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지키느냐? 편리하게 사느냐? 하는 것은 원칙과 현실에서 늘 갈등하는 문제다.

천만다행으로 편리하게 살 여건이 되지 않아 자연을 지키는 원칙을 따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뜻밖에 원칙을 어긴 이변이 생겨버렸다.

 

정선 만지산 집 마당에 레미콘 한 차를 부려놓은 사진이 정영신씨 핸드폰으로 보내 온 것이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보낸 것이라며 날더러 보라고 했다.

지난 번에 도로 포장하는 사람 있으면 움푹 파진 입구 좀 부탁 했다는데, 마당부터 덮어버린 것이다.

그 마당은 자기 내 주차장으로 사용해 레미콘 비용의 반은 자기가 부담하겠다는 거다.

 

누가 들어도 고맙다고해야 할 일이라 아무 소리 못하고 20만원을 보내 주기로 했단다.

레미콘 값만 아니라 콩크리트를 바닥에 골고루 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백 번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마당을 차지한 점령군 같았다.

이미 엎질러진 시멘트라 쓸어 담을 수도 없었다.

 

그 집은 25년 전 동강 환경캠프로 빌려 사용하던 집인데,

이년 여의 활동이 끝 난 후, 개인 작업을 위해 혼자 눌러 앉은 집이다.

밭으로 지정된 땅에 무허가로 지은 농가주택인데, 불편하긴 해도 사는 대는 지장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환경캠프에 함께 한 회원 한 사람이 그 집을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그 많은 짐을 어디로 끌고 간단 말인가?

부랴부랴 아내에게 부탁해 복에 없는 그 집을 사게 된 것이다.

당시 시세보다 비쌌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 밖에 없었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는 유랑민 체질인지라

아름다운 자연도 버릴 수 있겠다 싶어 돌아가신 어머님까지 그 곳에 묻어 두었다.

 

김대중정부에서 댐을 취소하는 결단을 내림에 따라 동강 환경운동도 끝나게 되었는데,

문제는 농민들의 보상이 이루어지며 모든 게 달라졌다.

주택건설비를 비롯해 축사나 버섯재배장 같은 농가지원이 실시되며,

오래된 농가주택은 모조리 사라지고 국적불명의 양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아마 그 때 주택이라고는 내가 사는 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뿐 아니라 집집마다 티브이 수상기가 들어와, 사는 방식이나 습관마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가슴 아픈 것은 순수하기 그지없었던 동내 인심이 서서히 변해갔다는 것이다.

 

산골에 살다보면 마당에 제초작업도 해야 되고 소나기라도 퍼 붓게 되면 땅도 질퍽거리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당에서 조차 흙을 밟을 수 없다면 굳이 산골에서 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옆집 차가 자주 들락거려 잡초도 자랄 틈이 없지만, 자주 머물지 못하니 불편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마당가에 코스모스가 너울거리고, 딸기가 조롱조롱 달리는 풍경도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여름 폭우 속에 만난 아름다운 장면도 이제 사진으로만 남았다.

 

집에 없는 샤워한다며 알몸을 드러낸 아내의 몸에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는데,

황토물이 발 위에 튀어 오르는 소란스러움과

무성하게 핀 맨드라미의 붉은 꽃술은 정염을 토하듯 매혹적이었다.

아쉽게도 보도검열에 걸려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이젠 그 장면도 서랍 속에 갇힌 풍경이 되고 말았다.

 

지난 19일 정선 집에 들려보니, 마당의 2/3는 콘크리트로 하얗게 덥혀있었다.

이젠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처지라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두 번째 레미콘 차가 도착했을 때는, 함께 도와 바닥을 고를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 탓하기는커녕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했으나,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만지산과의 인연을 끝내야 하는 것 인가?

정이 떨어지니, 모든 사물까지 싫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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