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ARTSPACE H'에서 열리는 전인경씨 ‘비욘드 만다라’전 개막식에 못 갔다.

포항의 포트폴리오 전과 날자가 겹쳐, 지난 3일 가기로 작정했는데,

페북에 올린 정영신씨의 전시리뷰를 본 이광수교수가 전인경씨 전시 보러 오겠다는 것이다.

물론 강제욱씨의 개인전과 수원사진축제의 사진특강으로 올 일은 있지만,

불교문화에 해박한 이교수의 관심에 전시가 더 보고 싶어졌다.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전시장으로 갔더니, 먼저 온 이교수가 전시장을 못 찾아 헤 메고 있었다.

난데없는 뒷길에서 나왔는데, 엄청 반가웠다.

몇일 전 포항 행사에서 만나 신나게 마셨지만, 좋은 사람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 반가운 것이다.






식사하러 갔는지, 전시장 문이 잠겨 있었지만, 이내 그녀를 만나 작품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전인경씨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광수 교수도 만다라 작업에 도움말을 주는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4년 전의 개인전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형식이야 비슷하지만, 세밀한 원들에 기가 서려 보였다.






여지 것 전인경씨가 인사동 모임이나 전시회 오프닝에 잘 나타나지 않아 섭섭하기도 했지만,

작업에 몰입했던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전인경씨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수행자가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마음의 중심을 찾는 내면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틀림없다.





초대전이라 대관료는 없겠지만, 도록이나 액자비로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두 점이라도 팔렸다니 다행이다 싶다.

이 불경기에 두 점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전시장에서 나와 이광수교수와 정영신씨는 ‘북서울미술관’으로 갔지만, 난 동자동으로 가야했다.

그 날이 밑반찬 타는 날이기도 하지만, 만날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로 돌아오다, 나도 전인경씨처럼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일 만드는 이 못 말리는 천성을 어찌할까나?
올 겨울만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동자동에 처박힐 것을 다짐해 본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포항 송도의 코모도호텔에서 이색적인 사진 장터가 열렸다.
올 해 처음으로 열린 포항 ‘사진인의 밤’은 사진가 안성용씨가 소장으로 있는

‘포항예술문화연구소’에서 기획 추진한 포트폴리오 특별전으로, 늦가을의 한가한 송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2017 사진의 섬, 송도’에는 사진전문 갤러리와 출판사를 비롯한 40여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한 사진 페어였는데,

주최 측에서 송도 코모도호텔 객실 40개를 빌려 40여명의 사진가들이 독자적인 포트폴리오 전시를 열도록 한 것이다,

아무튼, 서울의 사진가들과 지역사진가들을 연결해 주는 교두보로서 유능한 신인 발굴을 위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랄 뿐이다.






이번 포트폴리오 전에 구닥다리 늙은이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처럼 쪽방에서 벗어나 호텔에서 한 번 쉬어가라는 후배들의 배려 같았다.

덕분에 2박3일 동안 서울과 지방의 여러 사진인 들을 골고루 만나며, 또 다른 사진들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7일 오후 6시부터 열린 ‘사진인의 밤’ 개막식에서 들려 준 ‘포항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축제 분위기를 더 높였다.

호텔 주변을 뒤덮은 소나무의 솔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진행된 와인 파티도 인상적이었다.






부산의 이광수 교수를 비롯하여 서울에서 내려 온 사진가 김문호, 김남진, 양재문, 조성기, 곽명우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 등

반가운 분들을 수없이 만났는데, 대구에 사는 오래된 친구 은석이 까지 불렀으니 신바람 난 것이다.

난, 술이 취해 기분이 너무 좋아도 탈인 것은, 너무 오버하기 때문이다.

그 이튿날 술이 깨어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인데, 포항에서 인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장기봉, 김정혜 내외도 있었고,

친하지 않은 후배들도 많지 않았던가?






그 이튿 날의 술자리에서는 조심하느라 말을 삼간 채 술만 마셨더니, 술이 더 빨리 취했다.

이차로 한겨레 곽윤섭기자가 호텔 복도에 마련한 사진인 들의 대담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사실상, 명목은 전시하러 왔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 술 마시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나이에 더 알려져 전시 한들 어디에 쓸 것인가?






