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이렇게 오래 누워 있기는 생전 처음이다.

한 달 가까이 누워 있으니 온몸에 좀이 쑤씨지만, 정영신씨가 챙겨주는 밥 얻어먹으니 좋긴 좋다.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할 일이 없다.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 보낸 적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모처럼 쓸데없는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보고 싶은 책도 많지만, 눈이 나빠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눈에 아지랑이가 낀다.

그만 눈 감으라는 이야기인가? 빨리 눈에 맞는 안경부터 구해봐야겠다.



지난 2일은 자리에서 일어난 첫 일거리로 순천에 갔다.

‘낙안포럼’에서 마련한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와 민속축제의 효과적 활용’이라는 심포지엄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동영상은 정영신씨가 스틸사진은 내가 맡기로 했는데, 촬영비는 50만원이란다.

그동안 간병한 수고비로 보탤 수 있을 것 같으나, 심포지엄이 열리는 순천까지 갈 일이 아득했다.



나야 기초생활수급자라 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으나,

벌이도 없이 학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정영신씨가 늘 걱정이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올려 달라는 많은 쪽방 빈민들의 요구와는 달리,

기존 수급비를 올리는 것 보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 상위 빈민들의

수급자를 늘려야 한다는 평소의 내 주장을 반증하는 사례다.



촬영 떠나는 그날따라 태풍이 들이닥쳐, 이른 시간부터 비가 쏟아졌다.

장대처럼 퍼 붇는 빗물이 눈앞을 가렸으나, 늦지 않으려고 냅다 밟았다.



그나저나, 오가는 경비 제하고 나면 30만원 정도 남는데, 15만원 벌기위해 목숨 건 질주를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사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이다.



다행히 심포지엄 시작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이란 건물은 엄청 넓었다.

700억이나 들여 지었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시설이 과연 지역현실에 적절한지 의심되었다.

그런데도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는 고장 나 멈춰 있었다.



이런 엄청난 건축물을 짓는 토목공사는 비단 순천만의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 대규모 건물을 지어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치적으로 생색내려는 정치인과 건설업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세금이 줄줄 새는 꼴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할까?



‘낙안읍성보존회’와 ‘낙안포럼’에서 공동 주최한 이날의 심포지엄은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낙안포럼’ 사무국장을 맡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대표의 열성과 애살이 돋보였다.

심포지엄이 열리기 전 국악 공연으로 딱딱한 분위기부터 풀었다.



먼저 한창효 낙안포럼 공동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찬조연사로 참여한 김동연 전 부총리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발제자로 나선 이왕기 이코모스한국위원회장의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개선점과 미래전망’,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낙안읍성 민속축제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활용방안’,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낙안읍성 주민들의 현실과 과제’,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의 ‘낙안읍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위성과 효과’란 발제문이 차례대로 발표되었다.



이왕기씨의 발표처럼 문화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황평우씨는 정책집행의 전문성, 개방성, 공공성, 투명성, 신중성이 요구된다며

천박한 상업관광이 판치는 낙안읍성의 현실을 탓하기도 했다.

성기숙씨는 고창읍성과 해미읍성 등 다른 지역과 공조를 이루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은 ‘낙안읍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개선점과 미래전망’,

이광수 전 곡성부군수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낙안읍성 주민들의 현실과 과제’,

나진억 성동문화재단 교육문화팀장의 ‘낙안읍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위성과 효과’라는 토론문도 발표되었다.



낙안읍성의 현실을 비판한 황평우씨의 발제에 이광수씨가 반론을 재기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으로 발제자나 토론자에게 10여분밖에 발표시간을 주지 못해 제대로 된 토론도 못했는데,

지역 국회의원이란 자가 등장해 입에 발린 공치사로 시간을 끌었다. 어디를 가나 똥파리는 붙었다.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로 돌아왔다. 어두워지면 빗길 운전이 더 힘들 것 같아서다.

폭우 속에 네 시간 넘게 달렸는데,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으면 돌아오자마자 퍼져버렸다.



내일은 인사동과 광화문광장을 들린 후, 한 달 만에 동자동 둥지로 복귀하는 날이다.

서서히 겨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들 감기 예방접종으로 건강한 겨울을 보내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의 ‘Another City 2’ 사진전이 열렸다.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로 치닫는 심각성을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마저 혼란스럽다.

삶의 구조가 비정상으로 치닫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인간이 규정해 길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 기준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일 것이다. 




소외와 박탈, 욕망, 갈등 등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와 비정한 도시의 단면을 형상화하여,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막식에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문호, 이수철, 이윤기,

김영호, 정영신, 함인선, 하춘근, 이세연씨 등 20여명이 참석했지만,

같은 시간대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된 중국사진가 왕칭송 전시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였단다.

너무 대조적이다. 그 전시는 3개월이나 열린다는데...




