예술창고에 혼신을 쏟아야 하는 것은 제1창고 완공의 결과에 따라 제2, 제3의 예술창고가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를 뛰어넘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 공간은 69명의 예술가가 후원한 공유 공간이라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오산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애경씨를 만나기로 했고, 금요일부터 정선 현장에서 온 몸으로 부딪혀 보기로 작정했다. 지자체 협조를 얻어야 할 일도 많고 주변 분들의 양해도 필요했다. 언제 쯤 예술창고 1호가 개봉될지 모르지만, 한 번 기대하십시오. 그 때 신명 난 만지산 잔치 한 번 열어 모시겠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5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갔다.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두 곳이 아닌지라, 고스톱으로 치면 일타삼피 격이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이 열리는 ‘나무아트’였다.

서둘러 나온 것도 미술행동 서울 전 끝나는 날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생명평화 미술행동’이 추진한 미술행동전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홍성담, 박건, 주홍, 박재동, 김진하씨 등 4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목숨 걸고 싸우는 미얀마 국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1년 전의 광주를 떠 올리게 하는 참상에 온몸이 떨리지만,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가슴 조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지지하는 연대가 미얀마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4월15일부터 29일까지는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전시된다.

 

두 번째는 김수길씨의 ‘보이지 않는 도시’전이 열리는 마루 '아지트갤러리'로 갔다.

전시 작가인 김수길씨를 비롯하여 유진오, 박윤호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간 지우기란 철학적 제목이 사뭇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낙엽처럼 쌓인 기억의 파편들은 작가의 추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운다는 것은 세월 지우기에 앞서 추억을 지우는 일이다.

 

작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시간지우기 작업을 보여 주었는데,

지워지는 시간의 파편 속에 세월의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표현의 도구일 뿐,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이러한 심상 풍경은 여운이 깊지만,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숨은 기억을 찾아내는 퍼즐놀이처럼, 보는 이의 독해를 요구한다.

 

작가는 “잊기 위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말한다.

김수길씨의 도시풍경 ‘보이지 않는 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다음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강찬모화백 초대전을 보러갔다.

전시장 입구에 박재동화백 작업실이 인사동 복덕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집중하는 작업에 방해 되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눈인사만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일어서게 만들고 말았다.

 

박화백이 인사동에 둥지를 틀고부터 항상 마음 든든함을 느껴왔다.

삭막해져가는 인사동에 한 가닥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강찬모 초대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1층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찬모씨는 손님을 만나고 있어 작품부터 살펴보았다.

 

오래전 히말라야에서 받았던 영감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신비로운 빛을 쏟아냈다.

자연의 경이에 앞서 한 작가가 올리는 기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마법처럼 펼쳐진 산세는 자연의 실체와 작가의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금분으로 드러낸 석양의 색조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좋은 작품에 어찌 돈이 따르지 않겠는가?

대작은 억대를 호가하는 잘 나가는 작가다.

 

세치 혀로는 도저히 그의 작품을 말할 수 없다.

작업노트에 적힌 마지막 글 외에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눈물겹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신비롭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꼭 보아야 할 전시가 남았으나, 술벗의 기다림이 마음에 걸렸다.

‘유목민'에는 ‘뮤아트’ 김상현씨 노래 소리가 골목을 촉촉이 적셨다.

 

뒤이어 ‘아지트’에 있던 김수길, 유진오, 박윤호씨 까지 합류했으나,

다음 약속이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튿날, 못 본 전시를 보기위해 다시 인사동에 나왔다.

‘갤러리 밈'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산악사진가

강레아의 ’소나무 바위에 깃들다‘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사진이 아니라 마치 산수화 같았다.

그가 보는 시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서 보기에 선경에 다름 아니다.

자일에 메 달려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쾌감은 작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보여주는 주제는 암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소나무 자태에 반해버렸다.

 

고고함을 뽐내는 눈 덮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경이 아니다.

흐리거나 눈 오는 악천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사진가의 필사적 의지가 필요하다.

입이나 머리로 사진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라, 그의 노력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전시는 5월2일까지 열린다.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가자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들이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신사동에서 ‘뮤아트’를 운영하는 김상현씨가 청담동에 ‘Salon de Mu/art 청담’을 열었다.

지난 26일 오후 7시 무렵 청담동 '뮤아트'를 찾아갔는데,

거리두기로 많은 분을 초청할 수 없는 사정이라 가면서도 마음은 편치않았다.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 로데오역에 내려 4번 출구 부근의 '옴므빌딩'6층이었다.

 

들어서니, 흥겨운 재즈음악이 살롱을 흥청였다.

