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의 일이다.

전통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하재은씨와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던 일을 깜빡 잊어버렸다.

요즘 정신이 빠져서인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진파일을 들여다보니 정리하지 않은 사진들이 너무 많았다.

이까짓 사진들을 정리하면 뭐하고, 블로그에 올리면 뭐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일기처럼 찍어 온 사진들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10대 글로벌명품시장을 연구 분석하여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려는 하재은씨의 부탁으로 이규상씨와 만찬의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각종 전시들이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관람객들로 전시장마다 붐볐다.
아내와 함께 약속장소인 ‘귀천’에 갔더니, 탐스러운 국화꽃이 반겨주었다.
‘귀천’은 천상병선생의 사모님이신 목순옥여사께서 좋아한 꽃들이 가득했다,

이젠 조카가 이어받아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꽃을 보니 돌아가신 목여사가 그리워졌다.

모과차로 추억을 달래고, ‘부산식당’으로 옮겨 생태찌개를 안주로 술 한 잔했다.
하재은씨가 이번에 다녀 온 맨하탄의 파머스마켓, 캐나다 토론토의 쎄인트로렌스 마켓 등

선진시장의 모범사례들을 귀동냥하며 오붓한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하재은씨는 사진가이기 전에 시장경영을 연구하는 박사로 신한경영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시장 특성화 육성사업에 많은 사업 실적을 가지고 있다.

세계10대 글로벌 명품시장을 대상으로 연구 촬영한 사진으로

올 11월 초순경 전시회와 사진집을 출판한다니, 기대하는바가 크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 잠시 들렸더니, 임경일씨가 반겨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8일엔 일찍부터 김신용 시인을 만났다.

양동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인사동 거리를 쫒아 다녔으나 목추길 곳이 마땅찮았다.


문 걸린 유목민앞에서 서성이다, 툇마루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들어서다, 박중식시인의 처남이 굽는 빈대떡에 쏠렸다.

오븐에서 던져, 돌려 눕히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 빈대떡은 바싹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빈대떡 한 장과 김신용씨가 마실 맥주와 막걸리를 시켰다.

이 집 막걸리는 뒤늦게 취하는 것을 알지만, 맛에 꽂혀 마냥 들이켰다.

두 시간 동안 홀짝 홀짝 마셨으나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양동에 있다는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도 부르고, 김명성시인도 불렀다.

된장비빔밥으로 마무리하고 유목민으로 옮겼다.

 

그 때까지 유목민은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집 앞에 퍼져 앉아, 안주는 푸른별 주막에서 배달시키고,

술은 옆집에서 가져와 마셨다.

김명성씨가 등장하니, 젊은 사업가들도 줄줄이 나타났다.

이상훈, 김민수씨가 등장했고, 뒤늦게는 김태서, 신상철씨도 나타났다.

푸른별이야기에 잠시 들렸더니, 이미례, 박기성 내외도 있었다.

 

! 큰일 났다. 툇마루에서 마신 취기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입에서 걸러지지 않은 소리가 마구 나오기 시작했고,

술에 잠들지 않으려고, 여기 저기 쫒아 다녔다.

심지어, 사진 찍는다며 담장 위에 기어오르는 지랄발광도 했다.

 

그 때 마침, 인사동을 떠도는 악사 강다식씨가 지나갔다.

한 곡 켜라고 불러 세웠는데, 역시 분위기를 가라앉혀 주었다.

무슨 곡인지 기억에는 없지만, 가날 픈 바이얼린 소리가 마음을 건드렸다.

구슬프다 못해 슬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니기미~

김태서씨의 막춤이 어울리진 않았지만, 마치 사회를 향한 조롱 같았다.

 

 

사진, / 조문호





















































 

 





추석연휴인 지난 17일의 인사동은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오죽하면, 사람에 걸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다.

초 저녁부터 장경호씨를 만났으나 ‘유목민’ 문이 닫혔다고 했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골목에 숨은 술집들은 오히려 손님이 없다.
인사동 술꾼들이 사람 많은 휴일은 인사동 출입을 삼가하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그렇게 술집이 많지만, 입맛에 맞는 술집이 별로 없었다.
비싸지 않고, 안주가 맛있으며, 분위기까지 있는 그런 술집 말이다.
술꾼들만 모이면 새로운 술집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술집도 돈 안 되는 작가들의 술타령 보다 매상 오르는 젊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한 푼이라도 더 남는 것이 장사의 속성이 아니던가.

