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마동욱씨는 고향이 좋아 장흥만 찍어 온 사진가다.

젊은 시절 교도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사진에 미쳐 고난의 길에 빠져들었는데,

미쳐도 고향과 함께 미쳐 천만다행이었다.

 

고향을 찍은 사진가로는 장흥에서 제일 먼저 사진관을 차린 강수의 선생도 계셨다.

10여 년 전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분의 고향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사진기억들을 모아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를 펴내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반평생동안 고향과 사진에 미쳐 사는 이가 이번에 마을창고를 사진창고로 만들려는 마동욱씨다.

장흥은 지역 사진가들의 고향사랑이 남다른 지역이었다.

 

다들 고향을 잃은 실향민처럼 살기에, 그의 고향사랑이 더 가슴 시린 것이다.

고향이란 태어난 땅에 대한 애착에 앞서 그 곳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

그가 보여 준 장흥사진에는 장소성을 드러낸 사진이 주종을 이루지만 결국은 함께 살아 온 이웃에 있었다.

 

그동안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그리운 추억의 고향마을’, ‘탐진강의 속살’, ‘하늘에서 본 장흥’,

‘고향의 사계’, ‘하늘에서 본 보성’, ‘아! 물에 잠긴 내고향’, ‘월평-월평마을120주년’,

‘장흥파 각 문중재각’등의 고향에 대한 사진집만 수없이 펴냈다.

다들 팔리지 않는 사진집을 저렇게 만들어 어쩔 것인가 걱정했으나 어렵사리 헤쳐 나갔다.

힘들어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 온 이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돈은 못 벌었지만, 계속 일할 수 있는 발판은 깔아놓은 셈이다.

 

오래 전 인사동에서 열린 그의 전시 개막식에 몰린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장흥사람들이 먼 전시장까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마치 장흥사람들 총 동창회하는 것 같았다.

그의 사람에 대한 진정성과 정치성을 동시에 알아 챈 것이다.

 

저렇게 하려면 그동안 고향사람들에게 얼마나 베풀었겠는가?

그의 사람 사랑은 고향사람에 거치지 않고 사진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인들 전시만 열리면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 와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오히려 축하 받는 당사자가 송구스럽다니까... 그의 타고 난 천성인 것 같았다.

이럴 때 생각나는 유행가 구절이 있다. “정이란 무엇인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란 사진집을 보내주면서다.

두꺼운 판형의 사진집이었는데, 처음엔 아름다운 풍경이나 찾아다니며 찍는 작가협회에 속한

전형적인 아마추어로 여겨 제대로 보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다.

한 마디로 흑사리 쭉지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향사랑에 대한 집착을 알고서야 달리 보였다.

어떤 이는 그의 사진이 비슷비슷한 사진이  많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건 강남 스타일이 아니라 마동욱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바로 사진보다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에 있다.

 

나 역시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지만, 살다보면 생각이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로 등 돌릴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초지일관 아우르며 포용하기란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 없이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다.

 

그는 장흥지역의 300여 마을을 드론으로 촬영하여 '하늘에서 본 장흥'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영암지역 600여곳을 찍었고 최근에는 강진 지역으로 확대해 사진 작업을 한다는데, 펴낸 사진집을 펼쳐보니 마치 지적도를 보는 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 전역을 떠돌며 지도 작성에 평생을 바친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가 생각나기도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겠는가?

 

이젠 집 부근의 문 닫은 새마을창고를 빌려 사진창고가 아닌 보물창고 만들 야심찬 작전을 짜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정남진 토요시장 가는 길에 마동욱씨 만나러 평장마을로 찾아갔다.

작년 11월, 평장마을 ‘새마을’ 창고에서 ‘우리 마을로 간다’는 장흥마을문화제를 열었는데,

아직까지 철수하지 않았다며 한 번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아서다.

 

정남진 토요시장에서 정동지와 열무비빔국수로 요기를 하고 전시가 열리는 평장마을 창고를 찾아갔더니

마동욱씨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넓은 창고공간 벽에 크고 작은 사진자료들이 빼곡이 전시되어 있었다.

 

금안, 대반, 덕제, 송산, 순지, 평장 등 여섯 개 마을을 기록한 전시회에는

마동욱씨를 비롯하여 문충선, 서선미, 류은숙씨 등 네 명의 지역 사진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전시된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긴 세월 마을을 지키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애환이 배어 있었다.

점차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를 문 닫은 새마을창고에서 보여 준 의미 있는 전시였으나,

힘들게 살아온 지역민들의 이야기만 텅 빈 창고에 메아리처럼 번졌다.

 

이 전시를 계기로 새마을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할 앞으로의 계획도 말했다.

지자체 도움을 얻어 지역 자료관을 겸한 전시관으로 만들 것이란다.

천장 높은 창고의 특성을 활용한 구조설계도 좋아야 겠지만, 앞으로의 운영안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얼마 남지 않은 주민 이외의 외지인들을 끌어드리려면 전시나 행사 기획력이 탁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원한 냉커피나 한 잔하자며 집으로 안내했는데, 가보니 새로 지은 집이었다.

오래 전 가본 집이 아니라 대출받아 새로 지었다고 했다.

아담하고 편리해 보여 얼마나 들었냐고 물었더니, 1억이나 들었다는 답에 깜짝 놀랐다.

요즘들어 건축비에 부쩍 관심이 많은 것은 정선 집지을 생각 때문이다. 다들 자재비보다 인건비가 더 무섭다며 집짓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광주교도소’사진집을 출판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촬영을 끝내고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는데, 그는 교도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어

어떤 사진가보다 교도소 구조물의 의미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일었다.

 

이사한 것도 모르고 빈손으로 찾아 갔는데, 마동욱씨 부인은 냉장고에 숨겨둔 짱아치를 꺼내 주었다.

저렇게 안팎에서 챙기니 사람들이 꼬이지 않겠는가? 남편이 돈을 벌지 못하니 아내가 식당에 일하러 나간단다.

한 곳에 미쳐 사는 남편을 둔, 새까맣게 타 버린 아내의 심정을 난들 어찌 모르겠는가?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자며 마당에 불러 세웠더니,

마동욱씨 표정에 아내를 향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묻어났다.

고향사진은 마동욱씨가 찍었지만, 아내 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가능했던 합작인 셈이다

부디 힘을 합쳐 사진창고가 아닌 장흥의 보물창고를 만들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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