띄엄띄엄 앉은 좌석에 반가운 분도 더러 보였다,

 

김상현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하양수, 이상원씨 등 반가운 분을 여럿 만났다.

 

메인공간을 장식한 신사동 '뮤아트' 실내사진에서 공통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난, 뮤지션 김상현씨를 볼 때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집념과 열정에 탄복한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삶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니, 음악 자체가 그에게 삶의 원천이다.

재능 있는 가수를 발굴하여 가르치고 아껴주는 후배사랑 또한 가슴 뭉클하다.

 

수십 년 동안 ‘뮤아트’를 끌어 온 아집과 자존심도 대단하지만,

오뚜기 처럼 버텨 온 삶의 여정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얼마 전에는 암 투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적도 있었으나,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그는 다시 일어섰다.

 

주변 지인의 전시나 문화행사에는 어김없이 무거운 장비를 챙겨들고

축하 연주를 기꺼이 해 주는 그의 예술 사랑이 암담한 현실에 한 줄기 빛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날 연주회는 하양수씨가 부른 ‘달링’이 예전과 달리 마음 속 깊이 다가왔다.

그리고 일본 첼리스트 카마코양의 ‘아베마리아’ 연주에 가슴이 시리더라.

그토록 애절한 연주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녀의 무릎 위에 놓인 첼로 아래 원피스에는 수많은 벚꽃이 수 놓여 있었다.

여지 것 반일정서에 일본을 싫어했으나, 예술의 힘은 모든 걸 녹일 수 있었다.

 

음악에 취하고 술에 취해 신사동 ‘뮤아트’로 자리를 옮겼으나, 도착하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떠보니, 새벽 두시였다.

 

옆에는 김상현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하양수, 카마코양 등 여러 명이 있었다.

김명성씨와 택시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돈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정신을 망치는 돈이지만, 멀리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풀리지 않는 숙제다.

 

사진, 글 / 조문호

 

항일 무장투쟁 100주년과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아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백범 김구 쓰다'전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14일 김명성씨 연락으로 박물관에 갔는데, 개막한지가 두 달이 넘었더라.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입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성 구로구청장 내외,

최효준 전 시립미술관장, 화가 강찬모, 전인경씨, 뮤지션 김상현씨등 여러명이 먼저 와 있었다.

 

유묵 소장자인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김시업 '은평역사박물관장'과

이랑 학예사의 해박한 설명아래 백범 김구선생의 유묵전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이 전시는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임시정부의 활동을 조망하고

김구선생의 결기에 찬 글씨를 통해 민족 지도자로서의 정신력과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 깊은 전시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주석에 이르기까지 27년간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전시에는 해방 후 4년동안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족 분열을 막기 위해 남긴 주요 작품 30여점을 비롯한 68점이 나왔다.

김구선생은 해방 이전에도 많은 글씨를 썼으나 전해지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김구선생은 글씨를 여기(餘技)로 쓰지 않았다.

그의 글에는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담겨있어

그의 글씨는 곧 통일운동이었다.

 

이번에 내놓은 ‘백범 김구 쓰다' 기획전은 '백범 김구‘선생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독립운동 사료와 독립지사들의 유묵들을 다수 소장한 김명성씨가 

지난 해 ‘구로문화재단’에서 전시 한 "독립이 맞습니까?"전에 이은 전시다.

 

김명성씨는 “중후한 글맵시와 강직한 기개가 돋보이는 현판 글씨에는

단순히 필획의 형식미를 뛰어넘어 민족주의자가 지닌 신념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가슴에 맞은 총탄으로 수전증을 얻어 손 떨림이 붓끝에 전해졌으나

정신의 웅장한 기세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백범은 1945년 환국 당일 이순신 장군의 ‘진중음’(陳中吟)을 남겼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그의 글에는 해방된 조국의 포부가 넘쳐난다.

 

1946년 겨울에는 비서 김우진에게 남이 장군의 시를 써줬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 없애네’(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로 시작하는 시로 호연지기가 넘친다.

 

이 전시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73년 만에 처음 공개된 백범의 ‘일송오강’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

일송오강’은 사람의 도리를 요약한 5개 강령으로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부모를 위해 몸을 세우고, 나를 위해 도를 세우고, 백성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만세를 위해 규범을 세운다’는 뜻이 담겼다.

 

이 글은 심산 김창숙선생의 손자가 가보로 간직해온 글을 처음 공개했다.

백범의 평생 동지였던 성균관대 초대 학장을 지낸 심산께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유묵 6점을 소장한 심산의 손자 김위(83세)씨의 말을 한 번 들어보라.