호텔 객실을 사진으로 장식한 이번 전시는 소나무 숲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객실에서 누리는 여유라 그 재미가 쏠쏠했으나,

객실을 지키기도 쉽지는 않았다. 좁은 방을 지키고 앉았으니 들어오던 관객도 걸음을 멈추기 일 수였고, 들어와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방을 비워두고 차 안에서 졸거나 바닷가를 거니는 등 쓸데없는데 시간을 보낸 것이다.

호텔에 컴퓨터가 있는 줄 알고 노트북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포트폴리오 특별전 참여 작가로는 김남진, 김문호, 김형섭, 문제남, 석재현, 안성용, 양재문, 유용예, 이수철, 이재갑, 이한구, 조성기씨 등의

알려 진 작가 외에도 강레아, 권순종, 김덕수, 김동진, 크리스탈, 나호권, 노영이, 박종효, 서경애, 손진국, 신병문, 오상칠, 유소피아, 이두순,

이인식, 이우노, 최흥태, 하정은씨 등 40여명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한 다양한 사진가들이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를 비롯하여

서울의 ‘갤러리 브레송’, ‘인덱스 갤러리’, ‘나우 갤러리’가 참여했고, 부산에서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리빈 갤러리’ 관계자도 참여했다. 



 


참여 작가인 김문호씨의 ‘온 더 로드’나 양재문씨의 ‘비천몽’ 등 기존에 발표된 포트폴리오는 더 이상 언급 할 필요도 없지만,

현대인들의 고독감을 다룬 문제남씨의 'Untitled', 자연 이미지를 압축시켜 보는 이의 심연을 건드리는 박종효씨의 '소소한 풀잎이야기‘

시내버스 안의 일상적 단편을 날카롭게 잡아낸 김동진씨의 포트폴리오가 눈에 띄었다.

리고 사회적 시대성이나 역사성이 내포된 다큐멘터리사진보다, 아름다운 그림 같이 미를 추구하는 사진이 많아 아쉬운 감도 있었다.





‘제1회 사진의 섬 송도’ 포토폴리오전시는 무엇보다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다.

첫 호텔 사진 페어라는 점을 잘 활용하였고, 신인들과 기성작가들을 연결시키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그러나 서둘러 시작된 행사라 문제점도 여럿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홍보가 부족하여 타지의 사진가들이 잘 몰랐다는 점이다.

둘째는 참여 작가들과 주최측간의 행사 진행에 대한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 방에 알맞은 디스프레이를 할 수 있도록,

개인에게 배치될 방의 구조를 사전에 알려주었어야 했다. 나 역시 전시 할 사진을 준비하라는 연락은 받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다.

지난 번 전시에 걸었던 사진들과 미발표 작이 대부분인 ‘장터 사람들’ 포트폴리오를 챙겨 갔으나, 디피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처음 생각처럼 포트폴리오만 책상위에 내 놓았으면 될 걸, 관람객들이 뒤적거려 사진이 망가질 것을 우려하여

이 것 저 것 오래된 사진들을 펼쳐 놓은 것이다. 옛 속담처럼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많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한 곳에 모아두고 볼 수 있는 별도의 큰 방도 하나 쯤 있었으면 한다.

가난한 사진가들의 참가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참관자들도 효율적으로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포트폴리오 전시는 방에 사진을 주렁주렁 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번 포트폴리오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가난한 사진인 들이 무리하게 많은 돈 들여 개인전을 여는 것보다

포토폴리오전으로 데뷔할 수 있는 풍토 조성과 그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전시된 객실에는 침대에도 사진이 진열되었고, 소나무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틀을 비롯해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사진이 걸렸다.

창문을 통해 보여주는 바깥 풍경과의 대비 또한 흥미로웠으나, 일부 객실은 조명이 너무 어두워 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도 남겼다.

사진을 살피다 그만 보조조명으로 설치한 스탠드를 걷어차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조도를 좀 높일 수 있는 방법도 강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29일 오후3시부터 호텔 1층 로비에서 열린 사진경매에는 출품작 30여점이 경매에 붙여졌다.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사고파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좀처럼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경매 진행자가 좋은 작품들을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러 차례 외쳐댔지만, 사진 보는 안목이 부족한지,

나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의 비교적 싼 가격에 낙찰되긴 했지만, 그 중 12점이 판매되는 성과도 있었다.