이수철, 이광수, 김문호, 김남진씨가 차례대로 나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고,

작가 김동진씨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서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전시작이 작년에 전시된 사진보다 더 좋아진 것은 틀림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 평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씨의 표현으로는 사진이 더 독해졌다고 말했고, 김문호씨는 사진이 진득하게 찰지다고 표현했다.


 

난, 김동진씨가 주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되었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라 모든 게 찍을 대상이 아니겠는가?

사진가 김문호씨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업도 비틀어진 사회상의 기록이지만, 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주제는 비슷하나 김문호씨의 사진이 동적인 편이라면 김동진씨 사진은 정적이다.




개막식이 끝난 후, 다들 충무 해물탕 집에 몰려 가 뒤풀이를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도 부산사람이지만, 이광수씨도 부산서 올라 와 더 반가웠는데,

이광수교수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기로 한 이규상씨가 빠져 다들 아쉬워했다.

바쁜 분이 후배들 사진전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남진관장이 이차로 안내한 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골목인데, 분위기가 오붓해 좋았다.

더구나 술 마시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고정남씨도 찾아 왔는데, 술 마시다 사진 촬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초상권 문제로 사람은 물론 거리스냅도 어려운 실정이 아니던가?

김문호씨는 카메라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는 노 파인더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이젠 숙련되어 대부분 의도한 화각을 얻어낼 수 있단다.




가로등이 조는 어두컴컴한 골목 풍경도 김문호씨가 놓칠 리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랑 놀음하는 남녀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 날 김동진씨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자리했었는데,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 될 김동진씨의 사진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니, 찰떡궁합인 것 같았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김남진관장과 김동진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 닮았더라.

이름까지 비슷한데, 혹시 숨겨 논 아들이나 동생은 아닐까?




다들 술이 취했으나 삼차로 호프집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진기획을 말했는데, 이광수교수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 전철이 끊어 질 시간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여관을 잡아 놓았으나, 멀리 가야할 김문호씨가 걱정이었다.

택시비로 주머니 좀 털렸을 거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안 보면 손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부터 3일 동안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





첫 날 부산 오시게장부터 들렸는데, 쇠퇴해 가는 시골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북적였다.

다행히 장옥을 짓지 않아, 천막으로 이루어진 노점상이라 좋았다.





예전과 달리 시장기능에 더해 먹거리전이 성행했다.

오후에는 관광지가 된 초량 168계단과 감천마을을 돌아본 후, 남포동에 숙소를 잡았다.



 


이 시대의 투사 이광수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얼마 전 이광수교수 장모 상을 당했으나, 알리지 않아 미처 몰랐다.

남의 일에는 사방팔방 쫓아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일은 알리지 않았는데,

남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해 하지만,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한 번 가려는 게 차일피일 미루다 늦었는데,

정영신씨의 부산지역 촬영 길에 님도 보고 뽕도 딸 겸 따라 나선 것이다.





이광수교수는 이 시대 몇 안 되는 의인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의 정의감은 정치와 교육, 예술 등 사회 전 분야의 모순과 부조리에 칼을 휘두른다.





왕따의 불이익을 당 할 건 불을 보듯 훤하지만 그냥두지 않는다.

한 번은 직속상관에게도 직사포를 쏘았는데, 쪽 팔린 대학총장이 삼일동안 결근을 했단다.

정의사회를 위해 물불가리지 않으며, 한 번 물면 놓지 않고 끝장을 본다.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도 예외가 아닌데, 4년 전에는 최민식 사진상비리를 물고 늘어졌다.

다들 찍힐까봐 남의 일처럼 등짐만 지고 있는 현실이라 눈이 번쩍 뜨였는데,

그것도 문제의 당사자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그동안 사진계 비리와 모순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지만,

모두 잘 아는 분과 연관되어 입을 다문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했던 처신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 혁명가기질의 이광수교수를 존경한다글을 올렸는데,

서울문화투데이발행인 이은영씨가 보고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그 글을 신문에 옮기고 싶다는 부탁을 받아들였는데,

그 게 계기가 되어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라는 칼럼을 쓰게 되었다.





한 달에 두 번씩 2년 동안 연재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도 따랐다.

가까운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하고, 동강할미꽃 훼손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 까지 했다.

지인 한 분은, 그 일을 맡은 후로 사람 좋은 조문호가 칼럼 제목처럼 빼딱하게 변했다는 조롱도 받았다.



 


그런 조롱이 그 일을 그만두게 한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그 다음 부터 전시리뷰만 쓴 것이다.

더구나 돈 한 푼 받지 않고, 정영신씨 까지 합세하여 가난한 신문사를 돕다, 3년을 기점으로 손을 떼어 버렸다.

지나치면 공짜로 부려먹는 것도 습관 되기 때문이다.



 



이광수교수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뒤늦게나마 정신 차리게 해준 고마움에 대한 사족이다.



 


우리나라에 이광수씨 같은 분이 열만 있어도 요지경 세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한다.

