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인사동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자택에 들어 가신지가 일 년이 가까워 온다.
해마다 신년만 되면 가까운 분들을 인사동에 불러 모아 오찬회를 베풀었으나,
올해는 나오실 수가 없어 못한 것이다.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않아 문안드리고 싶었으나 그마저 사양하셨다.





지난 16일 모처럼 정영신씨의 주선으로 한정식선생 댁을 방문하게 됐다.

사모님과 함께 계셨는데, 한 때는 사모님이 더 위중하셨으나, 이젠 선생님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선생님의 구체적인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잠을 통 주무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술도 수면제도 통하지 않아, 용하다는 한의원마다 다녀보았으나 소용없었다고 하셨다.

소문난 대부분의 한의사나 침술사들이 엉터리라 믿을 수 없었단다.

의사의 치료나 처방을 받아보면 대개 그 속내가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침을 맞고 약을 먹어도 술수를 훤히 알아 믿지를 못하니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이라도, 믿는 환자는 나은 사람도 있었다는데...



 


외출도 멀리는 못하지만 가까운 곳은 조금씩 움직여 외식 정도는 드시러 가셨다.

인근의 고기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드시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다.

식사 도중, 댁으로 손님이 찾아온다는 전화가 왔는데 사전에 약속을 했다고 하셨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선생님의 북촌사진을 소장하기 위해 찾아 온 단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니, ‘예술종합상사 봄을 운영하는 문화기획가 이일우씨와

역사박물관학예사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준비해둔 견본 사진들을 보여주며, 모두 가져가 필요한 사진을 고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몇 장을 매입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머지 사진을 기증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평소에 선생님께서도 원고료 없이 주는 사진이나 사진 기증하는 문제는

어렵게 작업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나, 그 날은 묵묵부답이셨다.



 


추측컨대, 사진하는 제자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기 힘드셨거나,

아니면 오래 사지지 못한다고 생각되니 확실한 곳에 넘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자리를 떤 후 선생님께 간곡하게 부탁 말씀드렸다.

선생님! 절대 사진을 그냥 주지 마십시오. 힘들게 사는 후배들의 희망이 끊깁니다.”고 했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건 작가들의 삶이란 곤궁하기 짝이 없다.

예술계 전반의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작가는 사진가이고, 사진 중에서도 기록에 전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사진 수집은 가난한 다큐사진가들이 국가에서 보상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바늘구멍 같은 곳인데,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그 구멍마저 막힐까 걱정하는 것이다.



 


사실 국가 기록사업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돈과는 무관한 기록 사진 찍느라 가정이 파탄되거나 온갖 어려움을 겪는 사진가들이 많으나 정부에서 도와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와도 대개 버텨내지 못하고 전업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지만, 모든 걸 희생하며 찍어 온 결과물을 털도 뽑지 않고 통째로 먹겠다는 게 말이 될 소리냐?

어떻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사는 사진인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려 하는가?



 


이미지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나, 오래된 사진이나 기록적가치가 높은 사진은 차원이 다르다.

예술 보다 소중한 기록의 역사성을 하잖게 여기니, 어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수 많은 사진가들의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쓰레기더미에 쓸려나가도 누구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정부도 사회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평생 찍어 온 필름들이 집안의 애물단지처럼 굴러다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냥 사라지고 만다

이제 정부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처해야 되겠지만, 담당 공무원들도 실적 위주로 그냥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진인들도 개인적인 이해득실보다 다른 사진가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하기야! 사진을 전공한 사람조차도 사진인을 등쳐먹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대개 사진라이브러리 운영하는 사람들인데, 정직하게 계약대로 주는 경우는 더물다.

맡긴 사진의 판매된 곳을 알 수 없으니, 도용이 발각되어야 변명하며 돌려주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여지 것 사진라이브러리를 불신하여 한 번도 원고를 맡긴 적이 없으나, 8년 전 믿을 만한 사진후배의 부탁에 처음 주었다.

유로 크레온이란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며. 외국 포토에이전시와 연결되어 잘 팔릴 거라는 막연한 말을 믿었다.

전통문양이나 불교문화에 관한 팔릴만한 많은 사진들을 주었는데, 여지 것 감감소식이다.

물론, 팔 년동안 한 컷도 팔리지 않아 돈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전화는 물론 우편물 한 장 받은 적이 없다.

 

더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전모씨와 동업했는데이해관계로 전씨가 먼저 물러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유로 크레온자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오리무중이고, 두 사람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사업을 접었다면, 최소한 사정에 의해 폐업했다고 통보하며 원고라도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지 것 그의 체면을 보아 기다렸지만, 이젠 소송절차를 밟기로 했다.

나 혼자만의 피해가 아니라 많은 사진인들을 위해서라도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유로 크레온은 물론 다른 라이브러리에서도 피해를 본 사진가는 모두 나서자.

힘을 합쳐서 기어이 손해배상을 받아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사진인들의 원고를 사후에 한 곳에 기증하여 보관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자.

그 곳에서 다양한 원고를 관리 판매하여, 가난한 사진가들의 작업비나 사진인 복지에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

많은 사진가들이 참여하여 투명하게만 활용한다면 정부에서 활용하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고,

그 수익금으로 미래의 사진가들을 도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물론, 장터사진가 정영신씨도 평생의 기록물을 흔쾌히 기증하겠다고 답했지만,

원로사진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원고 기증을 권할 생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사진가들의 삶이 나아지고, 우리나라 사진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권익은 우리가 찾아야지,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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