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다녀 온 여독이 간신히 풀린 지난 10일 정오 무렵,

무의도촌장 정중근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빌딩 지하 식당가로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냉면을 그리며 달려갔다.

조수빈 명창과 와 있었는데, 식당마다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간신히 들어간 곳은 냉면대신 초계국수를 시켜야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로 넘어 온 기분이었다.

후덥지건한 쪽방에서 벗어났으나, 이곳은 간까지 서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워져 빨리 나가고 싶었다.
벌벌 떨며 국수를 어떻게 먹었는지, 나중엔 다리까지 저려왔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지 모르겠다,






저녁 무렵엔 인사동으로 바람 씌러갔다.
몇 일전 정선 집에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깜빡 옷을 두고 간 것이다.

옷을 돌려준다는 핑계였지만, 술친구가 그리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입구에는 이행자시인과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종률씨가 마주 앉았고,

옆에는 판화가 강행복씨와 정동용시인이, 상만 달리한 채 함께하고 있었다.

강행복씨의 전시가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한 쪽에는 공윤희씨가 묘령의 여인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안쪽 자리에는 사진가 이정환씨와 ‘유신의 추억’을 만든 이정황감독도 보였다.
테이블에 소주 병이 일곱 개나 늘린 걸 보니, 어지간히 마신 듯 했다.

같은 찍사 입장이라 서로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늘의 기억이, 오늘의 기록이라며...






정동영시인은 내가 잊고 있던 일을 주지시켜 주었다,

인사동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셋째주 수요일이 다음 16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반가운 사람을 만날지 벌써 기다려진다.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 쯤은 꼬불쳐 두어야겠다.






맞은편에 앉은 강행복씨가 정동용시인의 시 ‘가시고기새’를 기억하자 정시인 입이 쩍 벌어진다.

그는 한 때 인사동에서 ‘시인학교’란 카페를 운영해 교장선생님으로 통했는데,

돈 안 되는 시로 다 말아먹고, 지금은 노가다 판에 전전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자부는 대단하다.






사실상, 돈이 많으면 돈의 포로가 되니, 없는 것만 못하다.
어디, 돈 많아 얼굴에 개기름 번지르한 예술가를 본 적 있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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