나 역시 경매에 한 점이라도 내놓으라고 종용받았지만, 사람사진을 쉽게 살 사람도 없겠지만, 자칫 아는 분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어 사양했다.
또한 살만한 사진의 대부분이 에디션 넘버를 다섯 장으로 한정해 놓았기에 추가 프린트가 불가능한 사진이 많았다.

그리고 전지 규격의 사진 한 장에 3백만원에 팔았는데, 경매로 싼 가격에 판다면 먼저 구입한 분들에게 도리가 아닌 것이다.






아무튼, 포항에서 처음으로 열린 ‘사진의 섬, 송도’ 포트폴리오 전시가 우리나라 포트폴리오 전시의 주축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전국에 흩어진 신진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신인발굴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길 바라며,

주최 측과 참여사진가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사진, 글 / 조문호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서 꼼짝 않고 앉아 놀았더니 허리에 문제가 생겨 생각지도 않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지난 10일 오후6시에는 숭례문에서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몇 분들과 술 한 잔하기로 몇 일전부터 약속해 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못가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많은 분들에게 걱정 끼쳐 송구스럽지만, 정영신씨가 날 감금시켰다고 페북에 올려, 술자리가 병원부근으로 변경되었단다.

덕분에 반가운 분들과 마음껏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더니, 아픈 허리 통증까지 사라져버렸다.

 

이 날은 오후2시 무렵부터 병문안이 이어졌다. 물리치료를 받는 중에 인사동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페북하는 혜영씨에게 들었다고 했다. 장사 준비할 시간에 찾아주어 송구스러웠지만 어쩌랴!

민폐이긴 하지만 정 나눌 수 있는 자리라 고맙고 또 고마웠다.

가고나니 사진가 김수길씨와 하형우씨가 차례대로 찾아주어, 오랜만에 얼굴 보며 희희낙락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가운 분을 만났으면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환경이 변하니 찍는 걸 잠깐 잊어버린 것이.

하형우씨와 인근 공원에 가서야 생각나 카메라를 끄집어냈다.





 

오후6시 무렵에는 반가운 분들이 때 거리로 몰려왔다.

부산의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갤러리 브레송김남진 관장, 사진가 김문호, 강제욱씨 등인데,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부근의 먹거리를 꽤고 있는 정영신씨의 안내로 오리장터로 들어갔다.

허리가 불편하니 오리걸음으로 나와도 재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자리 대화는 이광수씨와 이규상씨가 만나면 죽인. 요즘은 이규상씨가 좀 자제하는 편이지만, 코메디 수준이다.

세상에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들어 점잖게 살아야 한다지만,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점잖아지니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다.

이 날은 이광수교수의 구라로 시종일관 희희낙락했다. 폐북에 올라오는 글도 그렇지만,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다.

학자로서의 빈틈없는 논리를 바탕으로 시정잡배들이나 즐겨 쓰는 막말에 속이 다 후련하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싸움꾼이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악바리다,

이미 SNS를 휘저어 그 영향력은 왠 만한 언론 빰 칠 정도다. 그동안 실검 1위에 오른 건만 몇 차례나 된다,

대표적인 것이 고 최민식 선생의 사진상 문재 제기, 더불어 민주당의 사표 론에 따른 문재인 저주론 등을 펼쳤는데,

끈질긴 공격 끝에 결국 다 손들게 했다. 그래서 정의를 향한 혁명가 기질의 이광수씨를 존경하는 것이다.

난, 부산외대 교수라 부르지 않고, 교주님으로 따른다.


그런 분이 멀리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 주셨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환자복 입은 체 졸라 빨아버렸다.

교주님의 그침 없이 쏟아내는 구라에 얼마나 웃었던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를 않더라.

이차로 '새벽'이한 맥주집에 가서는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 주제가도 불러버렸다.



 


그런데 사진가 강제욱씨가 이광수교수의 광주대동고등학교 후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정도면 대동고등학교도 명문이다,

서당 훈장 같은 김문호씨의 덕담이나 광대같은 이규상씨의 유모어가 뒤섞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의미 있는 일 하나 하기로 합의했다,

이광수씨의 제안으로 사진단체들이 뒷짐 지고 있는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단체결성에 앞서 사진저작권문제의 구심점을 이규상씨가 운영하는 '눈밫출판사에 두기로 했다.

