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햇님이가 공공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두 달이 지났으나 가보지 못해 마음 조렸다.

 

녹번동으로 오겠다는 연락조차 오지 말라고 깔아뭉갠 것은 코로나가 걱정되어서다.

 

최근 들어 노숙자를 비롯해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불안한데,

지난 주 검사를 받아 음성판정을 받고서야 서둔 것이다.

이사 간 아파트가 어떤지도 궁금했지만, 손녀 하랑이의 두 번째 생일이 다가 온 것이다.

 

지난 주말 정영신씨와 함께 하랑이 옷과 딸기를 사 가지고 갔는데,

은평구 수색에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라고 했다.

‘DMC 롯데캐슬 더 퍼스트 아파트’라는데, 무슨 아파트 이름이 이리도 길며

난데 없는 DMC와 롯데캐슬은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외우기도 힘든 외래어를 붙여야 아파트 품격이 올라가는 걸까?

시골 시부모가 못 오도록 어려운 이름을 선호한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가보니 아파트 단지가 어마어마한데, 주차장이 넓어 어디로 나가는지 구멍 찾기도 어렵더라.

이렇게 근사한 아파트를 저소득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아파트로 제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는데,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실망이더라.

 

13평이라 그런지 하랑이 장난감만으로 집안이 꽉 찼다.

그런데, 공공임대 전세가 일억이 넘고, 월세와 관리비가 오십 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전세 이자까지 합하면 도대체 집세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햇님이는 정의당에서 지역관리나 하는 처지라 별다른 벌이가 없다.

호구지책으로 며느리가 아르바이트로 나서 먹고 사는데, 어렵게 벌어 집세에 다 들어갈 형편이었다.

그 흔한 엄마 아빠 찬스 한 번 얻지 못한 부모 잘 못 만난 서러움이다.

 

가진 자들의 투기로 서울 집값과 전세 값 폭등에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이제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만한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손녀 하랑이를 보니 많이 자랐더라.

언어 구사가 제법이라는데, 무엇에 삐쳤는지 나와 눈 맞추기조차 피하네.

엄마 가슴에 파묻혀 눈치만 살피다 그만 잠들어 버렸는데,

손녀 재롱도 못 보고 가야 할 판이었다.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까지 귀여웠으나, 이 녀석 손을 보니 작은 손이 아니었다.

손과 발이 애비를 닮았다는데, 햇님이 손도 내손과 마찬가지니 부전자전이었다.

 

집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손녀 장난감이 너무 많았다.

내 생전 장난감 냉장고가 그리 큰 것도 처음 보았지만,

실내공간의 많은 부분을 장난감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풀지도 않은 어린이 책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어디서 사용하던 장난감과 헌책을 분양받아 온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잤을까? 드디어 하랑이가 일어났는데,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입이 툭 튀어 나와 있었다.

 

좋아 한다는 ‘춥파춥스’사탕도 마다하고, 좋아하는 딸기도 본채 만채다.

결국 소꿉놀이 장난감을 풀어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혼자서 잘도 놀았다.

 

드디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관심 끌기 위해 카메라를 주며 할아버지 사진 좀 찍어 달랬더니, 나보다 더 잘 찍었다.

 

손녀 웃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올 줄 알았는데, 늦게야 신난 것이다.

하랑이 기분 풀릴 때 까지 기다리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서둘러야 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하여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텐데,

뭘 준비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인사도 할 줄 아네.

하랑아!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 거라. 

안뇽~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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