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은 늦잠을 잤다.
간밤에 정선에서 오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로 부터 연락을 받아,
요양원에서 모친 간호하던 정영신씨와 

약속장소인 남대문 ‘벤로갤러리’로 갔다.






평소 버스는 잘 타지 않는데, 그 날 따라 버스를 탔다.
갑자기 소공동에서  “끼이익~‘소리를 내며 버스가 급정거했다.
한 아낙이 급히 버스 앞을 지나치다 생긴 일이었다.
승객들이 놀라기는 했으나, 별탈은 없었다.
한사람이 앞으로 쏠렸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기사가 버스에서 내려 아낙에게 전화번호 달라며 닥달이다.
승객 중에 다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아낙은 기어이 못 주겠다고 버텼다.
‘달라’. ‘못 준다’며 한 참을 실랑이 해대니,
뒤에서 비키라는 클랙슨 소리가 요란했다.





기사는 멀찍이 차를 옮겨놓고 다시 달려갔다.
차에 탄 승객들은 한사람 두 사람 내리기 시작했고,
버스에는 정영신씨를 비롯한 네 사람만 남았다.
30분 가까이 지체했으니, 억울해서 그냥 내릴 수가 없었다.






잠시 차에 핸드폰 가지러 온 기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니 눈깔에 승객은 보이지도 않느냐?고 화를 냈다.
그렇게 난리를 쳐도 다시 아낙 쪽으로 달려간다.
기어이 받겠다는 기사나, 못주겠다는 아낙이나 똑 같았다.






더 이상 약속한 분들이 신경쓰여 버스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자기밖에 모를까?
교통불편 신고서까지 챙겨왔으나 찢어 버렸다.
그런 것이 사람들을 더 급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다.






화를 삭이지도 못한채 ‘벤로갤러리’에 갔더니,
‘하늘에서 본 영암’ 전시를 하는 사진가 마동욱씨와

무의도 정중근 촌장, ‘예당국악원’ 조수빈 원장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만 나누고, 식사 대접하겠다는 정중근씨 따라

인근의 '진주냉면'에서 오붓한 오찬의 시간을 가졌다.





전시장으로 돌아 온 조수빈씨는 사진전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정선아리랑’을 그렇게 구성지게 부를 수가 없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한이 뼈에 사무치도록 애잔했다.
마동욱씨는 만들어 놓은 사진 한 점을 답례로 선물했다.
사람 사는 게 이런 맛 아니던가.

버스에서 상한 마음, 눈 녹듯 녹아내렸다.


사진,글 / 조문호


















사진가 조성기의 초창기 사진이 긴 잠에서 깨어나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학생때, 방학을 이용해 지리산 산골에 들어가, 한 우체부를 대상으로 기록한 사진이

눈빛사진가선 ‘우편집배원 최씨’란 사진집으로 나오며, 뒤늦게 조명 받은 것이다.





지난 18일 오후, 충무로 '반도갤러리'에서 열리는 ‘집배원과 산골사람들’ 사진전을 찾아보았다.

마침,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기 위해 긴 세월 애쓰는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와

‘예당국악원’ 원장인 소리꾼 조수빈씨와 연락이 다아 함께 간 것이다.

다행히 사진가 조성기씨가 자리에 있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암실에서 프린트한 오리지널 프린트 40점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겨웠다.

한 우체부의 삶을 통해 산골마을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조명하고 있었는데,

심심산골의 소박한 정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비록 지리산 산골의 한정된 기록이지만, 이는 한 개인과 지역을 통해 인간 본연의 삶을 조망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면, 잘 찍거나 못 찍거나 사진가의 기량은 부차적인 문제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작가 의도만 분명하다면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더 빛나게 된다.

조성기 사진 역시 와인처럼 오랜 세월의 숙성을 거쳐 나왔으니,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 당시 아름다운 풍경이나 찍었다면, 한 낱 쓰레기에 불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 해보았자 잔소리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도 지껄이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르는 분들의, 안타까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그 날 전시장에 함께 간 명창 조수빈씨가 사진을 둘러 보더니,

아득하게 먼 어린시절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부른 노래는 바로 조수빈표 ‘정선아리랑’이었다.

정선에 살며 숱하게 듣는 ‘정선아리랑’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다.

본래의 노래가 한에 메였다면, 그 한을 추억으로 이끈다. 그보다 더 좋은 축가는 없을 듯싶다.
뒷 날 당시 주인공이었던, 최동호씨가 전시장에 온다지만, 시간이 없어 뵐 수는 없었다.





마침 인터뷰하러 온 정영신씨를 만나 정중근, 조수빈씨와 함께

충무로 복집에 들어 가 시원한 국물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 했다.