사진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서로 협력해 대처하기로 했다. 사진가의 권익은 사진가가 지켜야 하니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란다.

 

역시 교주님이 나타나면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도 만든다.

사진가들이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런데 뱉고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네...

 

사진, / 조문호






































 

 

 

 

 






이 삭막하고 추운 세상에, 따스한 봄 내 살살 풍기는 사진전 하나 열리고 있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양승우 마오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다.







지난 16일 사진전 열림식에 갔는데, 전시장을 마치 화사한 신방처럼 꾸며놓았더라.
양승우씨가 직접 나서, 연분홍 빛깔로 전시장을 다시 단장 했단다.
전시장 입구 사진에는 아내를 알고 처음으로 벚꽃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사진가 양승우의 청춘고백도 적혀 있었다.







찍은 사람도 좋지만,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사랑, 사랑, 사랑, 쉼 없이 말들은 하지만, 이보다 구체적인 사랑은 없다.
백 마디의 미사여구나 수많은 사랑의 시들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장난기가 하나도 정제되지 않은 채, 살아 날 것으로 꿈틀거렸다.
계산하지 않고, 그냥 둘이서 사랑하며 놀며 찍은 것이다.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은 놀이에 가깝다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글을 옮겨왔다.


“지금 하는 이 전시는 바로 신혼 생활 첫 3년 핑크빛 나날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기록이 아니고 놀이의 흔적이다.

사랑놀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가슴 떨리고 가슴 저미는 그 사랑놀이 말이다.

사진은 이런 게 좋다. 글같이 무겁지 않아, 가벼워서 좋다.

굳이 예술의 창의성을 쥐어짜면서 작품의 경지에 올라간 것들도 있으나

이렇게 둘이 놀면서 가볍게 찍다가 예술의 경지에 올라간 것도 있다.

이건 사진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작품의 경지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놀면서 안고 만지고 찍어주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이 과연 있을까?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사진가 김문호씨는 전시를 보고나서 가슴 한켠에 늘 남아있는 그리움을 뒤챘다며,

“수채화로 그려낸 쌉싸름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

잘 다듬어진 일본의 하이쿠 한 수를 읽는 것 같은 담백함..”이라 적고 있다.







이런 저런 가식 없이 살아가는 해맑은 모습 속에 눈에 띄는 풍경 사진 한 장 있었다.
담장 밖으로 붉은 꽃들이 떨어진 장면인데, 많은 이야기가 담긴 담백한 시처럼 느껴졌다.

양승우는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인생의 꽃은 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사진 한 장으로 사랑을 다 담았으니, 이게 시가 아니고 뭐겠는가?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에서 찾은 가치라 여운이 길었다.






그날 열림식에 너무 늦게 갔더니, 전시장에는 양승우, 마오 부부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과 정영신, 곽명우씨 등 몇 분만 남아 있어, 사진들은 꼼꼼히 볼 수 있었다.





뒤풀이에서 눈빛출판사 이규상, 사진비평가 이광수, 사진가 김문호, 김보섭, 엄상빈, 정진호,

이정환, 석재현, 성남훈, 박찬호, 고정남, 남 준, 한금선, 최근모, 박신흥, 안세홍, 안해룡씨 등

많은 사진인들을 만나 두 내외의 알콩달콩 깨 쏟아지는 사진전을 축하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사진전은 25일까지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눈빛출판사’에서 양승우 마오 부부의 행복한 일기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사진집(156쪽 / 값 23,000원)도 출판되었다





사진가 양승우 마오부부 /사진 정영신






























































사진 / 김문호























































[브레인 미디어 / 스크랩]

 

브레송 기획전 : 사진인을 찿아서 12 / 조문호


사진작가 조문호는 사진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 자신이 사진가로서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는 주로 아는 사람을 찍어왔다. 이런 작업이 사회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개인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 조문호, 인사동사람들(천상병),1983.

 

하지만 그에게는 그 사람을 모르면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뿌리박혀 있다. 그는 찍고자 하는 대상과 함께 눌러 붙어 살며 찍어왔다. 그들을 알려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 인사동 예술가들을 찍을 때 조문호 작가는 인사동의 허름한 건물 옥탑방을 얻어 살았다. 

 

▲ 조문호, 청량리588, 1985.