“이 글은 할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전해주셨고, 201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제가 보관해왔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께서 백범 선생에게 이 문구를 요청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백범 선생은 할아버지의 스승인 대계 선생도 잘 알고 계셨거든요.”

 

김구와 김창숙 지사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는데,

비타협 정신으로 일관한 대쪽 선비로, 서로 뜻이 통했다고 한다.

‘일송오강’은 중국 만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던

대계 이승희(1847~1916) 선생이 지어 매일 외던 글귀로 심산에게 좌우명 같은 경구였다.

나라의 장래를 위한 문구로 부족함이 없었다.

 

심산사상연구회장을 지낸 김시업 '은평역사박물관장'은

“‘일송오강’은 백범이 심산에게 써준 글이지만, 백범의 마음 자체였다”며

“그들은 반일,·항일이란 민족적 사명 앞에서 손을 잡은 혁명적 인간 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백범 글씨의 재평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글씨는 곧 그 사람’(書如其人), ‘사람과 글씨는 함께 익는다’(人書俱老)는 말처럼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백범의 행적과 정신세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백범과 심산의 또 다른 글씨도 처음 공개됐다. 백범이 늘 마음에 새긴 칠언구가 그중 하나다.

‘가지를 붙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쉬우나, 낭떠러지에서 붙잡고 있는 손을 놓는 것이 가히 대장부다.’

(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심산은 송나라 학자 정이의 ‘청잠’(聽箴)을 썼다.

‘사람이 떳떳한 마음을 가진 것은 천성에 근본한 것이다.

그러나 앎이 외물에 유혹을 받아 그 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人有秉彛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심산의 글 앞에 찍힌 한반도 모양 낙인도 눈길을 끈다.

도장에 ‘남북일가’(南北一家)를 새겼다. 하나 된 남북에 대한 희구다.

 

그리고 백범의 유묵 외에도 임시정부 활동상과

서재필,·이상룡,·조소앙, 박열, 지청천,·이범석 등 다른 독립지사들의 유묵도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체적 활약상도 소개한다.

임시의정원의 임시헌장을 비롯해 광복군 자료와 미주 동포의 의연금 영수증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3·1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대한국민의회 선언서도 함께 공개된다.

 

이랑 은평역사박물관 학예사는 1947년 쓴 ‘독립만세’와

1948년 쓴 ‘광복조국’은 완전한 독립과 광복을 웅변하는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김구선생에게 민족의 완전한 통일국가 수립은 1919년의 3·1운동에 이은 제2의 독립운동 이었다”면서

“남·북한의 분단정부 수립과 함께 실패로 끝난 백범의 꿈이 담긴 글로,

마지막 내면세계가 진하게 밴 유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김구선생은 민족의 완전한 자주통일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김구선생의 유묵에서 못다 이룬 꿈과 마지막 내면세계를 만나보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전시는 3월 28일까지 열린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휴관을 고려해 전시 일정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오후 5시까지 입장) :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1,000원

은평한옥역사박물관: 서울, 은평구 연서로 50길 8 / 은평한옥마을 / 전화 02-351-8524

 

지난 주말 정오 무렵,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동안 거리두기 핑계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뮤지션 김상현씨와 하양수씨 일행이 찾아 온 것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설거지 하는 중이라 난처했다.

손님 대접할 음식이 없어 가래떡과 대마불사주로 한 해의 건강을 축원했다.

 

그 날 김상현씨로 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청담동에 ‘뮤 아트2’를 열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란다.

후배가 후원하는 업소라 임대료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김상현씨가 병마를 털고 일어난 지가 오래지 않았는데, 연이어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

 

김상현씨 일행이 일어난 후, 인사동 ‘유목민’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 주말 전활철씨로 부터 전화가 왔으나, 일이 있어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즉 연락하지 못한 것은 집이 비좁아 한꺼번에 앉을 수도 없지만,

다섯 사람 이상 모이지 말라는 거리두기 지침에도 맞지 않은가?

 

전활철씨와 한 잔 하는데, 때 마침 조해인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듯이, 자리 만든 김에 조해인씨를 초대했다.

손님이 사 온 떡과 케잌을 안주로 기분 좋게 마셨다.

 

그 날은 일찍 세상 떠난 작은 거인 강용대씨와

땡초스님 최영해씨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떠난 친구 그리워하기 전에 살아 있는 친구라도 자주 만나야 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이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연식이라, 올 해는 친구 자주 만나는 해로 정했다.

"우리가 살면 언제까지 사나?"유행가 구절도 갱각난다.