술을 마시면서도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은, 추억에만 메여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눈앞에 너무 가슴아픈 처절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쪽발이 말이지만, 이제 그만 오사마리하고 싶다.






그리고, 내일이면 전시가 끝나는 날이라 사진전을 보기도 바쁘고, 추워 외출하기도 힘드니,

눈빛아카이브에서 나온 '우편집배원 최씨' 사진집을 구입해 보시라.

만 이천원 밖에 하지 않으니, 인터넷으로 구입해 두고두고 보세요.

한 번 보고 잊을 추억은 아닌 것 같다.

행여 손해 보았다고 생각되면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기꺼이 받겠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셋째 수요일은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술 생각나는 꿀꿀한 날씨였다.
이 날은 인사동 사람으로 자처하는 반가운 사람들 만나는 날이지만, 너무 일찍 나와 버렸다.
한 시간 가까이 인사동거리를 돌아다녔으나, 아는 분을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추위를 재촉하는 흐린 날씨라 자글자글 소리 내며 튀기는 호떡에 눈길이 갔다.
거들 떠 보지 않는 사과 장수의 한 숨을 뒤로하고, 모두들 총총걸음으로 지나간다.
인사동 거리에 사람은 많아도 인사 나누는 사람도, 반가운 인사도 없었다.





술집이 몰려 있는 벽치기 골목은 오후6시가 지났지만 문 닫힌 집이 두 군데나 되고,
문이 열려도 손님조차 없었다. ‘유목민’에서 전활철씨와 이른 저녁 밥을 먹고
담배 피우려 문 앞에 쪼그려 앉았더니, 사진가 윤성광씨가 반가이 달려와 사진을 찍었다.






손님들이 몰려가는 갤러리들을 기웃거렸으나, 마음이 동하는 작품도 사람도 없었다.
그때 사,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 있느냐?”는 전화에 ‘유목민’으로 달려갔다.






오후 일곱 시가 되어서야 술친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꾼 조수빈씨와 함께 나왔는데, 좀 있으니 정경호씨도 나타났다.
인사동 주객 이인섭선생이 등장하니, 이지연, 노광래, 공윤희씨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이 날은 술을 마셔도 흥이 나지 않고, 취해도 즐겁지 않았다.
정선 가서 몇 일간 쉬고 싶어, 보따리 쌀 작정을 했다.





지하철 타는 안국역6번 출구에는 늦은 시간에도 ‘빅이슈’를 팔고 있었다.
많은 홈리스들이 다시서기 위해 ‘빅이슈’ 판매원으로 나서지만,
내가 필요한 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번도 사 주지 못했다.
이 날은 큰 맘 먹고 책 한권 사서 펼쳐보았다.






돋보기가 없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욕심은 만족을 모른다’는 글이 눈에 박혔다.
“그래! 인사동에 대한 그리움도 한 낱 욕심 이겠구나“



사진, 글 / 조문호






















































정선다녀 온 여독이 간신히 풀린 지난 10일 정오 무렵,

무의도촌장 정중근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빌딩 지하 식당가로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냉면을 그리며 달려갔다.

조수빈 명창과 와 있었는데, 식당마다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간신히 들어간 곳은 냉면대신 초계국수를 시켜야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로 넘어 온 기분이었다.

후덥지건한 쪽방에서 벗어났으나, 이곳은 간까지 서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워져 빨리 나가고 싶었다.
벌벌 떨며 국수를 어떻게 먹었는지, 나중엔 다리까지 저려왔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지 모르겠다,






저녁 무렵엔 인사동으로 바람 씌러갔다.
몇 일전 정선 집에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깜빡 옷을 두고 간 것이다.

옷을 돌려준다는 핑계였지만, 술친구가 그리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입구에는 이행자시인과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종률씨가 마주 앉았고,

옆에는 판화가 강행복씨와 정동용시인이, 상만 달리한 채 함께하고 있었다.

강행복씨의 전시가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한 쪽에는 공윤희씨가 묘령의 여인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안쪽 자리에는 사진가 이정환씨와 ‘유신의 추억’을 만든 이정황감독도 보였다.
테이블에 소주 병이 일곱 개나 늘린 걸 보니, 어지간히 마신 듯 했다.

같은 찍사 입장이라 서로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늘의 기억이, 오늘의 기록이라며...






정동영시인은 내가 잊고 있던 일을 주지시켜 주었다,

인사동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셋째주 수요일이 다음 16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반가운 사람을 만날지 벌써 기다려진다.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 쯤은 꼬불쳐 두어야겠다.






맞은편에 앉은 강행복씨가 정동용시인의 시 ‘가시고기새’를 기억하자 정시인 입이 쩍 벌어진다.