 

 

성노동자들을 찍을 때는 윤락가로 들어갔으며,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으려 정선 귤암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얻은 조문호의 사진은 어떤 것일까? 사진비평가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문호 사진이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사진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마 이구동성으로, ‘따뜻하다라고 하지 않을까? 청량리 588은 그 따뜻함이 가장 잘 드러난, 사진가 조문호의 첫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청량리 588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그곳에서 아예 눌러 붙어 살면서 작업한 서울시 전농동 홍등가에 대한 기록이다. 몸 파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데도,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느낌이 아련해진다. 언젠가 만난 적 있었던 듯 한, 그 아련한 우리들의 과거 그 시절에 내 친구였고 내 누이였던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청량리 588 안에서 사진가 조문호는 그 여인들의 몸 파는 행위를 보지 않았고 그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따뜻해서가 아니고 그에게 사진을 찍히는 그 대상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따뜻해진 것은 사진가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따뜻한 사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메워지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가 조문호의 사진에는 겉모습이 찍히는 것이 아니고, 속마음이 찍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들은 그 마음을 보고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 조문호, 두메산골사람들, 2000.

 

 

조문호 작가는 올 추석 무렵 홈리스들이 사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으로 들어갔다. 그가 찍는 사람들은 모두가 권력과 재력에 밀려 난 서민들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러 사회적 약자들만 찾은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더 순수하고 인정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돈이 사람을 망치는 것을 일찍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그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스스로 택한 작업을 한 번도 힘들다거나 후회한 적은 없다. 평소 일로 생각하지 않고 놀이로 여겼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일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 조문호, 동자동 사람들, 2016.

 

하지만 그 또한 가장이기에 가족에게는 미안함이 남는다.

 

그들의 삶을 체험하지 않고는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오랜 고집을 따랐지만, 한 가정을 지켜가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고고한 예술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회의 한 기록으로 충실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족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단지 그 가치 판단은 먼 후대에 맡길 뿐이다. 이 약자들의 작은 기록이 보석처럼 빛나는 세월이 분명 올 것이라는 한 가닥 기대가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문호 작가의 사진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20161월부터 12월까지 열 두 차례에 걸쳐 전시된 사진인 찾아서브레송 기획전 마지막 작가로 선정된 조문호의 '人本' 사진이 “‘사람이다조문호 이라는 제목으로 10()부터 20()까지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이 사진전은 조문호 작가의 전 작품을 골고루 보여주어 그의 사진 세계를 조명한다.

 

이 기획전은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이 땅의 숨겨진 고수를 찾는 놀이이다.”

 

■ 전시개요

브레송 기획전 : 사진인을 찿아서 12 / 조문호

전시제목 : “사람이다조문호

전시일시 : 20161210()- 1220()

전시장소 : 갤러리 브레송 (충무로) 02-2269-2613

개막일시 : 20161210() 오후5


 

[브레인 미디어]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조문호

 

 

 

 

 



 

지난 11월24일 오후1시 무렵, ‘갤러리 브레송’으로 이광수교수를 만나러 갔다.
사흘 전, 김문호씨의 ‘사진인을 찾아서’기획전 개막식에서,

김남진관장이 나를 마지막 작가로 지목해 인터뷰 하러 올라 오셨는데,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길바닥에 돈 뿌려가며, 연이은 서울 나들이를 하셨는데, 미처 인터뷰에 필요한 사진 파일을 보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전시 결정에 정신을 못 차려, 사진을 선택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약속장소인 ‘갤러리 브레송’에 갔더니, 전시중인 사진가 김문호씨와 ‘한겨레‘ 곽윤섭기자도 나와 있었고,
뒤늦게는 울산의 산신령이란 분이 나타나서, ‘사진에게 위로받다’라는 사진집도 한 권 주었다,

이광수교수께서 여러 가지 물어보았으나, 사진보다 살아 온 내력을 주로 물었다.
그동안 어떠한 사진을 찍은 것이야 대략 알겠지만, 자료가 없으니 사진에 대하여 물어 볼 수가 없었던 게다.
그러면 나라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 주어야 할텐데,

술 마시지 않으면 주변머리가 없어 꾸어다 놓은 보리쌀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에서 상대방을 김빠지게 만들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은 지레 겁먹어, 가급적 사양한다.

