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는데, 얼굴 한 번 보자는 전화였다.
요즘 통풍이 도져 다리가 절리지만, 오랜만이라 ‘유목민’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는 시인 이승철, 김이하씨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씨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는데, 골목을 지나치는 곽대원씨를 만나기도 했다. 

술자리에 앉았지만, 술을 마시지 못해 안주만 축내야 했다.
조준영씨가 "집에 책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서 보관한다"는 말을 꺼냈다.
정년퇴직하면 인문학강좌도 열며 조그만 마을도서관하는 게 꿈이란다.
캐나다에 교환교수로 갔다 귀국할 때도, 헌 책만 잔득 사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용하던 자동차까지 가져 오는데,

돈 되는 물건은 제켜두고 책만 가져 온 것이다.

그때 검색대에서 했던, 공항직원의 말이 재미있다. “건강하게 사시네요”

뒤늦게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과 무나미씨도 오셨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일, 해 바뀌고 처음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싸늘한 돌덩이 위에 잠든 노숙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화지업사’ 자리엔 또 다른 대형건물이 들어 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거리는, 힘든 사람이나 인사동이 변하는 것엔 관심없는 듯 분주했다.




“인사동사람들”에 들리니, 강 민선생님 혼자 쓸쓸이 계셨다.
선생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든 없던, 인사동에 나와야 마음이 편한 분이다.
양촌리 커피 한 잔에 시름 달래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활철씨가 반갑게 맞았으나, 유작전 개막으로 오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복분자 한 잔 마시고 일어나려 했으나, 주머니가 비어 난감했다.
마침, 안쪽에 김명성씨와 이상훈씨가 술 자리에 있어 떠넘겨 버렸다.




그렇게 새해의 인사동은 쓸쓸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새해들어 시작한 '문화알림방' 일거리가 하나 둘 들어오고 있다.
그 일에 신경써느라, 이 이야기도 늦었는데, 이젠 예전처럼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작가를 인터뷰하여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하는 일에서부터, 행사장 촬영 등
잡다한 일에 메여, 찍어 놓은 사진들도 정리 못하고 있다. 늙어 철든 건지, 노망든 건지...
하다보면 요령이 붙겠지만, 책임감에 섣불리 다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탁받은 행사의 성공 여부가 바로 ‘문화알림방’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볼 작정이다.

2016,1,4 /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 박권수 유작전 뒤풀이에서 줄창 나게 마셨다.
밤늦은 무렵, 인사동거리는 무명가수의 노래 소리가 처량하게 퍼지더라.

마침, 길거리에서 하태웅씨를 만났다.
술 취한 채현국선생이 걱정되어, 따라 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계셨는데, 너무 반가워 술김에 춤까지 췄다.
그 날 구로에서 강연이 있었다는데, 일찍부터 한 잔 하신모양이었다.

선생님께서 술이 취하면, 덜 취하기 위해 길거리나 술집을 돌아다니신다.
가게에서 산 물건을 반가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하고,
때론 주머니까지 털어 주시는 분이다.

가게에서 산 그릇을 아내에게 선물하며, ‘유목민’에 가 있으라는 것이다.
‘유목민’에는 장경호, 노광래, 이성용, 백남희, 이영기, 이정아, 임경일, 이회종씨 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느닷없이 노광래씨가 신사임당 지폐 한 장을 꺼내며, 채현국선생님께서 줘랬다는 것이다.
내가올지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받기가 좀 그랬다.
전해주는 사람도 개털인지라, 지폐를 반으로 찢어 한 장 씩 나누어가졌다.
나중에 노광래씨가 모아 담배를 사왔지만..

좀 있으니 박인식씨에게 체포당한 김명성씨가 '유목민' 골목을 지나가더라.
‘로마네꽁띠’로 가는 모양인데, 술이 취해 가방을 어디 뒀는지 두리번거렸다.
취객들이 지나치는 밤늦은 인사동 골목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뒤늦게 하태웅씨가 채현국 선생님을 모시고 나타났다.
그런데 채선생님을 수행하는 이회종씨가 채선생님 면전에서,
준 돈을 찢었다며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꼼짝없이 하사금을 모독한 불경죄에 걸린 것이다.

이 또한 권력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명사로서의 채선생님보다, 그냥 예전의 선생님이 그립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아내 생일을 맞아, 전 후 사흘을 코가 비틀어지게 마셨다.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생일이 하루 차이라, 근 10년 동안 생일잔치를 같이 해왔다.
생일 하루 전부터 인사동 ‘유목민’에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인사동 꼴통들의 송년회와 겹쳐, 많은 사람들이 어울린 술 잔치였다.

그 이튿날, 진짜 생일에는 깜빡 잊어버렸다.
도서관에서 늦게 들어 온 아내의 냉냉한 표정에 화들짝 놀라, ‘이마트’로 뛰쳐나갔다.
사온 케익을 안주삼아 오붓한 축하연을 벌인다는 게, 너무 과했다.

이제 끝났나 싶었으나, 다음 날은 처제와 동서가 술과 안주를 사들고 쳐들어왔다.
메기 매운탕의 시원한 안주는 술이 술을 마시게 했다.
취한 김에 노래방까지 진출해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완전히 녹초 되었다.

그 이틑 날 온 종일 이불 밑에서 끙끙대고 있는데, 아침부터 이명희씨 전화가 왔다.
강민 선생님 뵈러 인사동 나가는데, 같이 점심 먹자는 내용이었다.
아내더러 전하랬다. “조가는 저승길 문턱에서 헤맨다고...”