사실, 그처럼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작은 잘못이 있어도 뒤통수 맞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 그만큼 청렴하게 살았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자기가 맡은 교수 직분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그동안 인도고대사를 비롯하여 척박한 사진계에 내놓은 연구논문들과 비평서 등 이루어 낸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정치평론가로서 내 지르는 발언은 더러운 정치판에 속이 다 후련해진다.

족집게 도사처럼 예견하는 것이 척척 들어맞았는데, 그만큼 정치판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는 거다.

그가 펴낸 정치평론서 정치인에게 안 속고 정치판 꿰뚫는 기술이 잘 말해준다.


 



약속한 오후630분 무렵, 자갈치시장에 먼저 나와 있었다.

자갈치시장과 집이 가깝다고 말했는데, 그 날은 한 시간 밖에 안 걸려, 좀 일찍 도착했다는 것이다.

같이 만나기로 한 부인 유재희씨는 서울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요즘 부산에 감성 코칭 사무실을 차려 바쁘다고 한다.

감성 코칭이란 직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여겨졌다.






자갈치 신동아 횟집으로 들어가 과분한 술상을 받았는데,

좀 있으니, 사회다큐사진집단인 비주류사진관을 끌어가는 사진가 정남준씨가 나타났다.

정남준씨를 만난 적은 시위현장에서 한두 번 뿐이지만,

폐북에서 그동안의 활동과 사진들을 많이 본 터라, 좋아하는 사진가다.

사진적 주관이 뚜렷한 노동현장의 리얼리티 넘치는 사진에 늘 존경감을 느껴왔는데,

뜻밖에 만난 분과 술 잔을 나눌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이광수 교수는 정말 희생정신이 투철한 학자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는지 모르겠다.

부산지역사회연대기금인 만원의연대를 주선하는 것을 비롯해

요즘은 ‘518에 관한 주제로 전국을 쫓아다니는 무료강의를 시작했다.

문제점이 있는 곳이라면 정치비판에서 종교비판, 역사비판, 사학재단비판, 사진비판 등 닥치는 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전문가가 아니고는 문제 삼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 날은 마누라가 나 보다 더 바빠요라는 즐거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좀 불편하지만, 은근히 자유로움을 즐긴다는 것이다.

, 이광수교수를 교주로 모시는데, 천하의 교주도 상전은 있었다.



 


아무튼, 교주와의 술자리는 스트레스 푸는 데 최고다.

직사포로 쏘아대는 말 펀치에 속이 다 후련해진다.

나도 가끔 술자리 분위기 살리려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이지만,

다들 그 자리선 웃지만 돌아서선 욕한다.



 


그렇지만, 교주님은 그런 농담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순된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욕이라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린다.

술자리에서 점잖은 말만 골라 내뱉으며 은근히 지식 자랑하는 사내들이나

내숭 떠는 여편네들 보면 속이 울렁거려 못 견디는데 말이다.

요즘 숨이 가빠 술을 잘 못 마시지만, 그 날은 기분이 좋아 술술 들어갔다.



 


자갈치 시장에서 술을 마시니, 40여 년 전으로 필름이 돌아갔다.

남포동에서 한마당이란 국악주점을 할 때인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민식선생은 자갈치시장에서 사진 찍다 가끔 들리셨다.

어느 날,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진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가지 못해 안달하시던 모습도 생각났고,

이웃한 달 동내 포주였던 아마추어 사진가 최시병씨도 생각나고, 

'한마당'에서 사진전시를 했던 사진가 김석중씨도 생각났다.





어느 날 새벽에는 남포동에서 '전원음악다방'을 운영하던 친구 신윤택씨가 문을 두드렸다.

박정희가 총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러 왔는데, 잠결에 좋아했던 생각도 났다.

그 뒤 부마항쟁이 일어났을 때는 우리가게 코카콜라 작은 병이 거들 났다.

돌맹이가 귀한 도심이라 그보다 좋은 무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광수씨도 정남준씨도 다들 잘 마시더라. 빈병이 줄을 섰으나 이차를 가잖다.

늙은이 몸 보신시켜준다며 끌고 간곳은 꼼장어 집이었다.

다들 술이 취해 안주는 먹지 못하고 바가지만 덮어썼지만...



 


이 교수는 돈 잘 번다고 큰 소리 쳤지만,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하다.

좋은 일 하러 다니느라 길에 다 뿌리고 약자들 돕는데 아끼지 않으니, 그보다 잘 쓰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늙은이 안심시키려 한 말이지만, 월급쟁이가 벌어본들 얼마나 벌겠나?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며 푸념도 늘어놓았다.

인도종교사 정리해야지, 한국과 인도의 사진작가론 논문 마무리 해야지,

부산 노동운동사 정리해야지, 518도 뭔가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제 5년 밖에 남지않았는데 가능할까?“라며 걱정을 했다.

17년 동안 한 번도 타 먹지 못했다는 안식년이라도 찾아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여지 것 장터 다닐 때는 그 지역 지인들께 연락 하는 것을 금기시 했다.

만나다 보면 일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있지만, 술에 골아 힘들어서다.