 

코로나가 한 풀 꺾일 오는 5월 무렵, 인사동에서 심봉사 잔치 한 번 열기로 했다.

새해들어 시무주로 마신 대마불사주가 건강과 함께 깨우침을 준 것 같다. 

 

기대하시라! ‘인사동 기 살리기 잔치’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주에는 정영신의 전시 핑계로 술 마실 일이 많았다.

 

27일 저녁에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팀들이 정영신씨 녹번동 집으로 들이 닥쳤다.

해적도 아니면서 참치 한 덩어리를 들고 왔더라.

 

이사장 서인형씨와 최석태, 이미경씨가 왔는데,

집구석이 얼마나 넓은지, 다섯 사람이 앉으니 꽉 찼다.

사실, 춤 출 일 없으면 술 마시는 데는 좁을수록 술맛난다.

코로나놈 알면 큰 일 나겠지만...

 

스마트협동조합으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일자리가 급하다'

 

서인형씨는 내일 키움 일자리 채용을 비롯하여 일이 많아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내일 키움 일자리'는 예술인들에게 2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인데,

300명 채용에 7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사장과 황경하씨가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한, 주 100시간 넘는 일을 해냈다.

 

신청인원이  너무 많아 10여명씩 동시에 면접 심의를 하는 장면

 

그 짧은 기간에 사람 모아 분류하여 심사하는 등 완전 한 판 전쟁을 치룬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을 해 냈으나, 심의 기준에서 제외된 분들이 안타까워 추가 모집을 협의 중이란다.

예술가들의 삶이 힘들다는 방증인데, 고생은 하지만 조합원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안주로 가져 온 냉동 참치가 녹아 식칼로는 먹히지 않았다.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톱으로 자르는 것 같았다.

주방장 솜씨 탓이 아니고 연장 탓이지만, 어쨌든 회는 맛있었다.

한 점만 넣어도 입안이 그득했으니까... 언제 이렇게 먹어 본 적이 있었더냐.

우물우물 맛있게 먹은 생각을 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양조장 술까지 잘 익어 그 날 밤은 애들 말로 해피한 밤이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엔 경의선 책거리 ‘예술산책’에서 김수길씨를 만났다.

오랜만에 김보섭씨도 만나, 김수길씨는 응암동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진데다 공사 차에 막혀 골목에서 한 참 갇혀 늦어버렸다.

찿아 간 ‘푸른 언덕’에는 김수길씨와 조해인씨, 둘이서 마시고 있었다.

 

기분 좋게 술을 얻어 마신 것만도 고마운데, 조해인씨가 술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죠니 워카 블루’인데, 독주를 싫어해 선물 받은지가 2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고맙게 받아 녹번동 주막에 맡겨 두었다.

그런데, 그 날은 바쁜 걸음 치느라 권총을 차에 두고 내려 사진 한 장 못 찍었네.

 

일요일 오후에는 김상현씨와 김명성씨가 녹번동으로 찿아왔다.

양조장에 술이야 있지만, 안주 준비를 못해 단감으로 때웠는데,

나야 술만 좋으면 손가락을 빨아도 괜찮지만, 김명성씨가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부경찰서 뒤에 좋은 횟집이 있다며 끌고 간 것이다.

길이 헷갈려 간신히 찾았는데, 횟집 이름이 ‘마포나루’였다.

네 사람이 여러 가지 회를 양껏 먹었으나, 십 만원 남짓이었다.

가격이 싼데다 맛있고 가까우니 죽기 전에 한번은 더 올 수 있겠다 싶었다.

‘마포나루’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뿔뿔이 헤어졌다.

 

파장 잔치는 언제 쯤이나 끝날까?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재즈의 메카 ‘Mu/art’ 28주년 가을페스티발이 지난 12일 열렸다.

 

청각에 문제가 생겨 '뮤아트에 간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충무로 브레송에서 열리는 정영신의 장에 가자사진전에서 만난

들과 어울린 술 자리에 있었으나, 안 갈수가 없었다.

 

빨리 오라는 김명성씨 전화에 서둘러 지하철을 탔는데,

오래간 만의 걸음이라 신사역 출구조차 헷갈려 한 참을 헤메었다.

 

어두컴컴한 '뮤아트'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 있었.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상훈씨 등 아는 분도 여럿 보였다.

 

그런데, 그 날이 뮤 아트’를 운영하는 김상현씨 생일이라 했다.

오길 잘 했으나, 아무런 준비를 못해 축하인사 밖에 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후배 한 분이 발렌타인 21년산 한 병을 내 놓았다.