아무튼, 이 선생께서 널리 양해하시어, 매서운 비판으로 꾸짖어 주었으면 좋겠다.
대신, 글 쓰다 의문점이 생길 땐 연락주시면, 충실히 답해 드리겠다.

그리고, 한 가지 자문 받고 싶은 것도 있다.
전시제목을 ‘사람중심’으로 생각하다, “人本主義‘로 바꾸려는데, 선생께서 생각하는 적절한 제목은 없으신지?
그리고 김관장 께서는 사진들을 이 것 저 것 다 걸고 싶어 하지만, 모든 걸 정영신씨께 일임해 버렸다.
그러나 나름으로 최선은 다할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On the Road’


사진가 김문호씨의 ‘성시점경(盛市點景)’전이 지난 21일 오후6시 30분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개막식에는 사진가 김문호씨를 비롯하여 비평가 이광수교수, 김남진 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가 엄상빈,

강제욱, 이한구, 남 준, 곽명우, 윤길중, 정영신, 김 원, 한금선, 박병문, 이석필, 이주영, 아리미, 김자손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모여 들었고, 미술평론가 곽대원씨와 행위예술가 타이거백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에 사진가들이 많지만, 김문호씨 처럼 깊이 생각하며 작업하는 다큐 사진가는 그리 흔치않다.

이십여 년 전에 ‘사진집단 사실’ 동인으로 함께 할 때부터 그의 사진 작업에 대한 진지함은 알고 있었지만,

작년에 열었던 ‘wasteland’전에서 결정적인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문명비판에 대한 시각이 압도적이다,
그가 발표했던 ‘On the Road’의 사유는 대상에 대한 그의 고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변혁에 눈 돌릴 때, 그는 자신의 일상을 성찰한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대문명의 비정함을 텅 빈 도로와 자동차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으로,

현대 문명에 물들어가는 도시인들의 일상을 들추어 낸 것이었다.

한 때 찍었던 초상 사진들이 인간에 대한 애정의 눈길이었다면 ‘온더 로드’는 인간이 만든 문명에 대한 사유로 넓혀졌고,

그 다음에 보여 준 ‘Shadow’에서 제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 사실로 바꾼 대표적인 사진가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진가 김문호씨의 관심적 대상은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고, 사실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로 점철된다.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미지를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나 미학적 형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이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사유가 그만큼 깊은 사진가를 여지 것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 우리나라 대표적 사진가가 변방으로 밀려다니다, 이제 사 조명 받는 우리나라 사진판의 현실이 너무 한심스럽다.

어쩌면 더러운 사진판에 휩쓸리지 않았기에 그가 온전히 살아남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부족한 식견으로는 아무리 나발 불어도 사족에 불과해,

정확하게 김문호씨의 사진을 읽어 낸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평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대체한다,

“인간이 소외된 도시 풍경, 인간이 사라져버린 현대 문명, 그 위에서 사진은 더 이상 객관성을 담보하는 다큐멘터리로 존재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진가 김문호의 인간과 문명에 대한 사진 담론이다. 2015년 전시한 <wasteland>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이미지로 말하는 인간에 대한 담론. 인간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그것을 이미지로도 담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세상. 그런 문명사적 맥락에서 사진가 김문호는 사진이 사실에 대한 사유 재현을 위한 매체로서 매우 적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가 김문호는 이번에는 도시의 기호화 된 상징에 주목한다. 미완성작 <인더시티>는 특별한 내러티브로 구성되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렇지만 또 다시 사실과 사유의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는 표상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중이다.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건물들이 서서 만들어내는 풍경,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사실로 기호화 되어 존재한다. 아파트는 거대한 산 앞에 자리하여 너무나 떳떳하게 자연의 풍경을 바꾸어버리면서 그것이 자연의 위치에 서버렸다. 광고판에 그려진 이미지는 비실재지만, 그것보다 더 실재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다 획일화 되어 버린 판타지의 세계, 사진가 김문호는 이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천착해야 할 과제를 여기에 두는 중이다."


30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사진인이라면 꼭 한 번 보아야 할 전시다.

장애인 가족사진 2005


'wasteland' 팽목항2015


'wasteland' 매향리2015


'shadow'2013-2015

'인더시티'2013-2016


그런데, 김문호씨 전시에 들려 큰 낭패를 당했다.


