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길 건너에 자리한 낙원동은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의 안식처다.

그러나 오 갈 때 없는 노인들의 도피처에 다름 아니다.

 

이곳에서는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이발도 할 수 있고 헌책도 살 수 있다.

따뜻한 국밥으로 허기를 메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그리고 대포 한 잔으로 시름도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낙원동이다.

 

소뼈와 우거지로 밤 세워 끓여낸 국밥 한 그릇이 2천 원이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에다 이발도 염색도 5천 원이면 충분하고,

맥주 컵에 따라 주는 천원의 잔술 한 잔에 하루가 지나간다.

 

서쪽의 인사동과 북쪽의 익선동, 남쪽의 종로에 비해

낙원동은 제반 시설이 낙후된 데다 노인이 많아서 인지,

길 하나 사이에 가게 임대료조차 세배나 차이 난다.

 

낙원상가 지하에는 청국장으로 유명한 ‘일미식당’도 있고 ‘맛국수’와 ‘엄마김밥’도 있다.

탑골공원 북문 쪽으로는 ‘유진식당’ 등 싸고 맛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지난6일, 인사동에서 낙원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 밑에 자리잡은 ‘다리 밑 집’에서 길만 건너면 낙원동이다.

탑골공원 북문 쪽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판 하나에 훈수꾼은 여러 명 붙어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아! 씨발, 마가 왼쪽으로 갔으면 막을 수 있었잖아!"고

투덜거리자 구경꾼들이 모두 웃었다. 다들 처음 만났지만, 이내 친해졌다.

인천에서 왔다는 서씨는 "아는 사람 없어도 그냥 와서 이야기하다보면 친해진다"고 한다.

장기 두는 사람도 훈수 두는 사람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게 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이곳은 사회적 격리도 통하지 않는 노인들의 천국이다.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무료 급식도 있지만, 파격적으로 싼 식당이나 이발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와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영화관 등

노인들 시간 보낼 곳이 몰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에게 몸 파는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 쪽으로 옮겼다.

“나랑 연애한번 할래요? 잘해 드릴게”라며 박카스를 내미는 장면은

이제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늙어감에 따라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수야 없지만,

노년의 가난함과 외로움, 그리고 노인의 성 문제 등 사회가 터부시하는

여러 요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애잔하면서도 불편한 존재가 노인들이다.

어쩌다 나이 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고통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미처 재미있게 사는 '놀이'조차 배우지 못한 것이다.

몰입할 놀이도 없는 남자들에게 불어난 잉여시간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노인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거쳐야 할 인생행로다.

낙원동이 노인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이름처럼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다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공원 주변엔 길 잃은 노숙자만 남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그들의 삶이 안타깝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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