그는 한 때 인사동에서 ‘시인학교’란 카페를 운영해 교장선생님으로 통했는데,

돈 안 되는 시로 다 말아먹고, 지금은 노가다 판에 전전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자부는 대단하다.






사실상, 돈이 많으면 돈의 포로가 되니, 없는 것만 못하다.
어디, 돈 많아 얼굴에 개기름 번지르한 예술가를 본 적 있는가?



사진, 글 / 조문호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동자동에서 술 한 잔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인사동 ‘유목민’에서 만나자고 했다.
요즘같이 푹푹 찌는 쪽방에서 손님 맞으려면 힘들어서다. 다들 벗고 사는데...

퇴근시간대의 지하철은 만원이었으나, 객실은 시원하여 견딜만했다.
종로3가에서 내려 인사동 길로 들어서니, 거리에 유난히 한복 입은 젊은이들이 많았다.
전통의 멋을 내는 것이 대견스럽기는 하나, 이 더위에 어떻게 견딜까 걱정되었다.
젊으면 덥지도 않을까?





‘유목민’에 들어서니 약속한 정중근씨를 비롯하여 소리꾼 조수빈씨도 와 있었다.
술시가 일러 그런지 술집을 전세 내어 맥주에 사이다를 타 마시고 있었다.
갈증을 풀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으나, 통풍환자라 맥주를 못 마시니 어쩌랴.
시원한 실내라 더위를 말끔히 씻었는데, 술벗에다 명창의 소리까지 따라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뒤늦게는 언론인 정경호씨도 합류했다.


애절한 ‘진주난봉가’에 이어, 나를 위해 ‘정선아리랑’까지 불러주었는데,
무대에서 앵무새 소리처럼 들어 온 '정선아리랑'과는 감이 달랐다.
역시 우리 소리는 많은 관객을 두고 부르는 틀에 박힌 노래보다,
오붓한 술자리가 훨씬 좋았다.






박자에 끌려다니지 않는, 진득한 삶의 감정이 묻어나니 감동이 백배 천배다.
옛 선비들이 정자에 술상 차려놓고 듣는 그 풍류를 알 것 같았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로 시작되는 다소 짜증스러운 태평가도 완전히 다르게 불렀다.
다들 소리에 빠져 눈을 지그시 감고, 술 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안주로 나온 전복 데침이나 가지찜도 ‘유목민’에서 개발한 별미였는데,
모든 게 독창적인 것이 대세다.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놀음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금요일은 단오제’ 촬영하러 강릉 가야했다.
사진가 성남훈씨가 기획한 ‘100개의 카메라, 100개의 시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관광공사' 프로젝트로 일 년 동안 계절별로 20명씩, 80명의 사진가가 투입되고,
동영상 20명 등 1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도 홍보기록’이다.
난, 포토그래퍼 10팀으로 이규철씨와 조가 되어 ‘강릉단오제’를 찍어야 했다.
단오제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지만, 하루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3시경 낙원동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느긋하게 어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려고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와
경기민요 전수자인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이 찾아오신 것이다.
어제는 김도이씨가 오더니, 요즘 밥 사주겠다는 분이 많아 즐겁다. 

 





시원한 대구탕으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사창가에 올라가 한 잔하자는 것이다.
팔년도 없는데 사창가는 무슨 사창가냐고 했더니,
사진을 창작하는 집이란다.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들려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왔다.
“우메! 내가 믹스커피 중독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좁은 방에서 커피마시며,
시시껄렁한 한담을 나누었다. 좀 애로틱한...
듣기가 좀 거시기한지 조수빈씨는 가곡 ‘비목’을
민요로 편곡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아 난감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차피 사창가에서 일 치룰 것 아니면 빨리 일어나야 했다.
강릉 갈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낙원동에서 이규철씨 차로 서너 시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현장 부근에 근사한 여관 잡아두고, 근사한 식당에서 한 잔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이규철씨가 홀 애비로 지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거의 편한 점도 있지만, 그 외로운 밤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촬영스케줄이 잘 못 짜여 있었다.
우린 정해진 일정 따라 움직였지만,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볼거리가
대부분 다음 날부터 잡혀 있었다.
강릉단오와는 무관한 ‘동래야유’ 탈춤과 초등생들의 ‘강릉관노가면극’이 고작이었다.
하루 더 머물면 되겠으나, 일요일 정오에 약속이 있어 밤늦게 돌아와야 했다.
정해진 소재가 없어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마음이 조급하니 보이지도 않았다.

찍힌 사람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위해 ‘관광공사’직원이 따라다녔으나,
그가 무료할 정도였다.