김남진 관장과의 오래 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죄로 ‘브레송’ 가기를 꺼려했지만,

김문호씨는 워낙 좋아하는 사진가라 들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날 발목 잡힌 것이다.

‘사진가를 찿아서’란 브레송 기획전 마지막 주자로 정했다며 여러 사람 앞에서 공표해 버린 것이다.


여지 것 사양해 온 것은 쟁쟁한 젊은 사진가들도 많은데, 늙은이가 끼어 더는 것도 그렇지만, 마음 편히 사진전을 열 형편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름정도 남겨두고 결정한 것은 무리였다. 

전시비용도 비용이지만, 전 작품을 보여 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있는 사진으로 전시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옛날 필름을 스캔 받아 수정할 일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죄 없는 정영신씨가 모든 어려움을 뒤집어쓰게 되었는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자동에 할 일도 많은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낭패를 당하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 듯이, 한 번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없다.
오는 12월 10일이 마지막 매 맞는 날이니, 부디 오셔서 힘껏 두들겨 주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9월26일

▲조문호 사진가

부정심사 의혹 매듭짓기 위한 토론회 열렸으나 사진인들 분노만 사

일 년 넘게 끌어 온 최민식사진상 부정심사 의혹 문제를 매듭 짓기 위한 “최민식사진상을 말하다”라는 토론회가 열렸으나, 매듭은커녕 사진인들의 분노만 샀다.

다큐사진가 석재현씨의 사회아래, 이상일 당시 운영위원장과 정주하 심사위원장, 그리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 온 이광수 사진비평가와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그런데 수상작에 반대의견을 낸 송수정씨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이갑철씨는 1회 수상자로서 2회 수상자 최광호씨와 아주 가까운 사이다. 그 심사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불러내어 의혹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제2회 최민식사진상을 최광호씨에게 주기 위해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가 공모요강까지 변칙적으로 바꾸어가며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이 드러났다. 공모요강에서 인본주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을 지향한다는 공모 목표를 삭제했고 '미발표작'으로 제한한 규정도 삭제했다. 이 두 가지를 삭제하고도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았다.

최광호씨 사진은 기 발표작인데다,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과는 전혀 동 떨어졌으니, 어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지 않겠는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볼 수 없는 최광호씨의 ‘천제’라는 출품작에 대한 평가는 잘 알려진 사실처럼, 내세울 만한 사진이 아니다. 심지어 ‘천제’라는 출품작 제목의 한자까지 틀려 ‘천제’에 대한 정확한 뜻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샀다. 이처럼 문제투성이 작품을 밀어 붙인 것이 부정심사가 아니고 도대체 무어라 말인가?

당시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는 최민식상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최민식 사진 철학이나 심사 기준보다 명망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했다. 작품보다 출품자의 유명세가 권위를 세워준다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어디 있나? 그래서 가난한 친구인 최광호씨를 지지했다는 이상일씨 발언 자체가 부정심사임을 스스로 밝힌 처사다. 그리고 이상일씨 스스로 독주한 사실들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반성이나 사죄의 기색은커녕, 야유 섞인 웃음만 흘렸다.

여러 사람들이 사과를 권했으나, 끝까지 변명과 자기자랑만 하다 사과 한 마디 없이 끝냈다.

이것은 출품자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사진인을 능멸한 처사다. 오죽하면 이 사진상의 문제를 제기한 이광수교수가 사진인들에게 대신 사과했을까?

사실, ‘팔이 안으로 굽 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 문제에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공모전이나 각종 시상의 운영시스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훌륭한 원로나 중진에겐 돈보다 명예를, 열심히 현장에 매달리는 가난한 작가에게는 조그만 지원금이라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사진상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시급했던 사진상이라, 이 문제의 핵심인 이상일씨의 사과로 화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먼저, 우리나라 사진판에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관행은 원로사진가들이 먼저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리들도 선생들께서 만들어 놓은 구태를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아, 돌려 먹은 것이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진작에 제자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이런 공론의 자리라도 나오시어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하기야,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냐마는, 그래도 나서야 했다. 대선배로서 사진계 발전에 앞서, 사회정의를 위해...

이제 시상주체였던 ‘협성문화재단’도 ‘얼씨구나’하며 '최민식사진상' 폐지로 막을 내렸으니, 저승에 계신 최민식 선생을 만나 뵐 면목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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