덕분에 좋은 술에 행복하게 취할 수 있었는데, 공연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째즈 보컬에 Ahreum Ash Hanyou, 피아노에 정태호,

바이얼린에 송정민씨 등 트리오 앙상블에 귀가 번쩍 뜨였다.

피아노와 바이얼린 연주도 훌륭했지만,

보컬의 음색이 늦가을처럼 처연하고 노란 은행잎처럼 영롱했다.

 

그 뿐 아니라 김상현씨와 하양수씨가 들려주는 노래 울림도 깊었다.

김상현씨의 노래는 들을 때마다 그의 삶처럼 애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오로지 음악에 빠져 삼십년 동안 한길을 걸어 온 그의 집념이 존경스럽다.

돈보다 음악에 목숨을 걸어 온 그의 일념이야 알지만,

긴 세월 뮤아트를 끌어 왔다는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몸쓸 병마까지 닥쳐 죽을 고비까지 넘기지 않았던가?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는 흥겨운 시간이 되었는데,

김명성 시인은 술만 마시면 시를 쓰는 습관이 있다.

하기야! 술자리처럼 한가할 때도 없지만, 술 기운이 시상을 촉발하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주류시인이 아니겠는가? 

 

 '뮤 아트'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먼 훗 날 '뮤 아트'를 추억하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실 것이고,,,

 

사진,  / 조문호

 

 

2020년 뮤아트 28주년 가을 festival

 

 

 

,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날이 부담스러워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 우겼다.

정영신씨를 만나면서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가 되어버렸다.

 

모르고 지나치기를 원하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나팔을 불어대니, 잊어버리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다.

 

지난 생일은 수해 때문에 정선 만지산에 갇혀있었는데, 늦은 오후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조찬 약속이 저녁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까지 합세하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생일 지난 지가 일주일도 더 되었는데,.

지난 13일 정오 쯤 인사동 유목민에서 생일잔치를 갖는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생일 핑계로 술 한 잔 하자는 전활철씨의 제안이라 안 갈 수도 없었다.

 

그 날은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김상현, 김수길, 유진오, 안원규,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모였는데, 백숙에다 장어까지 구워 음식이 푸짐했다.

김수길씨는 생일케익을 사왔고, 유진오씨는 초가을에 입을 티스쳐를 사왔다,

마침 날씨까지 쌀쌀해 선물을 그 자리에서 입을 수 있어 더 고마웠다.

모처럼 유목민에 모인 자리에서 엊그제 있었던 기가 막힌 뉴스를 풀어놓았다.

 

정영신씨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금요일 마약수사대에서 전화가 왔더라는 것이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대마에 대한 글과 사진이 있다며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짐작이 가는 누군가가 자기 요구에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양아치보다 못한 인간과 긴 세월을 함께 한 것이 너무 분했다.

,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 정영신씨 전화 번호를 알으켜 준것도 그의 제보였다.

 

나야 대마합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입장이라 두려울 게 없으나

전화를 받은 정영신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경찰에서도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보아 나를 훤히 알더라고 한다.

동자동 쪽방에도 찾아왔다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직접 대면했더라면 교도소에 갈 지언 정, 개인 일기를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은 정영신씨가 그들이 지적한 사진과 글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런데, 정영신씨가 블로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렸다.

 

법이 잘 못 되었지, 올린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애지중지 농사지은 걸 흔적도 없이 도둑질해 가는 놈이 없나,

자기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약초가 마약으로 둔갑되는 잘못된 법은 하루속히 고쳐져야 한다.

 

몇년 전에는 환경을 훼손한 엉터리 사진가를 탓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감방에서 벌금 대신 지낸 적도 있었다.

교도소 생활을 해보니, 쪽방에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더라.

끼니 거정할 것도 없는데다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으니, 건강도 좋아졌다.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독방에 넣어주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직설적인 문제점 지적들은 친분관계를 따지지 않으니,

또 무슨 일이 터질까 항상 마음 조아리며 지낸단다.

 

그래서 생일 축하하는 건배사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 이제 사고 그만 쳐요.”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나이가 일흔이 넘도록 철이 안 들어 몸이 너무 가벼운 걸 어쩌랴!"

 

유진오씨는 생일 축하곡을 봄날은 간다로 도전장을 냈다.

내 십팔번이지만, 유진오씨의 새로운 버전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상현씨까지 그 노래를 불러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버렸다.

 

, 봄바람이란 노랫말만 들어도 왜 이리 슬퍼질까?.

노래가 슬픈 것인지, 사는 게 슬픈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일어났더니, 곰장어 덕인지 거시기가 구물구물 한다.

약발 하나는 정말 죽인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생일은 맞고 싶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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