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이 찍힌 70년대에는 연탄이 추운 겨울을 나게 하는 유일한 월동대책이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탄 수레를 끌고 미는 장면에서
고달픈 서민들의 삶이 한 장의 그림처럼 묘사되어, 아련한 추억을 끌어들인다.
예전에는 한겨울을 나려면 연탄을 들이고, 김장하는 게 집안의 큰 일이었다.
때로는 연탄이 부족하여, 마을에 연탄 차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시간 맞추어 연탄가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잘 못 꺼트렸다간 연기깨나 뒤집어썼다.
요즘에야 번개탄이라도 있지만, 그 때는 장작이나 숯불에 붙였다.
유독 나에게 연탄은 가슴 아픈 기억이 더 많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다. 창녕 영산의 고향집은 연탄아궁이가 길 쪽에 나 있었는데,
얼굴이 연탄불에 새까맣게 타 죽은 여자걸인을 새벽에 발견한 것이다.
추운 겨울밤에 불 쬐며 졸다 연탄가스에 질식해 화덕에 얼굴을 묻은 것 같았다.
그 끔직한 기억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부산에 가 계셨던 형님 두 분이 하숙방에서 연탄까스에 질식해 돌아가신 것이다.
연탄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그러나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무서운 불덩이와 다들 동거동락하며 살았다.
그리고 채탄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광부들의 목숨을 앗아갔던가.
서울로 상경해서는 웃지 못 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천상병선생께서 돌아가시어 조의금 받은 돈뭉치를 할머니께서 연탄아궁이에 숨겨놓았는데,
밤 늦게 돌아오신 목여사님이 방 데우려 불을 붙이다, 고스란히 재가 되어버린 적도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어, 그 재를 고스란히 한국은행에 가져가 일부 되돌려 받았다지만,
연탄과 관련된 별의 별일들이 많았다.
오늘따라 발갛게 타오르는 연탄불이 그리워진다.
70년대 ‘월동전쟁’이란 제목으로 나경택 기자가 발표한 사진을 보도사진 연감에서 옮겼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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