사람 많은 거리를 피해, 돌고 돌아 피맛골의 ‘불타는 소금구이’까지 갔다.
거리에서 김노암씨 가족을 만나기도 했고,

술집에 도착해서는 주인장 완기씨를 비롯하여, 김기영, 김대웅씨 등 여러 명을 만났다.
인사동의 술집을 골라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반가운 벗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옆 좌석의 노래소리 들으며, 주량만큼 딱 막걸리 네 병만 마시고 일어났다.
그 사이 인사동거리에 많았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용했다.
얼마나 거리를 밟았으면, 길이 빤질빤질했다.
버스킹 나선 젊은이들의 처량한 노래소리만, 길 위로 미끄러졌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8일 조준영시인과의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강민 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정오 무렵, ‘포도나무집’에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이행자, 조준영, 김상현씨가 나와 있었다.

뒤늦게 장경호씨도 나왔으나, 주문한 음식들이 형편없었다.
주인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인사동에 갈 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다.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대충 허기를 메우고 ‘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민선생의 순례 코스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땅콩이 무제한 제공되는데다, 한적해서 좋다.

좀 있으니, 신경림 선생도 오셨으나, 자리가 편하지 않았던지 슬그머니 나가셨다.
강민 선생도 몸이 편치 않아,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셨다.







그 때부터 김상현씨의 노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신곡이 많았으나, 그의 음색에 잘 맞는 곡이었다.









그 무렵, '경기도미술관장' 지낸 최효준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라 근황이 궁금했는데,
어디 갔다 오는지,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좋은 술이 있다며 배낭에서 술 한 병을 꺼내 주었는데, 감로주였다.

알콜 도수가 40도나 되어 그 자리에서 비우기는 좀 그랬다.
맥주로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었으나,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옮겼더니, 모두들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준영씨는 신학철선생 계신 서울대병원으로 떠나고,
장경호씨는 전시 중인 ‘인디프레스’로 떠나며, 나중에 ‘유목민’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마침, 다음 달 12일까지 연장 전시된 김억의 목판화전이 생각났다.
‘나무화랑’으로 올라가니, 작가는 보이지 않고, 김진하관장과 정복수화백이 있었다.
좋은 작품에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니, 어찌 술병이 고개를 쳐들지 않겠는가?
감노주를 꺼내 마셨는데, 전주가 있어 그런지 금방 올랐다.
전시장에서 내려왔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가 없었다.













저녁 약속으로 다시 나와야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야했다.
몸도 피곤하지만, 아침일찍 일터에 나가던 아내가 부탁한 게 있어서다.
집에 들어와 숨도 고르기도 전에,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유목민’으로 나갔더니, 일터에서 곧장 온 아내도 와 있었고,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편집국장과 임동현기자도 와 있었다.

그리고 마산에서 올라 온 변형주씨와 조준영, 장경호, 공윤희씨 등 여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은영씨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이라며 신문을 보여 주었다.

술 취한 분들이 신문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 같으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돈 안 되는 문화예술계 소식만 다루는 유일한 신문이 아니던가?

잘 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해야지,

신문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든 신문에 시비를 건단 말인가?

난, 어렵게 운영되는 신문을 아끼는 마음에서 원고료도 없이 글을 보내주고 있다.











옆 자리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장성한 아들을 데려 왔는데, 음악을 공부한다더라.
기타를 연주하였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위키리의 ‘눈물을 감추고’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얼마 전, 부친 상을 당한 이은영씨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라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술이 취해, 결국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감추우고, 이슬비 맞으며 나 홀로 걷는 밤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로 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작년 가을, 그의 딸 자연이 결혼식에서 보고 첫 만남이었다. 숙취에 끙끙댔지만,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다.

약속장소인 ‘툇마루’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그 맞은 편 ‘사람과 나무’로 옮겼더라.

들려보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와 함께 있었는데, 카메라가방을 두 개나 들고 왔었다.
카메라가 괜찮은지 봐 달라기에 열아봤는데, 오래된 필름 카메라였다.

저급한 러시아산으로 마치 기관총 같은 손잡이도 달려있고, 큰 망원렌즈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터드라이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렌즈들이 들어 있었지만, 실용성 없는 카메라였다.