 


그 이튿날은 대변과 기장 항을 거쳐, 포항 구룡포장이 목적지였다.

요즘 유적지나 관광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관광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

제일 싫어하는 사진 스타일이지만, 살아가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블로그 화보로 사용하지만, 찍어도 한 지역에 몇 컷만 올리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대변항으로 가다보니 이름만 듣던 용궁사란 안내판이 보였다.

일정에 없던 용궁사를 들렸는데, 돈이 돈을 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광이 좋은 해변에 세운 절이라 관광객이 흘러 넘쳤다.

종교도 사기라는 이광수교수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시장끼가 돌아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왜 바닷가 음식점은 비싼지 모르겠다.

대변항의 멸치 쌈밥이 최하가 2만원이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돌고 돌아 바닷가를 벗어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포항 구룡포 장을 돌아, 일본인 가옥 터와 호미곶도 들려보았다.

호미곶 조형물 사진을 많이 보아 그런지, 가 본 줄 알았는데 처음 간 곳이었다.

해변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코스가 더 멋지더라



 

 


밤늦게 경주에 여장을 풀었는데, 여관비가 삼 만원이었다.

얼씨구나 들어갔지만, 싼 것이 비지떡이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이라 그런지, 인터넷 불통에다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



 


그 이튿날은 감은사지를 시작으로 선덕여왕능, 분황사, 불국사, 석굴암 등을 돌아 다녔는데,

역시 불국사는 보물의 천국이었다.





국보로 지정된 유적만도 다보탑과 석가탑을 비롯하여 불국사 삼층석탑, 연화교, 칠보교,

청운교, 백운교,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 좌상,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신라시대 석조물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궁궐을 방불케 하는 회랑도 독특하지만, 반야연지의 아름다움은 절의 기품을 더해준다.





그 다음에 간 석굴암은 올라가느라 다리가 아팠지만, 최고의 산책로였다.


이 곳은 일본인들이 망쳐놓은 절이다.

본존불 이마에 박힌 보석도 일본인이 빼 갔지만, 초창기 내부 공사를 잘 못한 것이다.

통풍이 안되어 습기가 차는데다 어떤 곳은 시멘트를 발라 원상복구가 어렵게 만들었다.

여러 차례의 보수 끝에 간신이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유리에 갇혀 일반인의 본존불 친견이 어렵지만,

20여 년 전 전국 사찰을 기록할 때, 조명까지 동원하여 구석구석 다 찍어 두었다.





석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에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원숙한 기법으로 자비롭게 만든 본존불을 비롯하여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 있는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 있는 표현의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석조각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들린 불국사장은 여느 장과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30여 년 동안 불국사 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사주책장사 할아버지 이야기로 대신했다.

그것도 모델료 2천원을 드리는 조건으로...

거지처럼 돈 달라는 버릇도 사진인 들이 만든 업보다.



 


요즘 정영신씨 작업 덕분에 인생말년의 유람을 제대로 즐긴다.

다들 처음 가는 곳은 아니지만, 일하러 다닐 때와는 전혀 달랐다.

어디, 사진 찍는 일에 얽매이지 않은 채 여유롭게 여행 다닌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둘도 없는 사진동지와의 여행이라 오붓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지 대상을 보는 눈도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지만, 죽어도 고다.


 

사진, / 조문호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부 유명작가의 사진집이야 다른 곳에서도 나왔겠지만,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품들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될 뿐 했다.

그것은 한국사진 역사이기 전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던가?



 


사진관련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눈빛출판사가 태어 난지가 올해로 30주년이 되었다.

창립 30주년 기념전 및 북 페어가 지난 7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지하철 강남역 일번출구에 있는 미진프라자 빌딩 스페이스 22’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눈빛출판사'가 출간한 사진 책과 사진가들의 작품, 그리고 눈빛아카이브가 컬렉션한 사진들이 전시된다.

격동의 한국 50년을 기록한 구와바라 시세이, 이한열 열사의 주검을 포착한 정태원, 아바이마을을 찍은 엄상빈,

서울을 기록한 전민조씨 등 눈빛사진집 표지로 쓰인 20인의 사진과 대표작 1점씩이 전시되고,

미군정기의 외국인이 찍은 코다크롬 컬러사진 10점도 전시되었다



 

 


특히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의 사진-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 (이규상 엮음·사진)도 펴냈다.

한국사진사에 대한 개요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80여 명의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며,

한국 현대사진의 경향과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발행한 책이다.



    

 

눈빛출판사는 그동안 700여권의 사진관련 서적을 펴냈다.

201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58종을 발행한 '눈빛사진가선'은 기성, 신인 구분 없이 사진 완성도 중심으로 제작된

한국사진의 오늘을 보여주는 대표 사진집 시리즈다.






그리고 '눈빛아카이브'로는 격동한국50’, ‘개화기와 대한제국’, ‘골목안 풍경전집, ‘꿈의 공장‘, ’내 마음 속의 한국‘,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미군정 3년사‘,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진이 다 말해주었다‘. ’신동삼 컬렉션‘,

일제 강점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한국의 보도사진‘, ’한국의 장터‘, ’한국전쟁‘,

휴먼선집 최민식사진집등이 있다.

