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2일, 한 달에 한번 가는 정선 집에 들렸다.
영월 사진축제 가느라 평소보다 일주일정도 앞 당겼다.
개막식에서 저녁 먹고 오니 자정이 가까웠다.
작물은 돌아볼 틈 없이 빈 집 청소만 하고 자리에 누웠다.
시간이 없어 군불 때지 않고 잤더니,
온 몸이 떨려 두시 무렵 잠이 깨 버렸다.

 

 

 



 

먼동 트기를 기다리기란 죽을 맛이다.
티브이도 컴퓨터도 핸드폰마저 없으니, 책 볼일 밖에 없다.
돋보기가 눈을 따르지 못해 30분만 보면 눈이 아프다.
영월에서 가져온 ‘동강사진축제’도록이나 뒤적이며 시간 죽인다.
드디어 동창이 밝아왔다.

 

 

 




밖에 나가 농작물부터 살펴보았다.
고추, 오이, 도마도, 옥수수 등 모든 작물의 성장이 멈춰있었다.
그 동안 한 두 차례 비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곳만 피해간 듯하다.
간밤에 걸린 감기로 코를 훌쩍여가며, 물 조리 춤을 추었더니,
어느 듯 따가운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사실, 다른 야채농사야 지어도 원가도 나오지 않는다.
심을 때 모종 값만 칠 팔만원 들어가는데,
농약을 치지 않으니, 병충해 때문에 수확을 제대로 못한다.
차라리 고생 안하고, 그 돈으로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그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잘 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틈틈이 수확하여 정영신씨께 상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공해 야채 받고 좋아하는 표정에 온 몸의 피로가 싹 풀려버린다.

 

 

 

 

라면을 끓여 허기를 메운 후, 제초작업에 들어간다.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은 다 그대로인데, 왼 놈의 잡초는 그리도 잘 자라는지...
허리가 아파 앉은뱅이 의자를 끌고 다니며 일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니 발가벗고 한들 어떠리...
한낮이 되니 더워서 더 이상 일 할 수가 없었다.

 

 

 

 

시원한 냉수 한 바가지로 땀 좀 식히고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사물을 살핀다.
일하느라 눈 맞추지 못한 사물들과 교감을 나눈다.
탁자 위에는 오디가 떨어져 새똥처럼 굳어버렸다.
봐주는 사람 없어 혼자 노는 장미가 반긴다.

 

 

 

 

화장실은 숲이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문 열고 일보기 딱 좋은데, 똥 누며 보는 자연의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그런데, 새소리가 귀가 막힌다.
무슨 새인지 모르나, 어느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다.
한 놈이 째째째째~ 긴 노래를 부르니, 다른 놈은 까르르르 받아친다.
가끔 뻐꾸기가 뻐꾹~ 뻐꾹~ 추임새까지 넣어준다.
이렇게 자연과 노니는 시간이 좋아 만지산에 눌러 앉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외로워서 못살겠다.

 

 

 

 

 


요즘은 님마저 발길이 뜸하니,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서울에 숨겨놓은 것도 없는데, 뭐가 급한지 떠날 채비부터 한다.
동자동도 인사동도 기다리지 않는데, 혼자 짝사랑한다.

 

 

 



 

떠나기 전에 산소에 들려 술 한 잔 올리며 울 엄마께 하소연했다.
“아따! 햇님이 힘 좀 실어주라고 그래 부탁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떠랐뿌요?”
“야 이놈아! 산꼭대기 누워있는 내가 무슨 힘이 있노?”
하나 마나인 소리 주고받으며 시름 달랜다.

 

 

 

 

 


따놓은 상추와 고추 잎을 차에 실고 서울로 줄행랑쳤다.
그날따라 어둠이 몰려오는 조양강 풍경이 낯설었다.
평창올림픽으로 생겨 난 교각인데, 그동안 무엇이 바빠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세상은 변해 가고 있었다.

 

 

 

 


황규태선생의 '묵시록'처럼 사람은 없고 살풍경만 있었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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