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날이다.

만사를 재처 두고 이불 속에 딩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친구도 싫고 꽃놀이도 싫은 걸 보니 갈 때가 된 것 같다.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 먹을 것을 찾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조해인 시인이 응암동에서 소주 한 잔 하잖다.

꾀죄죄한 몰골로 나갔는데, 봄바람이 제법 쌀쌀하더라.

 

‘호주방’이란 술집인데, 새로 생긴 술집 같았다.

소주방도 색시방도 아닌 호주방은 또 뭔가?

 

조그만 술집에서 오뎅탕을 안주로 소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해인씨는 애늙은이된 박한웅씨 아들 장가 가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김수길씨는 4월9일부터 인사동 ‘마루’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했다.

 

그 날의 화두는 젊은시절 놀았던 신촌 방석집 이야기였다.

주머니 탈탈 털렸던 그 때의 끈적한 추억을 건져 올렸다.

빈속에 들이키는 짜리리한 소주 맛에 춘정을 녹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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