   


 



출판된 책들은 대부분 팔리지 않고 제작비만 많이 들어가는 사진집이다.

그것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집 중심으로 책을 만들어 왔는데, 이규상씨가 돈 많은 독지가도 아니다.

3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으나, 아직까지 조그만 사무실에서 월급 주는 직원이라고는 성윤미씨 한 사람 뿐이다.

그의 아내인 편집장 안미숙씨와 딸 이솔 양이 직원의 전부다.

거의 가내공업 수준에서 평균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만들어 왔다는 것은 소명의식에 의한 투지만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사진에 맥락을 부여해 세상에 소개하는 보람으로 견뎌낸 것 같다.



 


그것도 내달라고 기다리는 사진이 아니라, 숨어있는 사진을 일일이 찾아내어 사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역시 가정을 꾸려가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한 권 만들어 팔면 다음 책에 몽땅 쏟아 부었으니, 사는 형편이야 보나 마나다.

책 낼 돈이 없어 장인께 가계수표를 빌렸다는 이규상씨 회고담은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팔리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좋은 사진만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이루어 낸 억척스러운 결과다.

창고에 쌓여있는 사진집 보관료도 여간 아닐 것이다.



 


돈 많은 사진가들이야 자비로 책을 만들 수도 있겠으나, 가난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어찌 사진집을 만들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이름 없이 사라졌을 사진가들은 물론, 쓰레기로 태워진 필름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이야 그렇다치고 사진인 조차 사진집을 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끔 사진가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면, 외국사진가들의 수입 서적은 잔뜩 꽂혀 있으나,

국내에서 출판된 사진집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자칫 우리사진보다 외국 사진을 더 좋아하는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는데, 우리를 모르고 어찌 남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사진의 정체성을 잃고, 외국 사진 흉내나 내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규상 대표의 청년시절은 문창과를 나온 문학도 였다는데,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의 말에 따라 열화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술서적을 많이 내던 그곳에서 서서히 시각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조세희의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도 한 몫 했다고 한다.

한국 사진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찾아다니던 시기에,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사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열화당을 그만 둔 이규상씨가 정진국, 여균동, 이영준 씨와 어울려, 1988년 무렵 광화문에 출판사를 차렸는데,

 첫 출판물이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기록한 '북녘 사람들' 사진집이었다.

이어 미군정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분단문제 등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기록한 국내외 사진을 발굴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이경모, 성두경, 이형록, 김천길, 김기찬, 최민식, 황규태씨'눈빛'을 거치지 않은 국내 사진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창립 30주년 기념전 및 북페어가 개막된 지난 7일에는 김지연씨의 사회에 따라 구와바라 시세이, 윤주영, 정태원, 박현수씨가

차례대로 나와 축사를 했고, ‘눈빛출판사안미숙 편집장과 이규상대표도 인사말을 했다.

마지막에 나온 엄상빈씨가 출품작가의 양해를 받아 냈다며, 전시된 작품 일체를 눈빛출판사에 기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날 참석한 분은 전민조, 오상조, 김보섭, 김남진, 성남훈, 구본창, 김문호, 안해룡, 강제훈, 김봉규, 이주영, 아레아 박, 이한구,

박종우, 이순심, 한금선, 정영신, 이재갑, 장 숙, 이규철, 제이안 리, 김영호, 정진호, 이은숙, 박성태, 마동욱, 곽명우, 하지권, 남 준,

김 헌, 한선영, 곽대원, 김경수, 정명식, 김유리씨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사진인 들이 '눈빛출판사'의 창립30주년을 축하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참석치 못한 분도 있겠지만보이지 않는 사진가들이 너무 많았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도, 잘 못되어가는 사진계를 향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마음 꼬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원로 분들까지 눈치만 보며, 아무도 탓하지 않으니, 어찌 그냥 볼 수 있었겠는가?



 


이 날은 사정상 뒤풀이를 생략한다고 밝혔으나, 어찌 그냥 헤어질 수 있겠는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한 사람 두 사람 술집 북촌으로 모여 들었다.

"부어라~ 마시어라~ 눈빛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진, / 조문호



 


눈빛출판사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북 페어는 한국 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사진집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다,

최고50%에서 20%까지 활인 판매가 되고 있으니 사진집을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아래는 전시기간 중 대안미술 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는 강연 일정이오니,

많은 사진인 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1110()

오후 2- 330/ '대항매체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 / 김성민 경주대 교수

오후 4- 530/ 내가 바라본 격동한국 반세기 /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1113()

오후 4- 450/ 나와 아바이 마을 30/ 사진가 엄상빈

오후 5- 550/ 세계 속의 한국 사진 / 사진평론가 최연하

 

1115()