원님 덕에 나팔은 잘 불었으나, 그 지나친 대가를 톡톡히 치룬 생일잔치였다.


사진,글 / 조문호












“6FIGURATION”전시뒤풀이가 인사동 유목민에서 있었다.

 

김진열,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 장경호, 정복수씨 등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하태웅, 배성일씨가 먼저 자리 잡았다.

뒤늦게 미술 평론하는 유근오씨 등 반가운 분들이 나타났다. 건축가 임태종씨와 공윤희씨, 풍기에서 소설 쓰는 배평모, 구중관씨, 삼천포에서 도자기 굽는 박영현씨, 이회종, 이도흠 교수, 최혁배 변호사, 사진가 정영신씨 등 많은 분들과 여흥을 즐겼다.


그런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니, 진득하게 마실 수가 없더라. 술판은 뭉쳐야 되고, 시끄러워야 술 맛 나는데...

 

사진, / 조문호







































 

 

수요일을 맞은 지난 3일의 인사동은 인파가 평소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메르스란 전염병 여파로 중국관광객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고, 서양인 관광객들은 더러 보였다.

그 외는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러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후6시 무렵, 예기치 않게 아내 정영신과 ‘아라아트’ 김명성씨를 거리에서 만났고,

‘유목민’으로 가다 도화가 오만철씨와 김은경씨 일행도 보았다.

‘유목민’에는 제주 김상철씨와 경주의 정비파씨가 먼저 와 있었는데,

뒤늦게 이상훈씨와 전인미씨가 찾아와  술자리에 함께 어울렸다.

 

목판화가인 정비파씨는 안면은 많았으나 그동안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는데,

휴대폰으로 보여 준 그의 작품 수준이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는 7월 중순부터 열릴 ‘아라아트’ 초대전이 벌써 기다려진다.

 

사진,글 / 조문호

 

 

 

 

 

 

 

 

 

 

 

 

 

 

 

 

 

 

 

 

 

 

 

 

 

 

 

 

 

 

 

 

 

 

 

오랜만에 시인 강 민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21일 오후1시경 ’하누소‘에서 만나 이행자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했다.
강민 선생께서는 한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했으나, 이젠 한결 나아졌다고 하셨다.
그날은 가난한 이행자 시인께서 밥값 술값을 계산했는데, 신발마저 예뻤다.

오후6시에는 조준영시인과의 만찬약속이 있었다.
정영신과 함께 한 ‘유목민’ 옆자리에는 노현덕, 정기영씨의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뜻밖에도 조해인시인 내외가 나타나 함께 어울렸다.

조해인씨는 명상에 관한 글을 탈고해 ‘해냄출판사’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상병시인의 근거지를 빨리 인사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천상병문학상'의 선정기준도 작품의 우월성에만 한정하지 말고,
천선생의 시 색깔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인의 친구 분들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등 돌린 의정부행사보다는
생전 선생의 삶과 창작의 근거지였던 인사동에서 주관할 것을 모두들 바라고 있다.
천상병시인을 내세워서라도 인사동문화와 풍류를 되살렸으면 좋겠다.

사진,글 / 조문호

 

 

 

 

 

 

 

 

 

 

새해 첫 날, 제주에 귀향 갔던 변 사또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내일 서울 올라가니 얼굴 좀 봅시다”
반갑기는 하지만, 년 초부터 술에 젖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난 2일 오후7시가 지나서야 인사동에 있는 ‘유목민’으로 나갔다.
‘유목민’ 입구에는 변순우씨와  조해인 거사, 보훈처에서 일하는 나재문씨,

별나라로 간 강용대의 동생 강용석씨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유일하게 담배 피울 수 있었던 ‘유목민’마저 이제 금연령이 내렸나보다.
하기야 새해부터 업소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업주도 상당한 벌금을 문다니

그냥 내 버려 둘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국산담배를 피워왔으나, 새해 첫날부터 오르지 않은 양담배를 어렵게 샀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몸 생각해 안 피우는 사람이 많겠지만,

대부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마지 못해 피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담배에다 세금 폭탄을 내리다니,... 

국민건강을 위해 담배 값을 올렸다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피울 사람은 한 갑에 만원씩 해도 피운다.
올해부터는 아예 담배 농사지어 만들어 피울 생각이다.

괜히 정초부터 담배 때문에 열 올렸나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변순우씨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마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 패션을 연상시킨다.
빨간 자켓에 도리꾸찌 모자를 눌러 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가 빠져 말이 샌다.

뒷자리에는 유진오씨가 노랗게 구운 두부안주를 시켜놓고 혼자 고독을 씹고 있었다.
뒤늦게 노광래씨가 합류하였지만, 년 초라 그런지 ‘유목민’도 한가했다.
제주에 귀향 간 변순우씨는 장기간 자동차를 방치한 죄로 벌금을 물게 되었단다.
그 사건을 해결하러 서울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적당한 취기로 어깨가 펴진 이들의 이야기가 펄펄 날아다니고, 감정도 달아 올랐다.
그러나 담배 없는  술자리는 앙코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담배 피울 수 있는 ‘사랑방 모텔’로 옮겨 한 잔 더 하자지만, 그냥 줄행랑쳤다.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김명성씨가 더욱 그리운, 그런 하루였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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