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재홍씨의 ‘거인의 잠’이 개막되는 날이라 서둘러 인사동 '나무화랑'으로 갔다.

 

여지 것 전시 개막식을 비롯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온 금기를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공이 만만찮은 재홍씨의 작품도 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역전의 화가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다.

 

안국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올라가니 화가 김 구씨와 류연복씨는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렸다 일산 손장섭선생 상가에 간다”고 했다.

나 역시 문상도 가야지만 전시장부터 들렸다. 매번 꾸물대다 늦게 오는데, 전시장 문 닫을까 서둘러 올라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직 많은 분들이 계셨다.

전시작가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김정헌, 박불똥 조경연 부부, 이태호, 이재민, 박세라씨 등 여러 명이 작품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리뷰를 보아 대략의 내용은 알았지만, 작품 앞에서니 마치 스스로를 바라보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일었다.

상처투성이의 노쇠한 몸이 품은 의미야 해석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희멀건 잿빛 형상들이 피폐한 자본주의에 병든 인간들의 내일을 예언한

죽음의 묵시록처럼 다가왔다. 거인의 잠이 거인의 죽음으로 비친 것이다.

 

작가는 선문답처럼 ‘거인의 잠’이란 제목만 붙여놓고 일체의 말이 없었지만, 인체의 부분으로 상처 난 땅을 형상화한 상징적 이미지였다.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폭력과 굴곡의 세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묵언의 땅인 것이다.

 

김재홍씨가 3년 전에 보여 주었던 인간 탐욕의 폭력성을 고발한 “살”전 과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그는 인간을 향한 폭 넓은 주제를 택하지만, 핵심을 상징화해내는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가졌다.

그래서 또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 전시는 오는 15일까지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람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20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대면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자라섬에서 열린 자연설치미술전에서 김언경씨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첫 인상이 착한 시골선생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단에서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작가였다.

 

각설하고, 전시장에서 내려 와 뒤풀이 장소로 정해진 ‘유목민’으로 갔다.

 

술집 골목 초입부터 화가들이 자리 잡아 앉을 틈이 없었다. 코로나 시국의 손님 없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신학철, 이요상선생을 비롯하여 김건희, 김언경, 차기율, 이필두, 최운영, 나종희, 류충렬, 최석태, 우문명, 유근오, 성기준, 김영진,

조신호, 장경호, 김경서, 최완수, 그리고 배우 이재용씨 등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역전의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뒤늦게는 불화가 이인섭선생과 장 춘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조명환씨도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술 마시느라 혼자 바빴다.

홀짝 홀짝 마신 술에 가랑비에 옷 젖듯 취해 버렸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소리도 나지 않는 목소리로 돼지 목 따듯 노래까지 불렀으니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얼마만의 사건인가? 대취 했지만 기분 좋게 마시어 그런지 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다들 떠난 뒤에도 ‘유목민’ 주인장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박혜영, 장춘씨와 어울려 마셨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났더라.

 

원님 덕에 나팔 분 최고의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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