오후 4- 420/ 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선생 추모행사

오후 430- 520/ 역사의 현장에 선 사진가 / 사진가 정태원

오후 530- 620/ 오늘의 기념사진 / 사진가 전민조

 

1117()

오후 2- 330/ 눈빛과 한국현대사진 30/ 사진평론가 진동선

오후 4- 530/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사진의 지평 / 사진평론가 이광수

































































































정영신사진


























 

 





사진가 김문호씨의 ‘성시점경’전이 지난 30일 충무로 ‘반도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전시된 김문호 사진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병든 영혼의 실체를 보았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돈에 중독된 자들은 병든 자체도 모르고 살지만,
덜 중독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세상 돌아가는 데로 관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가 김문호씨가 병들어 가는 그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 모순과 왜곡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김문호만의 독보적인 사진세계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방황하는 군상들을 그만의 어법으로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끝장이다”며 날선 비판을 해댄다.
사회를 비판하고 문명을 비판하지만, 결국은 돈에 끌려가는 인간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살풍경이 펼쳐진 도회지로 나왔다. 하지만 번쩍이는 것들만 많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최악의 지표들,

청년실업, 최저임금, 노인빈곤, 살인적 노동, 가계부채, 자살률, 무엇보다 일상화된 부패와 갑질....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내내 ‘헬조선’, ‘이생망’ 같은 몹쓸 단어들이 떠나지 않았다.”

고 그가 말한다.





그동안 ‘온 더 로더’(2009)와 '새도우'(2013)를 지나

이제 '성시점경'으로 한 차원 높은 다큐멘터리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시장에는 30점이 걸렸지만, 그간의 작업들을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눈빛출판사’에 발행한 성시점경(盛示點景) IN THE CITY 김문호 사진집엔

80점 (168쪽 양장, 33,000원)이 실려 있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강렬한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9월 5일까지라 서둘러야 볼 수 있다.





세상은 돈 맛에 눈먼 영악한 자들이 장악한, 가짜가 판친다.

사진판도 마찬가지다. 그는 원로에 가까운 베테랑 사진가지만, 아웃사이더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다.
줄 서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데다, 바른 말까지 해대니 미운 털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가가 그 흔해 빠진 상한 번 받지 못하고,
대표적인 기획전에서도 항상 밀려났다.
끼리끼리 해 먹던 예전에는 눈이 어두워 못 본 것인지,
학연이나 인맥이 없어 의도적으로 따돌렸는지 모르지만,
판이 바뀐 요즘에도 관습에 젖어 못 본채 지나친다.






이번 전시가 김문호씨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정점인 것 같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아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손바닥만 한 국내보다 세계 사진시장이 먼저 알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오래 전부터 기다렸던 전시다.
전시 내용은 대략 알았지만, 사진을 비평한 이광수씨나 사진집 출판을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확신 찬 자신감에 나마져 들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시 개막식엔 늦어 버렸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지만, 매사 하는 일이 그렇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파장이라 와인도 한 잔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술 마시랴, 반가운 사람 인사하랴, 작품 보랴, 똥 오줌 못 가렸다.





곧바로 뒤풀이 집으로 정해진 ‘명문해물탕’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술 맛이 귀가 막혔다.
안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좋아 하는 사람들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거들먹거리는 똥파리들이 없어 기분이 좋으니, 술술 넘어갔다.






부산에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이규상, 이주용, 이규철, 김남진, 성남훈, 양재문, 정영신,

김영호, 석재현, 임종선, 이동준. 국수용, 임성호, 권병준, 강제훈, 이수철, 마동욱, 남 준, 곽명우,

윤길중, 이주영, 김은환, 정장식, 송주원, 권 홍, 박춘화, 성윤미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모였다.





특히 김문호씨와 초창기 함께 했던 ‘사진집단 사실’ 멤버들도 여럿 보였다.
안해룡, 김봉규, 이석필씨가 왔는데, 갑자기 추연공씨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화가였으나 외국통신사 사진기자로도 일했었는데,
그를 못 본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다. 마침 술자리에 있던 김봉규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가까운 시일에 자리 한 번 만들겠다고 했다.






골목 맥주 집으로 옮길 때는 이미 많이 취했다.
맞은 편에 앉은,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주책을 떨기도 했는데, 언제 철들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술이나 처 마시지,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놨네.





“좀 지루하더라도 술 취한  찍사들, 표정이나 한 번 봐 주이소.”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 사직로의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이광수교수의 ‘사진으로 인문학하기’강좌가 열렸다.
마지막 강좌로 ‘사진 읽기와 말하기의 여러 방식에 대한 강의였다.
서울에서 이광수교수의 사진인문학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번번히 놓쳐버렸다.
하필이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찜통더위인데다, 노회찬의원 죽음과도 맞물려 마음도 편치 않은 시기였다.
다음 주 다음 주로 미루다 마지막 강의만 간신히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것도 도강이었다.
사실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것은 수강료가 없는 개털이란 형편도 한몫했다.






