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이틀동안 남해와 광양으로 떠났다.

더구나 이번에는 꿈에도 그리던 금산의 보리암도 들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남해에 있는 인근 오일장은 여러차례 다녔지만,

30여 년 전에 보았던 금산 보리암은 들릴 겨를이 없었는데,

그 곳에서 내려다 보았던 아스라한 바다풍경을 영 잊을 수 가 없었다.


 

지방 갈 때 마다 휴게소에 들리지만, 사람들이 내 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지난 겨울 만지산 눈길에 미끄러져 묵사발 되었지만, 운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폐차장에서 끌고 나왔다고 생각되는지 다들 유심히 처다보는데,

차 한번 처다보고, 차에 탄 사람 한 번 처다본다.

이동수단에 불과한 자동차를 왜 그렇게 바라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맨 먼저 들린 '이천 휴게소'70년대 생활상을 재현한 풍물관이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이러한 풍물관이 있는 것도 처음보았는데,

어려웠지만 훈훈했던 옛 추억을 떠 올리게하는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구멍가게, 영화관, 헌책방 뿐이지만, 잊었던 지난 날을 일깨웠다.


 

또 하나 놀란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수 송가인이가 완전히 접수했더라.

'여산휴게소'에서는 송가인의 용두산 엘리지만 반복해서 울려 나왔고,

'섬진강휴게소'는 단장의 미이리고개가 흘러 나왔다.

'미스트롯'이 만들어 낸 송가인 열풍으로, 방송후 그녀의 페이가 20배 뛰었단다.

'TV조선'에서 노인층을 겨냥해 만들어낸 '미스트롯'은 완전 대박이었다



남해대교를 건너 제일먼저 찾은 곳은 남해 이동장이었다.

오전 아홉시 무렵 도착했으나 장터에 사람이 없었다.

손님이 없어 새벽에 열렸다가 일찍 끝났다는 것이다.

텅 빈 장터를 한 바퀴 돌았는데, 뒤편에 세워 놓은 공덕비만 자리를 지켰다.


 

그 다음에 들린 곳은 금산 보리암 인데, 오르다 큰일 날뻔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갑자기 차 시동이 꺼져 버린 것이다.

에어컨을 켠 채 올라 힘이 달린 것 같았다.

움찔 움찔 뒤 바퀴 질만 하다 간신히 옆으로 꺾어 올랐지만, 간이 콩알만 했다.


 

온통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금산은 언제보아도 절경이었다.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지어 보광산이라 불렀다지만, 이성계가 금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는데,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다음에 들린 곳은 가천 다랭이 마을이었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손바닥만 한 논이 언덕 위에서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길, , 논 등 모든 것이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곡선 위의 오선지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요즘은 관광사업으로 장사하는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실망감도 따랐지만,

우리나라에서 성기바위로는 제일 큰 암수바위가 있는 곳이다. 

숫 바위는 발기한 남자 성기 모양새고, 암 바위는 잉태한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양이다.

바다를 등진 채 비스듬하게 세워진 숫 바위의 귀두와 힘줄이 너무 사실적이다.


 

광양으로 차를 몰아 광양 읍수와 이팝나무가 있는 '유당공원'부터 들렸다.

'유당공원'은 중종23년에 광양읍성을 쌓고,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단다.

나무를 심을 때는 성을 가린 군사보안림이었으나, 바람을 막는 방풍림 역할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지금은 성이 없어지고 고목들만 남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팝나무다.



그 이틀 날은 매실을 수확하는 농가를 찾아 아침부터 나섰는데.

남해의 마늘도 풍년이었지만, 광양의 매실도 풍년이었다.

사 먹는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농민들은 죽을 맛일게다.



광양오일장은 갈 때마다 모습을 달리했다.

처음 왔을때는 역전에 난장이 펼쳐졌으나 몇 년 전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초가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또 다시 장옥을 바꾸었더라. 문제는 돈을 많이 들일 수록 장이 더 못하다는 것이다

돈이 많아 탈이다.



광양 옥룡사지를 가는 길은 비릿한 밤 꽃 냄새가 천지를 진동했다.

밤 꽃 냄새는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하여 옛사대부 집안은 밤나무를 모두 베었다고 한다.

안방마님부터 며느리까지 음풍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는데,

이 동내 과부들은 어찌 견디는지 모르겠다.



광양은 도선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도선국사는 전남 영암출신으로 광양 백계산에 옥룡사를 지어 이곳에 입적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옥룡사 옆에 운암사를 지었다고 한다.


 

도선국사의 흔적이 남은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부도탑, 주춧돌, 우물, 토굴만 남았고,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동백나무숲의 운치가 일품이었다

입구에 있는 운암사는 우리나라 황동 불상 가운데 최고로 높은 약사여래 입상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장 컷 던 속리산 법주사 청동미륵대불보다 더 크다.


 

남해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숫 바위를 만났고, 광양에선 가장 큰 대불을 만났으니,

이번 여행길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것만 만난 셈인데, 좆도 타불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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