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허리가 아파 녹번동에 있는 ‘최원호병원’에 갔다.

허리를 쥐고 꼬부랑 할배 포즈로 지하철을 탔는데, 아는 사람 만날까 걱정되더라.

어렵사리 역촌역에 내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허리 협착증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나니,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강력한 진통제 덕인 것 같은데, 약발 하나는 죽였다.

 

녹번동까지 와서 정 동지 사는 집에 어찌 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요일까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주말에 들릴 예정이었으나,

온 김에 동지도 만나고, 차 쓸 일이 있어 차를 가져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골목 전봇대 옆에 세워둔 차에 새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네.

뭘 잘 못 먹었는지 물똥을 사방에 싸 놓았는데, 말라붙어 닦아 내기도 힘들었다.

 

어렵사리 청소를 해두고 집에 들어가니, 정동지가 빙그레 웃네.

온 다는 기별도 없이 불쑥 나타났으니, 웬일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허리 아픈 것을 자랑처럼 널어놓으며 이야기보따리 풀다 보니 가기가 싫어졌다.

 

아침 일찍 떠날 생각으로 눌러앉았는데,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워 강아지처럼 달려나가 사진을 찍었으나, 한편으론 걱정이었다.

노숙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눈이 아니던가?

 

아침에 보니 눈이 제법 내렸는데, 어렵사리 닦은 차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눈 치울 일도 여간 아니지만, 날씨가 장난 아니었다.

미끄러운 길에 자동차사고라도 나면 큰일 아닌가?

무슨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당장 하지 않으면 난리 쳐들어오는 일도 아닌데, 하루 더 퍼져버렸다.

눈과 추위 덕분에 따뜻한 방에서 이틀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보냈다.

티브이에는 폭설로 도로에 갇혀 밤을 지세기도 했다는 뉴스로 시끄러운데,

살다 살다 날씨 덕에 편히 쉬게 되었구나.

 

이 모두 정동지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 아닐런지...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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