돌아다니다 공연준비 중인 아리마당에 들려 반가운 분도 만났다.
삼척엠비시 황지웅 피디가 취재 나와 있었다.
동자동에 한 번 가겠다고 벼루다 아직 못 갔다며,
오래 전 서울역과 영등포 홈리스를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촬영모습이나 프로필사진도 몇 장씩 찍어야해,
이규철씨의 촬영모습을 관찰하였는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삼각대는 물론 드론까지 챙겨왔더라.
다행히 이규철씨가 하루 더 체류하여 보충하겠다기에 한 시름 놓고 돌아왔다.






작년에는 20년 전에 찍은 무당들을 만나 사진을 전해 주지 않았던가.
굿 보러 일부러 찾아 갔었는데, 이번엔 목전에 두고도 그냥 와야 했다.
세상만사 다 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원도 홍보기록을 위해 소지라도 한 장 올려야하는데...

사진, 글 / 조문호

단오제 사진은 의뢰 받은 사진이라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열흘 전 쯤, 인천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려는 정중근씨와 소리꾼 조수빈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화가 이봉기씨 전시 뒤풀이가 열리는 '장군보쌈'에 있었는데, 그 곳까지 찾아 온 것이다.

모처럼 인사동 나온 김에 얼굴 한 번 보려한다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해 가기 전에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망년회를 한 번 열자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쌍수들고 맛 장구쳤겠지만, 요즘은 동자동 쪽방에 빠져있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들 한 번 만나고도 싶은데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박근혜 하야를 위한 성토대회라도 열고 싶었다.

그동안 쌓인 분노를 망년회 술잔에 풀자는 생각에 어렵사리 받아들인 것이다.


참가비는 만원으로 못 박았으나, 초과되는 비용은 정중근씨를 비롯한 독지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 날 소리꾼 조수빈씨의 소리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의 즉흥 퍼포먼서도 있으니,

일정을 참고하시어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일시 : 2016년 12월 7일 (수요일) 오후7시
장소 : 인사동 ‘사동면옥’ 2층

참가 자격: 인사동을 사랑하는 국민이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 식사준비 관계로 인원 수 파악이 필요하오니, 전화나 메세지 또는 댓글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화 / 조문호 010-9436-6144

         정영신 010-2955-8926







지난 5일, 인천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에서 ‘I LOVE MUUIDO’, 제5회 무의도 문화예술 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세계 최고 문화예술섬을 꿈꾸는 정중근씨가 5년 전부터 어렵사리 이끌어 왔는데,

지자체나 지역민 도움 없이 사재 털어 축제를 연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의도 문화예술축제에선 갈매기도 춤춘다.


다행스럽게 그와 뜻을 같이하는 ‘한국영상문학회’이세종회장과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 ‘한국녹색미술회’ 황순규회장의 도움을 받아 명맥을 잇고 있는데, 오히려 처음 열릴 때보다 내용이 알찼다.

지자체에서 돈으로 만드는 축제보다, 예술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드는 이러한 축제가 훨씬 가치 있는 축제다.



▲한국녹색미술회의 그림 퍼포먼스


어디,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열리는 축제를 본 적이 있는가?


2년 뒤, 무의도 다리만 들어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축제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천혜의 비경인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 너머에서 열린 이 무의도 축제’는 시와 그림,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을 덧칠했다.



▲인사말을 하는 정중근 추진위원장


외 딴 섬이라 배를 타고 들어가 모래밭과 갯벌을 걸어 들어가는 정겨운 나들이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자연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예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멋진 무대가 어디 있을까?


▲갯벌에 수놓아진 축제 설치미술.


그 아름다운 자연 위에 시가 춤추고, 노래와 춤이 날개짓하며, 그림까지 널렸으니, 어찌 마음이 머물지 않겠는가?

웅장한 축제보다 훨씬 마음의 여운을 남기는 축제였다.

이세종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시가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가운데, 화가 황순규, 장흥래씨 등

녹색미술회원들의 그림 퍼포먼스와 설치미술들은 갯벌을 수놓았다.



▲도살풀이를 추는 이정자씨


한가온 무용단’의 이정자, 정정순씨가 춘 도살풀이는 마치 계곡에 선녀가 내려 온 듯 신성한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예당국악원의 조수빈, 최효숙, 안혜령씨가 들려 준 우리가락 또한 신명을 일으켰다.


▲함께하는 마음풀이


전용숙씨의 색스폰연주와 인천통기타동인회의 기타연주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지만,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소리꾼 조수빈씨가 연출한, 다 함께하는 대지예술 ‘마음풀이’였다.


축제 공연자들과 구경꾼들이 함께하는 마음풀이



행사의 대미는 갯벌 위에 오방색 천을 펼쳐 액운을 바다에 버리며 화합으로 이끄는 대동놀이로 마감했다.


[스크랩]서울문화투데이 / 조문호기자/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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