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 : 150x180mm / 내지면수 : 192 

정가 : 18,000원

강310-망치반가사유 Dismiss the President 75 X 53cm Digital print 2020

 

 

예술가 박건의 40여 년 간에 걸친 작업과 작품을 수록한

한국현대미술선44 ‘박 건’이 지날 달 ‘헥사곤‘에서 출판되었다.

 

며칠 전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최경태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박건씨를 만나 새로 나온 그의 작품집을 선물 받은 것이다.

 

작품집에는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작업과 작품 160여점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공선옥, 김진하, 김용익, 류병학, 성완경, 양정애,

원동석, 장석원, 전준엽, 정정엽, 조혜령, 하일지, 홍성담씨 등 많은 분들의 비평이 실려 있어

작품과 작가의 예술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조그만 책자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운 대형도록보다 훨씬 알차게 편집되었더라.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책 보관할 곳이 없어 침대 밑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일단 그 밑에 들어가면 폐품으로 끌려 나가기 십상이다.

대개 사진집이나 도록이 그에 해당되는데, 본인으로서야 소중할지 모르지만

책을 보고 난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리즈로 출판되는 눈빛사진가선이나 ‘한국현대미술선 등

작은 판형의 책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도 않는다.

다들 얼마나 돈이 많고 가오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난, 박건씨의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판화와,

201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공산품 아트 밖에 아는 것이 없다.

작가도 한 때 전교조 활동으로 작업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나 역시 2000년대는 강원도 정선에서 두메산골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세상과 등 돌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건씨의 작품집을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했다.

내가 몰랐던 작품이 더 많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그림도 있었다.

'까마귀’, ‘부엉이’, ‘빈방’, ‘탁족도’, ‘또 다른 나’, 얼굴 없는 나‘ 등

푸른 색깔이 주조를 이룬 2010년대 그림에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빈방 An empty room 16x23cm Acrylic on canvas 1996

 

가랑이를 쩍 벌린 여인의 도발적인 자세나 푸른빛에 드리운 음산한 분위기에 푹 빠져 들었다.

그친 터치로 형상화한 여체가 마치 유령처럼 다가왔는데, 유령이 왜 친숙하게 느껴질까?

작가의 사유적 깊이나 미적 감성이 압권 이었다.

 

박건씨는 80년대부터 ‘꽝’, ‘코카콜라’, ‘강’ 등 미니어처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바 있으나

2017년부터 공산품 아트란 새로운 깃발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복귀했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자유로움과 왕성한 창작력이 바탕 되어 기발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흔하고 값싼 사물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Mount Baekdu Crow 120x360cm Acrylic on blackboard 2007

부엉이 Owl 10X 20X 2,5cm Acrylic on paint box 2010

 

 

한 예로 부러진 망치 위에 해골 미니어처를 앉혀 생각에 잠기게 한 ‘망치반가사유상’이 있다.

부러진 망치로 ‘부러진 권력’을 상징했는데,

이 하잘 것 없는 기물로 권력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무아트’ 김진하씨는 박건의 ‘비상업적 상업성’ 복제 멀티플 작품의 유(소)통 실험이라며,

1980년대 이래로 작업방식과 문법뿐만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제도적 틀로부터 탈주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장르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태도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귀족적 예술에 똥침을 날렸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손바닥만 한 작품으로 요지경 세상을 펼쳐 보이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에 대한 기준과 가치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인 공산품아트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을

요리 조리 변형 시켜 동시대에 걸맞은 시각언어로 이끌어낸다.

버려지거나 값싼 재료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버림받거나 고장 난 물건들을 보면 연민이 든다.

나도 언젠가 그랬고 앞으로 그렇게 될 동질감을 느낀다.

쓸모 잃은 동시대 재료들을 서로 결합시키면서 일상과 시대의 정서를 끌어내거나 밀어 넣는 재미가 좋다.

요즘 공산품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값이 쌀 뿐 아니라 정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이런 편리한 소비가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상과 사랑, 자본과 노동, 문명과 역사는 나의 예술에서 외면하기 힘든 주제다.

공산품들이 그런 말을 작심하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거 같다.”고 작업노트에 밝히기도 했다.

 

‘강’은 조각이라기보다 이야기나 만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의 부러진 목과 핏빛을 이룬 강의 폭력적인 내용이 달콤한 음악적 선율에 가려졌다.

 

 

화가 전준엽씨는 작가를 ‘금지된 장난의 연출가’라 말할 정도로

사회적 내용을 연극 무대 꾸미듯 만들어 간다.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미니멀한 작업으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끌어내거나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질탕한 놀이까지 담아내는 거침없고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박건씨는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81년에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학교도 그곳의 동아대학교 미술학과를 나와 성암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대학 재직시절에 두 차례의 발표전을 가졌을 만큼 작가활동은 일찍부터 해 왔다.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의 몸으로 어떤 사건이나 개념을 직접 연출하여 보여 주는

이른바 ‘행위미술’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예술 만들기가 생활화된 박 건씨는 못하는 게 없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동안 작가, 교사, 전시기획, 출판 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제작, 퍼포머 등

다양한 직업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예술도 회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판화와 조각, 사진, 문학, 행위예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명과 욕망, 일상과 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81년 이후 망가진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 마네킹의 머리, 플라스틱으로 된 미니어쳐 병정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처리, 재결합하여 특이한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는 ‘오브제’류의 작업을 해왔다.

81년의 ‘오브제, 12인의 현장‘전(부산)을 비롯하여 , 82년의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서울),

83년의 ’인간‘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잡음, 혼선, 소란‘전, ’횡단‘전(이상 모두 서울) 등

여러 그룹전에서 발표된 것들이 이에 속한다.

 

불심검문과 압수수색이 수시로 벌어지던 암울한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소지품검사’도 눈길을 끈다.

 

 

기질의 일관성, 작업과정이나 행위의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특성, 결정적 사건의 연출, 주제의 현실성 등은

앞서 열거한 여러 그룹전의 작가들(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그룹전인 ‘시대정신’, ‘젊은 의식’,

‘횡단’의 작가들) 속에서도 특히 그의 작업은 눈길을 끄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1984년 성완경씨의 비평 중에 작가를 소개한 글이다.)

 

책머리에 쓴 박건씨의 헌사에서 힘들었던 성장 환경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굴곡진 시대를 피난민으로, 독립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가신

어머니(임민희 1933-1991), 이념 전쟁의 후유증으로 옥살이를 하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다 세상과 일찍 결별하신 아버지 (박영기 1928-1970)

영전에 바친다.”고 썼다.

 

글 / 조문호

 

행위-페트롤카 Patrol car 45x 45x 40cm Mixed media 1982

박건의 입체작품은 이야기구성을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 대한 감정이나 비판 정신이 강하다.

1985년 한강미술관의 3인의 시선에서 보여 준 박건의 ‘구토’

긁기80-2 Scratch80-2 53x45cm Oil on canvas 1980

79년 부마항쟁 때 남포동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당한 고문의 고통을 ‘긁기’ 연작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 작업은 독제정권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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