그러나 뻔뻔하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세월 많은 사진 강의를 들어보았지만, 번번이 실망했기에 사진 강좌는 잘 가지 않았다.
대개 그렇고 그런 알만한 내용인데다 뜬구름 잡는 소리 들으면 졸음만 온다.
사진전공자들의 우물에 갇힌 몰상식만 재확인 할 뿐이다.
사실 다큐멘터리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인문학이란 말도 생소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사진사나 외국사진가들 자랑 질이 주를 이루는데,
사진가들의 고민과는 항상 비켜간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않겠는가?






강의의 주 내용은 다큐멘터리사진의 두 가지 접근법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사진을 비교해가며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차이점과 접근 방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교재는 이광수교수의 ‘사진인문학’과 ‘사진은 칼이다’였다.
얼마나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 하는지 두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다.
강의가 끝나고 쫑파티에서 푸는 구라는 강의보다 더 재미있었다. 타고 난 약장사였다.






이 날 쫑파티에는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최소영, 정장식, 최인기, 소광숙, 정영신,

송주원, 김태진, 오진향, 이강훈씨 등 십여 명과 함께 했다.
교주님 덕분에 이차에 걸쳐 즐겁게 마시며 잘 놀았다.
그 원수는 죽어서라도 갚으리다.

사진, 글 / 조문호




















진즉 알려야 하는데, 인터넷도 없는 정선서 삼일을 개기다보니, 늦은 소식이 되어버렸네요.

지난 16일 외국 출장 간 김봉규씨가 김문호씨 자당께서 소천하신 가슴 아픈 사연을 페북에 올렸는데,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상주 김문호씨는 하는 수 없이 댓글로 하소연 했습디다.
행여 걱정할까, 편안하게 돌아가신 호상이라지만,
자신의 몸을 잉태한 어머니의 임종을 가슴 아파하지 않을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정선 가려던 일정을 바꾸어,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안양 장례식장 부터 들렸다.
찜통같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은 문상객들로 넘쳐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 을의 입장이었던, 김문호씨 보고 찾아 온 문상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하나 놀란 것은 김문호씨가 독자이거나 남매 한 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집 안에 형을 비롯하여, 딸만 넷이나 되는 딸부자였다.
김문호씨를 알게 된지가 어언 30여년 가깝지만, 그동안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다.






큰 절로 예를 올리고 나니, 그 많은 문상객 중 사진가는 부산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 뿐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강제욱씨를 비롯하여 김남진, 이규상씨가 나타났지만,

그 밖에 아는 분이라고는 중문학자 임계재선생이 유일했다. 
이광수교수의 쌍스럽고도 시원한 농아리를 안주삼아 졸라 빨고 싶었으나,
정선 갈려고 차를 끌고 갔으니, 어찌 술을 넘 볼 수 있겠는가?

소주 한 잔을 보약삼아 입만 적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의 화두는 이광수교수가 다음 달 펴낼 사진 소설 ‘구보의 하루’였다.
눈이 나빠 글은 다 읽지 못했지만, 소설 형식을 따른 사진인들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린 사진이 장난이 아니었다. 언제 그 좋은 사진들을 찍었는지 깜짝 놀란 것이다.
얼마나 바쁜 사람이던가? 동에 뻔쩍 서에 뻔쩍 종횡무진 하는 양반이 사진까지 잘 찍어 바리면,

사진에 목숨 건 찍사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역시 사진은 사진을 전공한 사진가보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의 사진이 더 좋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기계의 장난에 불과한 사진에 전전긍긍하는 것 보다, 생각이 앞서고 규범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오는 8월30일부터 충무로 '반도카메라'에서 개인전을 열게 될 

김문호씨 사진집 제작과 함께, 열반하신 범어사 관조스님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주었다.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갑들이 긴장하게 될 김문호씨 사진집도 사진집이지만,

불교사진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좋은 일들이니 쌍수로 환영할 뉴스였다.






그 무렵, 사진하는 양아치 한 놈이 나타난 것이다.
눈앞에 있는 선배들을 무시하고, 다른 자리에서 마신 후,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져버렸다.
못난 놈, 그러니까 양아치 소리 듣는게지.

열차 예약시간을 놓쳐 난감해진 이광수교수 따라 일어나니, 그 많던 문상객은 대부분 사라졌고,
눈에 보이는 건, 국화로 뒤덮인 조화였다.
세상에! 저 많은 꽃 값을 돈으로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이광수교수가 말했다.
때로는 명사가 주위에 있다는 가오도 좀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오 좋지! 그럼 난, 뭣으로 가오 세울 수 있을까?
돈도 명예도 인물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가오 세울 것이 없었다.
차마 입으로 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나도 한 때 가오 좀 세웠지. 요 모양 요 꼴 만든 계집 질로..,.”

내가 미쳤나보다. 문상와서 계집 질 타령이라니..

어머님 죄송합니다.
웃어려고 한 이야기니

그냥 웃어 넘기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 오후7시부터 과천시의회 열린강좌실에서 레디앙에서 나온

이광수교수의 정치인에게 안 속고 정치판 꿰뚫는 기술이란

정안정궤출판을 기념하는 특강이 있었다.


