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안애경 예술감독을 만나러 오산 놀이공간 '나무처럼' 작업장을 찾았다.

 

 

 

오랫동안 핀란드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북유럽과 한국 문화를 접목해 온 그로서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았는데, 몇 달 전 오산에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가보지 못했다.

 

 

 

마침 정선 집에 불난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13일 정오 무렵 정동지와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갑자기 서둔 것은 만들어 놓은 놀이공간도 궁금했지만, 정선에 집을 지으려면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해 온 안감독의 자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안감독을 지켜본 바로는 예술이 별난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던 그 대상에 푹 빠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그 대상에 대한 친화력이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이 공간을 만들 때는 어린이가 되어 동화되었고, 자연의 공간은 원초적 미로 되돌렸다.

 

 

 

오후2시 무렵 ‘오산 보육 타운’에 도착해 마당에 차를 주차하니, 안감독이 달려 나와 다른 곳에 주차하란다.  바닥에 주차 구역이 그려져 있어 괜찮은 줄 알았으나, 안애경씨가 주차를 못하도록 바꾼 것 같았다.

 

 

 

 

아예 바닥에 그려진 선은 지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진다는 논리다. 인위적인 것이나 관습적인 것을 싫어하는 안 감독의 진면목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산보육타운’이란 간판과 빛바랜 건물외벽을 보며, 역시 안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공사를 하면 외부부터 치장하여 돋보이게 하는데, 그는 가식적인 면보다 실리적인 면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정문을 들어가는 계단과 바닥에 모자이크된 오밀조밀한 바닥재들이 어린이들의 소꿉놀이터 처럼 정겹게 깔려 있었다.

 

 

 

본관에 들어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답답하게 막아 둔 천장을 뜯어내어 앙상한 골재와 배관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막힌 벽에 유리를 넣어 자연 풍경을 그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리고 숨기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습을 깨는 그만의 장점이다.

 

 

 

오로지 역랑을 집중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며 창의력을 일깨우는데 있었다.

 

 

 

여지 것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열린 ‘어린이 아트 캠프’나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늘 푸른 예술로 공원 워크숍' 등을 통해 생각이 깨어 있음을 잘 알지만,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거나 폐목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등 본보기가 될만한 좋은 작업을 많이 보여주었다.

 

 

 

오래 전에는 월드컵공원의 폐목으로 낙엽 함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작업하는 방식인데, 미술과 디자인은 우리일상에 뭔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다.

 

 

 

 

일반적인 실내장식이라면 설계도면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안애경씨가 맡은 이상 대충 넘어가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매번 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점이 공무원들의 틀에 박힌 관념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 공사 역시 현장소장으로 파견된 분과의 이견이 장애가 되어 현장 소장직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만들어야 하니 공사기일이 길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만 한 눈 팔면 일률적으로 마감되고, 기존 방식으로 처리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부들을 관리하는 감독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근길의 정체를 피해 새벽부터 출근하였으니, 현장에서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식기를 비롯한 일용품까지 현장에 옮겨 놓았더라.

 

 

 

꾸며진 어린이 놀이 공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아 욕심까지 생겼다. 손녀 하랑이가 이 어린이집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꼰대의 이기심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하나 놓인 소품들도 예쁘고 흥미롭지만, 창의적인 공간들이 너무 많아 앞으로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이 줄을 이을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직접 종이로 동물 형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그림자놀이도 재미있지만, 손 씻는 수도꼭지까지 청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감독은 공간을 만드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당분간 눌러 앉았다고 한다.

 

 

 

 

안애경 감독은 일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에는 방바닥에 오래 앉아 허리를 다쳤다는 페북 소식을 접하고 핀란드 목공예가 헬레나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세 사람을 데리고 쪽방을 찾아와 침대를 만들어 주고 책상까지 들여 준적도 있었다. 자재를 챙겨 와 공간에 짜 맞추어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필요하면 무슨 일이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심성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야기 중에 정선 집 문제도 나왔는데, 직접 현장을 보지 않고 거론 할 사정은 아니었다. 불난 현장이 정리되고 작업이 시작되면 자문해 주겠지만, 가급적 현장에 있는 자연적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다. 불 탄 쇠토막까지 적절하게 활용하여 지난한 세월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을 했다.

 

 

 

다른 미팅 약속이 잡혀 손님들이 찾아와 먼저 일어났는데,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만들어 둔 복숭아 통조림을 챙겨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집 지을 생각에 빠졌었는데, 하루에도 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내 평생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지어보는 집인데,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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