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에 있는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김지연의 ‘봄날은 간다’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가 김지연씨가 ‘계남정미소’를 구입하여 박물관 겸 전시관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곳에서 수많은 전시소식들이 들렸으나 연이 닿지 않아 그런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전시는 지난 5월30일까지였지만 전시를 철수하지 않아 볼 수 있었는데, 난처한 것은 전주에서 쉬는 분을 불러내야하는 불편을 끼쳐야 했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는다면 죽기 전에 ‘계남정미소’ 가보기란 틀린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여산장 갈 계획도 세웠지만, 일요일 장터는 가나마나였다. 전 날 퍼마신 피로감에 차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여산장의 명물이라는 장터 짜장면 집으로 안내했다. 정오 무렵 진안 마령면에 있는 ‘계남정미소’로 출발했는데, 전주에서 떠난 김지연관장도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고색창연한 양철지붕의 정미소를 보니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사진전 제목처럼 봄날은 무정하게 가버렸지만, 옛날 고향 정미소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시끄러운 컨베이어 벨트 소리 끊긴 정미소에 음악을 울렸던 그 청춘의 시절이...

 

문 닫은 정미소를 음악실로 개조했으나 시골에서 음악실 찾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기껏해야 시골학교로 발령받은 선생들뿐이었다. 주말이면 부산을 비롯한 외지에서 찾아오는 친구들만 붐볐는데, 음악실인지 술집인지 분간 되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트럭을 불러 삼천장이나 되는 엘피판과 오디오를 싣고 부산 하단의 ‘에덴공원’이라는 손님 많은 낙원을 찾아 야반도주 한 것이다. 오디오 다칠까 친구와 짐칸에 웅크려 세찬 겨울바람을 맞았던 고생도 이젠 그리움으로 변해버렸다.

 

 

김지연씨가 보존해 온 ‘계남정미소’는 지역문화의 숱한 기억을 간직한 보물창고였다. 근대유산과 마을 공동체문화를 접목시켜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래된 결혼사진이나 이발관, 구멍가게, 퇴역 병을 찍은 '할아버지는 베테랑' 등 사라져가는 마을의 유산을 수집하거나 기록해 왔다. 방앗간에서 정미소로 정미소에서 도정공장으로 변해 온 시골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15년 동안 지켜 온 것이다.

 

진안 계남면에 있던 쓰러져가던 정미소가 지역에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까지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개인의 인생이 소중한 작품으로 재평가 받던 기억이란다.

 

한 때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지만, 외진 곳이라 칠십대인 김지연관장 혼자 관리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전주에 있는 갤러리 ‘서학동사진관’까지 운영하려니 얼마나 바쁘게 살았겠는가? 거리조차 만만찮은 두 곳을 운영하기란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자치단체마다 지역문화를 살리려는 노력과 투자가 더해지고 있는 현실에, 운영의 어려움에 처한 ‘계남정미소’를 진안군에서 왜 방관하는지 모르겠다. 성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조차 문을 닫아야 하는가? 전시 지원은 차지하고라도 최소한 상근할 수 있는 인력지원은 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 곳까지 찾아가 문이 열려 있지 않다면 누가 두 번 다시 찾겠는가?

 

고즈넉한 ‘정미소’ 분위기에 걸맞은 김지연씨의 ‘봄날은 간다’ 초상전도 일조했다. 술만 취하면 눈물콧물 짤아가며 청승스럽게 불러대던 그 노래 제목이 아니던가?

 

전시된 사진들을 살펴보니 애잔한 노인들의 초상사진에서 한 시대상을 읽을 수 있었다. 시커멓게 그슬린 피부와 거친 손 마디마디가 훈장처럼 빛났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자세나 각자 다른 어색한 손의 위치도 흥미로웠다.

 

대개 연로하여 이제 세상을 떠난 분도 더러 있을 것이니, 마을 역사의 주역들이 박물관에 소장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진전이었다. 흔히들 찍어주는 노인 영정사진에서 전신을 찍은 초상 작품으로 진화한 전시였다.

 

차 한 잔 나누며 그동안의 하소연을 들었는데, 이제 김지연씨도 지친 것 같았다. 주민들조차 공간의 가치를 몰라주니, 무슨 힘이 나겠는가? 나 역시 문화의 가치를 몰라 배타적인 시골사람들을 겪어보았기에 누구보다 이해되었다. 뜨락에 열린 빨간 보리수 열매조차 애처로워 보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국 정미소를 기록해 둔 김지연씨의 사진을 주축으로 정미소의 모든 것을 소장한 '정미소박물관'으로 재정비하여 마이산과 연계한 관광코스를 만들었으면 좋겠더라. 주차장과 부대시설은 물론 당장 소화전부터 비치해야 할 것 같았다. 진안군에서 파견한 직원이 상근하여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지연씨가 없다면 누가 관리할 것인가?

 

많은 그리움을 남겨두고 전주에 있는 갤러리 ‘서학동사진관’으로 옮겼다.

마침 그곳에서 전시 한 김학량의 ‘짱돌, 살구씨, 호미’ 전시가 끝나는 날로 작가가 작품을 철수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역문화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던 김지연씨의 애착과 한숨이 배어있는 공간이었다. 다들 돈 벌기 위해 눈이 벌겋게 설치는데, 돈 되지 않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온 한 사진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늦게나마 뜨거운 성원을 보내며, 좋은 결실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지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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