 

이광수교수는 종교사학자지만, 사진판은 물론 정치판에 돗자리 깐 정치평론가다.

난 이광수씨를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부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최민식상 운영 비리에 폭탄을 던지면서부터다.

그 사건은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권력에 조아리는 사진판에 삼일 만세운동 버금가는 쾌사였다.

그리고 구라는 또 얼마나 잘 푸는지, 듣는 놈 간이 다 시원하다.

그의 박식하고 부지런한, 세상을 꿰뚫는 혜안에 그만 신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천에서 특강이 열리기 전부터 정선에서 땅 파고 똥 퍼는 밭갈이를 했지만,

서울로 돌아가는 날을 이광수교수 특강 있는 날로 잡은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해 처음 일을 하니 숨이 헉헉거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괭이질 서너 번하고, 숨 고르기를 반복하니, 늦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을 보았더니 오후4시가 가까웠다.

어이쿠! 세 시간 만에 과천까지 갈 수 없잖아


 

서둘러 마무리했는데, 흙 묻은 옷을 다 벗어버리니 입을 옷도 없었다.

입지도 않는 여름 쪽기 하나 걸치고 냅다 달렸는데, 밤엔 추워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항상 양평 가는 국도로 다니지만, 이번엔 새말 아이시로 들어가 고속도로를 탄 것이다.

그런데, 혹 때려다 붙인 격이 되어버렸다.

차가 밀리기 시작하니 아무 대책이 없었다.



안절부절하는 중에, 화가 장경호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축하주 마시러 오라는 것이다.

축하 할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명박구속 축하주라는 것이다.

만지산에는 티브이, 신문, 인터넷 등 세상일과 담 쌓고 사는 곳이라 전혀 몰랐는데,

엄청 반갑고 따끈한 소식이었다.



아이구! 잘됐다. 그 공짜 좋아하는 도둑놈, 죽도록 교도소 공짜 밥 먹게 해주어야 한다며 낄낄댔다.

그런데 이광수교수의 예언이 딱 맞아 떨어졌다.

어쩌면 구속되는 날짜까지 맞추었으니, 점쟁이도 이런 점쟁이는 없다.



어렵사리 도착하니 강의가 끝나기 직전이었다.

급히 사진만 몇 장 찍었지만, 무슨 구라를 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분들이 하나같이 낯설었으나,

새 세상을 만들 투사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다들 뒤풀이 장소로 정해진 마을카페 통으로 자리를 옮기기에 따라 붙었다.

차를 가져와 술도 마실 수 없지만, 의사가 술과 담배는 죽는다며 협박하지 않았던가?

술은 딱 한잔만 마시고, 교주님 구라 좀 들으러 갔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옆 자리에 계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대개 페북에서 아는 분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는데,

귀도 어둡고, 말까지 어눌하여 상대와 소통이 안 되니, 술만 마시게 된 것이다.


 

,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는 못 마신다.

그래서 술 취하지 않기 위해 비슷비슷한 장면이지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술 마시기 전에는 모르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쑥스러워 할 정도로 암된 성격인데,

소주 몇 잔만 들어가면 완전 도라이가 되어 버린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술을 마셨다는 생각만으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헤프닝에 다들 웃기도 했지만, 이젠 고려장할 나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늙은이 하나 끼어 있으니 다른 분들이 마음대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날은 간만에 교주님도 만났지만, 도둑놈 명박이 잡혀 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 술이 더 땡긴 것 같았다.

술이 취해 미친 망아지처럼 쫄랑대다, 그만 그 자리에 폭삭 꼬꾸라진 것이다.

여지 것 술 테이블에 엎어져 잔적은 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의사 말을 우습게 들은 결과였다.


 

정영신씨가 대리기사 불러 날 데려 왔기에 위기는 넘겼으나, 이틀 날 자고 일어나니 아찔했다.

이건 실수한 내가 욕먹는 것이 아니라 이광수씨 욕 먹이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주벽을 완전 뜯어 고쳐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술을 끊는다는 건 사실상 자신 없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요상한 노래를 부르거나 쓸데없는 농담을 일체 않으며,

적당한 기회가 되면 술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지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리고 전시개막식이나 술자리로 이어질 모임에는 일체 참석 않기로 했다.


 

특강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강의를 듣지 않았으니 할 말도 없거니와

너무 심한 실수를 저질러 개인적인 반성문이 되어버렸다.

그 날 함께한 폐친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강의 내용은 이광수교수가 페북에 올린바 있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짐작된다.

 

좌절된 좌파들의 희망. 방점은 희망에 있다. 희망은 정치에 있고,

정치는 현실에 있고 현실은 인간은 악이다,에 있다.

고기는 물을 탓하지 않는다. 물을 갈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적응할 뿐. survival of the fittest. 

 우선, 1미리만이라도. 집권 함 해보자. 구의회라도...”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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