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노량진수산시장' 사진집

눈빛출판사, 184, 25,000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눈빛출판사에서 펴내는 오늘의 다큐일곱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오늘 발생한 사회 제 문제를 사진가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사진에 담아냈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집 총서다.

 

 

 

이 책은 서울시민의 집단기억이 숨 쉬고 있는 노량진 구수산시장이 선진화와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풍비박산되었고,

그곳을 생계의 터전으로 살아온 시장 상인들의 삶이 변모하였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에게 수산물을 제공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는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 1928년 서울역 염천교 근처에 경성수산주식회사가 생겨난 이래 서울의 대표적인 이 수산시장은 1975년 한국냉장()이 시장을 인수해 노량진으로 장소를 옮긴다. 겉으로 보면 싱싱한 해산물의 도소매가 이뤄지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날 것 같은 수산시장이지만 2002년 공기업 민영화가 시작되면서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현대화사업이 추진돼 2016년부터는 신시장에서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40퍼센트 가량의 구시장 상인들은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노량진 구수산시장 부분존치와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여오고 있다.

 

 

 

이 사진집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인기씨가 지난 3년 동안 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들의 생업과 투쟁 현장을 기록한 컬러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비린내 물씬한 수산시장과 활기 있는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킹 크랩을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손님이 뜸한 틈을 이용해 좌판 옆에서 잠이 든 할머니, 수조에 생선을 넣는 청년 등 수산시장의 일상적인 장면들로 이 사진집은 시작된다. 연탄난로에 발을 녹이는 할머니, 주문한 음식을 머리에 이고 배달 가는 식당 아주머니 그리고 장이 파한 후 한데 모여 여흥을 즐기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현대화 이전 구시장의 평온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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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생계 터전은 현대화와 법을 앞세운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경찰의 비호 아래 용역들이 들이닥치고 상인들은 이들과의 힘겨운 공방 끝에 202010월 지하철이 다니는 25천 볼트 고압선 위 육교로 쫓겨나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생업에 열중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주변 동료 상인들과 어울려 살아온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갈등과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사진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기록하였다. 결국 이 사진들은 국가와 사회가 소시민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고 투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직권남용에 대한 분노의 서사인 것이다.

 

 

 

지난 64일 오후630분경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집 출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전시장에는 사진가 최인기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엄상빈, 김보섭, 김문호, 정영신, 김동진, 김영호, 곽명우씨 등의 사진가들이 함께하여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전시와 사진집출간을 축하했다.

 

 

 

이 전시에는 다큐멘터리 은석 감독이 촬영한 '시장으로 가는 길' 도 함께 방영되었다.

 

 

 

눈빛의 이규상대표는 작가를 소개하는 인사말에서 사진가이기 이전에 투쟁현장의 전사로서 최인기의 부지런한 모습을 전하며 키가 작아 용역 깡패들 가랑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촬영 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 진짜 그는 못 말리는 전사고 못 말리는 찍사다.

 

 

 

60년대 말 청계천을 기록한 빈민들의 성자 노무라목사의 영향을 받아 사진의 길로 들어선 사진가답게 특정 도시공간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기록해 왔다3년 전에는 '청계천 사람들'이란 주제로 노점상들의 투쟁을 다룬 전시와 사진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삶의 투쟁을 기록한 이번 사진집 표지 사진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식칼을 허리 뒤에 감춘 크로즈 업 사진 한 장으로 전체 투쟁의 내용은 물론 사진집에 실린 상인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쓰는 표현 방법이지, 당사자와 같이 살거나 함께 투쟁하는 사진가는 잘 선택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왜냐하면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인기의 표지 사진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인의 현장 모습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가는 일상적 기록 이외의 사진가적 욕심을 버리는 것이 도리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사진 앵글을 과장하는 트릭이나 연출은 일체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6-70년대 청계천 사진이나 최인기 사진이 대표적으로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인데, 튀는 사진이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민중들의 삶은 원래 자극거리가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값진 진실 하나를 일깨워주고 있다. 세상에 따분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고, 또 싫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대개 지루하거나 따분한 것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찍은 평범하고 소소한 기록들이야 말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가치를 발휘해 인간 삶의 중요한 역사적 단서와 함께 사료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출판과 전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진가 최인기씨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어떤 사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 제가 지속해서 전시와 출판을 하는 이유입니다. 가난은 드러내 공론화시킬 때 해결이 모색된다는 것도 평소 제가 가진 지론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전은 13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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