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로 살았던 아버지의 흔적을 20여 년 간 기록해 온 사진가 박병문씨의 ‘선탄부’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지하 갱도에서 일하는 광부가아니라, 늘 주인공에 가려왔던 ‘선탄부’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인명사고로 부정 탄다며, 여성을 금기시했던 탄광이었지만, 

남편 잃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탄을 고르는 ‘선탄부’였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입을 가린 분진 마스크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그들만의 검은 공간은 마치 지옥도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침울하게 했다.

꿀맛의 휴식시간을 즐기며 잠자거나 나른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부터

벨트 따라 굴러가는 탄을 고르는 손길이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는 등,

삶의 진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진들이 오래된 흑백영화 돌아가듯 전시장에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분진마스크를 쓴 채 정면으로 바라 본 선탄부의 강한 눈빛이 시선을 묶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사는 게 이런 것이야. 집에 가면 자식들이 기다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메라로 그녀의 얼굴을 잘라내었다.


아마 힘든 순간순간마다 아른거리는 자식들 생각에 모든 것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역사는 어머니의 역사다.

표 나지 않는 집안일을 다 안으시며, 묵묵히 버텨 온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이 가능했을까.

그 숭고한 진리를 선탄부의 눈길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난, 장막에 가려진 삶이나 소외된 삶의 기록이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박병문의 사진은 아버지의 흔적에서 비롯되어 다큐멘터리 사진 최고의 덕목을 건져 올린 셈이다.






지난 20일 정오 무렵 들렸는데, 전시장에는 사진가 박병문씨와 아내 손정애씨가 손님을 맞았고,

사무실에는 김난진 관장이 일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때라 밥 먹으러가자는데 좀 난감했다.

집에서 빵을 먹고 나왔기 때문이다. 김관장이 ‘송죽 죽집‘을 소개해 이야기나 들을까하고 따라 나섰다.






박병문씨 말로는 어제 원로 사진가 윤주영선생께서 오셨는데,

사진을 둘러보다, 선탄부들이 사진 보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 사진은 선생께서 찍은 사진이라 말씀하셨단다.

아마 박병문씨가 아버지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을 무렵, 윤주영 선생께서도 다녀가셨던 모양이었다.

죽 집에 가서는 전복죽을 시켜주었다. 그것도 짜장면 세 그릇 값에 해당하는 죽을...
너무 황송해 “이 보약거튼 죽 묵고 거시기 근들거리마 우짜지 예” 그랬더니,

손여사의 눈빛은 “그건 니 사정이야”하는 것 같았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눈빛출판사'에서 박병문 네 번째 사진집 선탄부가 나왔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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