폼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사용한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무렵, 단양에 차린 ‘낭만’이란 카페의 장식품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한 후 자리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단골술집들이 문을 열지 않아 ‘포도나무집’에 퍼져 않았다.
이수영씨는 곤충사진집들이 잘 팔려 나간다며 신바람 났더라.

주로 5-8세를 겨냥한 책들인데, 이 불황에 8만부나 팔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책 안보는 세상이지만, 자식한테는 아끼지 않으니, 이해가 되었다.

통인동에서 전시하는 장경호씨도 합류했다. 무더운 날, 낮술에 취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창 넘어로 지나가는 강민 선생의 모습이 비쳐 급히 모셔왔는데, ‘예당’에 이행자 시인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인사동에 자주 나오시지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노시인의 한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짝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올 해로 마무리하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찾을 생각이다.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거리로 마중 갔더니, 엄상빈씨와 걸어오고 있었다.

저녁 무렵 ‘브레송’에서 있을 문진우사진전 개막식 보러 일찍부터 나온 듯 했다.

낮 술을 권할 수가 없으니, 사이다로 목이라도 축여야 했다.

한물 간 인사동이지만 이래저래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죽치는 것 같아 전활철씨에게 전화했다.

빨리 문 열 것을 재촉하고는, ‘유목민’으로 옮겨 초장부터 돌아가며 노래 불렀다.

석파 김언경의 가곡 십팔번들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유진오씨 까지 출근했지만,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충무로 전시장으로 떠나기 전에 나도 노래 한 곡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가 마치 통한의 눈물같았다.

 

박인식, 이세희씨와 노마드에서로마네꽁티로 옮겨가며 퍼 마셨다.

더 이상 인사동에 미련을 버리고 싶었.


내일 있을 김금화만신의 서해안풍어제에서 한 번 빌어 볼까보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에 자주 나가는 것은 대부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전시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약속을 인사동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 30일에는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사동 ‘유목민’에 나갔더니, 일하러 간 아내가 먼저 와 있었다.

조준영씨와 공윤희, 정영신, 김형진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박인식, 김명성, 이상훈, 전인경, 허미자, 황인호, 전인미씨도 옆자리에 있었다.
우연히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래서 인사동에 미련을 떨치지 못 하는 걸까?

이 날은 공윤희씨가 즐기는 고량주를 마셨더니, 취하는 감이 달랐다.
조준영씨는 내 생일날, 가까운 분들과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으나 손사래 쳤다.
챙겨주는 마음이야 고맙기 그지없으나, 내가 나서는 자리는 싫어하니 양해하기 바란다.
예전에는 생일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지만, 아내를 만나고부터 간단한 생일치레를 해 왔다.

이번에는 칠순이라는 아내의 성화에, 8월초로 예정한 창원전시를 생일이 있는 9월로 미루어버렸다.
어차피 전시 뒤풀이에서 한 잔 해야 하니, 그 자리에 붙여 넘어 갈 작정이다.

김형진씨는 아내에게 동영상 메카니즘에 관한 많은 정보와 활용방법을 가르쳐 주며,
동영상 찍는 무거운 삼각대까지 빌려주었다.

고랑주 빈 병이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보니, 다들 술이 거나했다.
그 날은 고량주만 마셔 술값이 꽤 많이 나왔을 텐데, 조준영씨가 내버렸다.
매번 얻어먹다보니 습관이 되었는데, 사기를 쳐서라도 한 번 갚아야지.
멋지게 쏘려면 도대체 얼마나 사기 쳐야할까? 참 걱정도 팔자다.

그 날은 무거운 삼각대 핑계대고, 택시 타는 호강까지 했다.


사진: 김형진, 조문호 / 글: 조문호





 김형진 사진













김형진 사진











5월30일 녹번동 사랑방에서



요즘 술만 취하면 그 날 마지막 사진으로 내 꼴을 셀프로 찍습니다.
술자리를 떠나는 아쉬움에 세상을 떠날 것 처럼, 지랄 발광을 합니다.
일주일 동안 찍은 걸 모아보니, 그 꼴들이 진짜 과관입니다.

어떨 때는 돼지 목 따듯, 노래 부르다 찍었고,
어떨 때는 맛이 가, 정신이 나가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슬퍼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오늘은 애편내가 있어 즐겁게 끌려갑니다.



5월 24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5월25일 인사동 '푸른별이야기'에서...



5월 28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5월 29일 인사동 '포도나무집'에서



6월 2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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