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5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갔다.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두 곳이 아닌지라, 고스톱으로 치면 일타삼피 격이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이 열리는 ‘나무아트’였다.

서둘러 나온 것도 미술행동 서울 전 끝나는 날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생명평화 미술행동’이 추진한 미술행동전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홍성담, 박건, 주홍, 박재동, 김진하씨 등 4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목숨 걸고 싸우는 미얀마 국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1년 전의 광주를 떠 올리게 하는 참상에 온몸이 떨리지만,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가슴 조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지지하는 연대가 미얀마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4월15일부터 29일까지는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전시된다.

 

두 번째는 김수길씨의 ‘보이지 않는 도시’전이 열리는 마루 '아지트갤러리'로 갔다.

전시 작가인 김수길씨를 비롯하여 유진오, 박윤호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간 지우기란 철학적 제목이 사뭇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낙엽처럼 쌓인 기억의 파편들은 작가의 추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운다는 것은 세월 지우기에 앞서 추억을 지우는 일이다.

 

작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시간지우기 작업을 보여 주었는데,

지워지는 시간의 파편 속에 세월의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표현의 도구일 뿐,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이러한 심상 풍경은 여운이 깊지만,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숨은 기억을 찾아내는 퍼즐놀이처럼, 보는 이의 독해를 요구한다.

 

작가는 “잊기 위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말한다.

김수길씨의 도시풍경 ‘보이지 않는 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다음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강찬모화백 초대전을 보러갔다.

전시장 입구에 박재동화백 작업실이 인사동 복덕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집중하는 작업에 방해 되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눈인사만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일어서게 만들고 말았다.

 

박화백이 인사동에 둥지를 틀고부터 항상 마음 든든함을 느껴왔다.

삭막해져가는 인사동에 한 가닥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강찬모 초대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1층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찬모씨는 손님을 만나고 있어 작품부터 살펴보았다.

 

오래전 히말라야에서 받았던 영감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신비로운 빛을 쏟아냈다.

자연의 경이에 앞서 한 작가가 올리는 기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마법처럼 펼쳐진 산세는 자연의 실체와 작가의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금분으로 드러낸 석양의 색조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좋은 작품에 어찌 돈이 따르지 않겠는가?

대작은 억대를 호가하는 잘 나가는 작가다.

 

세치 혀로는 도저히 그의 작품을 말할 수 없다.

작업노트에 적힌 마지막 글 외에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눈물겹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신비롭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꼭 보아야 할 전시가 남았으나, 술벗의 기다림이 마음에 걸렸다.

‘유목민'에는 ‘뮤아트’ 김상현씨 노래 소리가 골목을 촉촉이 적셨다.

 

뒤이어 ‘아지트’에 있던 김수길, 유진오, 박윤호씨 까지 합류했으나,

다음 약속이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튿날, 못 본 전시를 보기위해 다시 인사동에 나왔다.

‘갤러리 밈'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산악사진가

강레아의 ’소나무 바위에 깃들다‘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사진이 아니라 마치 산수화 같았다.

그가 보는 시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서 보기에 선경에 다름 아니다.

자일에 메 달려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쾌감은 작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보여주는 주제는 암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소나무 자태에 반해버렸다.

 

고고함을 뽐내는 눈 덮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경이 아니다.

흐리거나 눈 오는 악천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사진가의 필사적 의지가 필요하다.

입이나 머리로 사진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라, 그의 노력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전시는 5월2일까지 열린다.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가자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들이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