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모처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나갔다.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나종희씨 '터널'전을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에는 나종희씨를 비롯하여 ‘나무화랑’ 김진하씨,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가 와 있었다.

 

뒤 이어 김재홍씨와 류충렬씨가 나타났다.

 

문명비판적 시각의 나종희씨 작품은 

폐기물인 캔을 납작하게 오려붙여 형상화했다.

알록달록한 발색이 강렬한 시각적 운동감을 주었고,

조명에 의한 반사 각도에 따라 보는 느낌도 달랐다.

 

한 마디로 물질문명에 의해 황폐화된 세상 이치를 말했다.

자본의 똥, 욕망의 바다, 붕괴, 추락, 블랙홀, 혼돈 같은 작품 제목처럼

자본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블랙홀이자 깊은 터널이었다.

화려함 이면에 도사린 인간성 상실에 대한 메시지였다.

 

난, 형상미보다 고지식하게 이루어낸 노동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예술이란 이름의 화려한 포장보다 사람 사는 노동의 가치 말이다.

민중미술의 한 궤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초점을 맞춘 그의 작업에서

예술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근원적인 질문과도 마주쳤다.

 

반짝거리는 폐기물이 시각적 쾌감을 주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시각성은 또 다른 재미였다.

때로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체 형상으로 빈민의 몰락을 상징하거나

똥의 형상으로 자본을 탓하는 등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화려함 뒤에 오는 인간의 황폐화를 은유적으로 시사했다.

 

마치 그의 작품에서 깡통처럼 텅빈 인간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전시 서문에서 말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Yes i can”이 떠오른 것이다.

한 때 사회에 풍미된 말 “예, 나는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예 나는 깡통이로소이다”에 빚댄 유모어 같았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전시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캔을 집적한 바탕에 작가가 추가한 사람형상이나 여타 풍경과 같은

이미지의 결합으로 구조화된 화면이 이번 전시 작업양식의 대체적 흐름이다.

그러나 내겐 작가가 인위적으로 추가한 소재나 손맛의 서술적 형상 없이,

캔의 배열만으로 상징성을 확보한 ‘터널’이 인상적이었다.

캔의 부착 방향과 크기에 따른 배치, 그로부터 야기되는 무브먼트와 속도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묵시적인 형상성이 설명이 아닌 울림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와서다."

 

버려진 폐품을 소비시대 욕망의 배설물로 비판한

나종희의 ‘터널’은 오는 12월 1일까지 열린다.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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